2021.11.18 21:44
1. <세인트 모드>
저는 솔직히 기대이하였어요. 못 만들었다는 소리는 절대 아닙니다. 나중에 끝나고 자막 올라가는 시간빼면 대략 79분 좀 넘는 분량 잘 써먹었죠. 그런데 저는 고립된 젊은 여성 - 아마 의료사고였는지는 본인이 사고를 친 건지는 몰라도 스스로 고립을 택한-이 종교에 몰입해 자신이 돌보는 상대를 구원해야 하는 사명감에 고취돼 그런 파국을 맞는 이 줄거리가 그냥 닳고 닳은 설정 중의 하나로 써 먹고 있지 종교,광신에 깊은 탐구를 했다는 생각은 안 들더군요. 아마 그게 목적은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감독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특히 마지막 몇 분간의 급발진같은 진행은요. 정신 건강에 대한 경각심 제고? 이전에 나왔던 라스 폰 트리에의 <브레이킹 더 웨이브>, 스콜세지의 <비상근무>가 그 점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와 인물에 충실했죠. 과거의 착오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인간의 선택은 슈레이더의 <퍼스트 리폼드>가 더 깊이있게 다뤘습니다. 배우들의 좋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얄팍하거나 혹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이 게시판의 좋은 반응만 믿고 기대가 컸나 봅니다. 저는 네이버페이 포인트 쌓인 것으로 결재해 본 거라 호기심 충족용으로 아쉽지 않았습니다. 2800원에 이틀 대여이고요.
주인공은 그 전에 헌신적인 간호사로 일했고 바같은 데 가고 하는 식의 사교 생활을 아예 누리지 않는 것 같긴 했어요, 지나가는 이의 대사에서 비친 걸로 봐서요. 그 전에는 나름 사회 생활도 하고 적당히 세속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인 제니퍼 일리와 육체적으로 친밀해지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던 게 설명되기도 하고요. 그의 돌봄을 받은 제니퍼 일리 역시 적당히 세속적이고 주인공에게 호의도 갖고 있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다가 나중에 사과하기도 하는 역이죠. 주인공의 친구만 해도 주인공을 걱정하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고요. 특별히 주변 사람들을 위악적으로 설정해 놔서 주인공을 몰고 가는 설정은 아닙니다.
<더 위치>에서처럼 마녀로 몰리는 인물이 정말로 마녀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몰아가는 건지 아리까리해지는 지점이 있듯이 이 영화에서도 실제로 공중부양이 나오는 등 주인공의 망상만이 아니라 종교적 열락을 체험하는 듯 해 보이는 장면을 보여 줘 놓는 식으로 아리까리하게 해 놔서 결말이 더 아쉬운 감도 있어요. 그 결말도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그것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아, 중간에 주인공이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에서 나오는 언어가 영어도 라틴어도 아닌 것 같았는데 감독 말에 따르면 웨일즈 어라고 하네요. 웨일즈 인인 모피드 클락이 자매와 웨일즈 어로 통화하는 것을 듣고 아이디어를 얻었고 모피드 클락이 신의 목소리도 연기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주께 영광 있으라" 역시 웨일즈 어로 말한 거라고 하고요.
웨일즈 어는 기독교 신이 아닌 이도교 신의 언어인데 재미있는 선택이네요.
공중 부양 보고 저는 <페니 드레드풀>도 생각했는데 그 드라마에서 바네사는 잔 다르크같은 자기 희생을 통해 구원을 성취합니다.
새삼스레 마틴 스콜세지나 폴 슈레이더같은 사람들이 괴물들- 축구로 따지면 페노메노-이 아니었나 싶네요. <세인트 모드>감독같은 사람들은 영화학교같은 데서 열심히 배우고 감각있다 정도 이상의 생각은 안 듭니다.
저번에 봤던 <더 터닝>은 훠얼씬 못 만들었고 음악도 <유전>따라 하려는 느낌 났는데 이 영화 음악도 <유전>모방인 듯 한 느낌이 나요.
자막이 "You got carried away"를 "선을 넘었다" 한 것은 그게 틀리지 않았다고 보는데 "never waste your pain"을 "고통에서 구원하기를"이라고 한 것은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버호벤의 <베네데타>를 기대해 봅니다.
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베니스의 죽음>에 나온 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란 호칭을 얻은 비요른 안데르센의 다큐입니다. 이런 날씨에 보기에는 너무 쓸쓸하고 슬픕니다.
<프레이밍 브리트니 스피어스>에서 연예 산업이 재능있고 아름다운 팝스타를 갈아 마시는 모습을 보여 준 것처럼 아무 준비와 자의식없이 영화계에 던져지고 유명해진 소년이 겪어야 했던 과거의 일과 현재의 모습이 나옵니다. 비스콘티가 영화 촬영이 끝나자 자신을 데리고 갔던 게이 바에서 벌어졌던 일을 회상하고 파리에서 돈 많은 남자의 장신구가 되어 돈을 받았던 얘기, 일본에 가서 자신에게서 영감을 받아 오스칼 캐릭터를 창조했던 <베르사유의 장미> 만화가를 만나 보기도 합니다. 어디까지 제작진의 접근을 안데르센이 허용했고 편집에도 관여했는지는 모르지만 노년의 모습은 참 쓸쓸합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다큐가 스피어스를 이용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스타가 직접 내러티브를 통제하고 자신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되기를 바라게 되듯이 이 다큐 역시 안데르센에게 유리하게 이용되었으면 합니다. 아들은 잃었지만 딸이 있고 딸과 만나는 모습이 나오는데 본인 입장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 주거나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거나 영화 출연 기회가 좀 더 가는 쪽으로 나아졌으면 합니다. 안데르센은 sns는 하지 않는 듯 하더군요. <베니스의 죽음> 촬영을 했던 베니스 해변에 간 모습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칸 영화제에서 비스콘티는 불어로 유창하게 기자들과 질답을 주고받더군요. 과거 밀라노 공국을 지배했던 비스콘티 왕가의 후손이자 LV가 Louis Vuitton이 아니라 Luchino Visconti의 약자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았을 정도로 물질적인 부에서나 지적으로나 윤택한 환경에서 큰 사람이니까요. 반대로 불어를 이해하거나 할 문화 자본이 없는 안데르센은 위축된 모습이었죠. 그 둘의 관계는 영화제작 당ㅇ시에도 불균형이 있었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란 비전을 쫓는 감독과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피사체로서 고용된 배우, 그리고 안데르센은 영화에서도 대사가 없다시피했죠. 비스콘티가 선택했던 미남들 - 알랭 들롱,헬무트 버거, 마시모 지로티 등-이 그 이후에도 안정적인 커리어를 이어간 것에 비해 안데르센은 배우로서의 야심도 없었고 연기 수업을 들으라고 조언해 주거나 할 사람도 없었죠. 할머니가 손자를 연예계에 떠민 거였고요. 그 할머니를 원망은 안 한다는 거 같기는 합니다. 본인이 배우라고 자각한 것도 한참 후에서였습니다. 다큐 제작진들이 몇 년 걸려 설득했다고 하는데 피사체로만 존재했던 그가 주체가 된 계기였으면 합니다. 키도 크고 마르고 자세도 그만하면 꼿꼿한 편이고 성형으로 얼굴을 망가뜨리거나 한 게 아니라 기본적인 골격이 주는 아름다움은 꽤 남아 있더군요.
Documentary “The Most Beautiful Boy in the World,” about the teenage actor in Luchino Visconti’s “Death in Venice,” has been sold to numerous territories by Berlin-based sales agency Films Boutique.
The Swedish film, directed by Kristina Lindström and Kristian Petri, premiered in Sundance in the World Cinema Documentary Competition. It receives an online market screening at Cannes’ Marché du Film on Tuesday at 9.30 A.M.
The film will be distributed in the following territories: Japan (GAGA), U.K. (Dogwoof), Australia and New Zealand (Madman), Korea (Watcha), BeNeLux (Amstel), Spain (Filmin), Germany, Austria and Switzerland (Missing Films), Italy (Just Wanted), Greece (Carousel), China (Moviezone), Czech Republic and Slovakia (Film Europe), Denmark (Film Bazar), Norway (Another World), Poland (Against Gravity), Ex-Yugoslavia (Five Stars) and Israel (Lev Cinema).
https://variety.com/2021/film/global/cannes-the-most-beautiful-boy-in-the-world-films-boutique-1235011583/
왓챠에 올라와서 봤습니다. 이런 다큐때문에 왓챠를 애용합니다.
2021.11.18 23:14
2021.11.18 23:22
저는 블레이크 인용도 흔해빠진 하나의 장치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메시지는 신경 안 쓰는데 이 영화에서는 감독의 태도를 모르겠어요. 비틀기 혹은 아이러니가 감독의 목적이었다면 저는 그닥 즐기지는 못 했어요. 저도 이 영화를 좋아하고 싶은데 말이죠 ㅎㅎㅎ
제니퍼 일리가 연기한 캐릭터는 잘 나가던 무용수였고 몸이 불편해졌지만 자신이 즐기던 사교 생활도 포기하지 않고 생일 파티로 여러 친구들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던 평범한 사람이었죠. 모드는 종교 과몰입도 병이라고 말해 줄 사람도 전혀 없는 외톨이고 일리의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것은 독단적이고 선 넘은 행동이었고요. 둘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했고요. 그 둘의 충돌이 있기까지가 이 영화에서 제일 잘 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미드소마>장면도 다큐에 나옵니다. 후대에 남을 걸작 속에서 철저한 피사체로 존재하고 고정된 인물이었고 특별한 관리를 해 줄 전문 인력도 없던 사람이었죠. 알랭 들롱은 일본에서 자기를 좋아했다고 자신의 성공에 일본에서의 인기가 도움이 되었음을 인정했던데 안데르센은 일본에서 음반도 내고 광고도 나왔지만 그것도 다 할머니가 시켜서였다고 하네요.
2021.11.18 23:32
김완선과 이모가 생각나는 관계네요. 그래도 이모(고모였나;)는 김완선을 아동 학대급으로 트레이닝이라도 시켜서 오래 살아남게 키워주긴 했는데. 뭐 그래도 그 돈을 떼어 먹은 것만 아니었음 안드레센 할머니가 훨 나은 분인 걸로. ㅋㅋ
2021.11.18 23:40
김완선 씨는 어린 나이에 그렇게 가수활동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사고 싶은 거 사라고 돈 주니까 어디 가야 할 지 몰라서 문방구 갔다는 말도 들었죠.
2021.11.18 23:32
2021.11.18 23:38
이 날씨에 보기에는 힘들어서 저도 켜 놓고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거나 일부러 커피를 마시고 했었죠. 보기 힘들어 그냥 차라리 이 다큐 나온 김에 안데르센이 이거 잘 이용해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맞아요, 그 이전의 비스콘티 취향은 아니었죠. 알랭 들롱처럼 엄청나게 야심차던가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다큐에 안데르센이 생모가 자살한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장면도 나오던데 할머니로서도 다른 방도가 없으니 연예계에 밀어 넣은 게 아닌가 싶어 이해되는 면도 있었어요.
2021.11.18 23:57
2021.11.19 14:10
세인트모드는 종교, 광신에 대해 깊은 탐구를 했다기보다는
어떤 생각과 상황이면 그렇게 빠지게 될 수 있나 하는 간접경험은 할 수 있게 해주죠.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시점의 초자연적인 경험과 그걸 바라보는 외부 시선이 그렇게 교차되는 상황은 표현된 이미지 자체도 굉장히 강렬해서...
뭘 가르치거나 경각심을 주려고 했다기보다는.. 그렇게 느끼는 입장에선 그럴 수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엄청난 비극이네.. 라는 느낌이었고 전 그냥 그 표현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ㅎ
2021.11.19 14:33
제가 그래서 설정 정도로 써 먹은 거 같다고 썼죠. 사실 남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남들을 구원하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폭력과 간섭을 저지르는 것은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면과 여러 관계에서도 일어나니까요.
저는 주인공이 그 전에는 바도 가고 원나잇도 하며 살다가 자신이 종교에 빠져서 달라졌다고 전에 본 적도 없는 제니퍼 일리 사생활에 간섭하는 게 위선스러웠어요. 주인공이 성경을 읽거나 교회가서 예배를 보거나 활동하는 모습 전혀 없죠. 흔한 기독교인 모습이 아니었어요.ptsd의 대체 기제로 신을 이용한다 이런 게 아니었나 싶네요. 그냥 망상에 빠진 편집증 환자가 아니었나 싶거든요. 우울증이나 정신질환 증상으로 신체에 이상이 오기도 하는데 그 발작도 그런 거 같았고요.
제니퍼 일리는 무용수다 보니 몸을 다루는 직업이었고 몸의 쾌락을 등한시하는 인물이 아닌데 주인공이 경계를 너무 침범하다 싶으니 반응한 거 인간적이다 싶었어요.
주인공이 종교적이었으면 자신이 일리의 구원자가 되려 하지 말고 인도하는 역할 정도로 끝났어야 하지 않나 싶고 저는 비극보다는 범죄라고 느꼈네요. 그러고 자신의 자만때문에 망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자기 희생이 있던 것도 아니고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지도 못 하고 자신을 낮추지도 않고 그저 자신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할 뿐이죠. 종교에 미쳐서라기보다는 자신의 머리속에 가둔 왜곡된 종교관때문에 파멸을 자초했다고 봅니다.
모드라는 이름이 이런 뜻이 있네요 Maud or Maude (approximately pronounced "mawd" in English), is an Old German name meaning "powerful battler".
원래 주인공 이름은 케이티라고 옛날 친구가 부르는 걸 보면 모드라는 이름은 주인공 스스로 지은 거죠. 그리고 중간에 우연히 만나는 간병인 이름은 에스더인데 성서에 나오는 인물 이름이기도 하지만 "숨겨진"이런 뜻도 있다고 합니다.
Amanda is a Latin name meaning "loveable" or "worthy of love." The name was first recorded in 1212 in Warwickshire, England. ... Origin: Amanda is a Latin name meaning "loveable" or "worthy of love." Gender: Amanda is often used as a girl's name. The masculine version, Amandus, is typically used for boys.
듀나님께서 리뷰에서 언급하셨듯이 전형적인 성자(?)의 수난극 스토리를 비틀어서 살짝 비꼬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 인용 같은 것도 그런 느낌이었구요. 거기에 요즘 트렌드에 맞게 고독한 여성들간의 교류 같은 것도 집어 넣고 뭐 그런 느낌이었는데. 전 워낙 영화 볼 때 메시지 같은 데 신경을 안 써서 (당연히 뭔가 메시지가 있어야하는데 그냥 비어 있는 영화들은 예욉니다만) 그냥 괜찮게 봤어요. ㅋㅋ
안드레센(저도 자꾸만 안데르센이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작가님 때문에...)은 최근에 미드 소마에서 보고 깜짝 놀랐었죠. 정확히는 미드 소마를 볼 땐 아예 못 알아봤으니 아무 생각 없이 봤고 다 보고 배우 검색하다 깜짝 놀랐던 거지만. ㅋ 영화판에서 이만한 원 히트 원더가 또 있을까 싶어요. 보통은 한 번 그만큼 주목 받으면 어느 정도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가라앉기 마련인데 이 양반은 정말 그 영화 하나 빼면 남은 게 하나도 없는 수준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