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힌 표현과 겉절이 언어

2021.10.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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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영화나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표현되는것은 두 종류로 나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삭힌 표현과 겉절이 표현.
삭힌 표현은 시간 속에서 마음을 쓰고 또 쓴 그 흔적이 작품에다 깊은 주름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표현의 연금술은 대부분 그런 주름 많은 굴곡들을 종횡무진 배치하는 선에서 찾아지기 마련이죠. 
그러나 삭힌 표현 때문에 겉절이 표현이 무시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표현은 발효의 미학이 중요한 만큼 선언의 미학도 중요한 것이니까요. 발효를 지나치게 밀고 나아가서 촛농으로 주루룩 흘러버리는 작품들도 있잖아요. 요즘 노회한 정치적 언어가 국민을 침묵하게 하고 지평을 잃게 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새삼 그런 생각이 듭니다. 

겉절이의 언어는 천진한 고백일 수 있죠. 그것의 본의보다는 반칙으로 비춰지기 십상이겠고요. 복잡성의 현실에서 고백인 동시에 반칙의 언어는 종종 거짓 진정성으로 둔갑하여 우리를 능멸하기도 합니다. 눈 감을 수없는 현실을 드러내 보이며 혹세무민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절이의 언어를 무조건 배격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열정에 대한 지나친 불온한 시선이 아닐까요?

작가든 정치가든 나이들수록 새 시대의 구성에 대해 노령의 입장에서 경멸을 짙게 표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조건이 붙어 있지 않다면, 사유를 무늬로 그린 또다른 욕망이구나 긍정하며 접할 수 있을 텐데, 기욕에 불과한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흔합니다. 식지 않은 기욕의 기존 인물들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자신을 주장하는 모습으로 보여요.

지금은 주름져버린 언어들도 그 주름잡힐 때 접혀들어간 시간에  얼마나 많은 매혹과 동요를 갖고 있었을까요.  그러니 앞으로 주름질 언어가 이미 주름져버린 언어를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주름진 언어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선진국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 앞으로 주름질 언어는 개발도상국 같은 것일까요. 그렇다고 해도 선진화의 이념이 개발도상의 단계가 갖는 역동성을 폄하하는 건 곤란합니다. 오히려 주름진 언어는 다시 주름잡히는 현재에 대한 느낌이 없는 것에 도리어 한탄해야 하는 것 아닐런지.

주름진 표현/언어의 자기반복 중인 맴맴돌이는 얼마나 소모적 소비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또 이미 그것을 다 읽고 모든 것을 다 봐버린 현자들은 어떻게 그들을 견디고 있을까요. 모든 것은 사라지며, 다만 우주적 차원에서 주름의 물결은 다른 것으로 변할 뿐이라고 체념하고 있을까요. 무엇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원으로 순환하며 새주름을 짓고 또 짓고 다시 주름지을 뿐이라고 해탈해버렸을까요?

요즘 노회한 정치인들의 발언들을 접하노라니, 차라리 아직 아무 양념이 배어들지 않은 겉절이가 더 희망 있겠구나 싶어 해보는 낙서입니다. 
이미 오염된 터에 오염됐다는 자각도 없는 어른들의 영혼 안쪽에 어떤 주름들이 촘촘히 물결치고 있는지 궁금하다기 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끈적끈적합니다. 
오만가지를 경험하며 나이들어가노라면 입력보다는 출력의 욕구가 강해지기 마련이겠지만 '어른'에게도 입력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겸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그분들이 모를 리 없겠는데,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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