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3 22:47
오늘 밤 12시 10분 KBS1 독립영화관에서 영화 <구직자들>을 방송합니다.
요즘 독립영화관에서 좋은 장편영화들을 방송해 줘서 재밌게 보고 있어요.
'오늘을 살아야 할 인간 존재에 관한 탐구 SF!'라고 하네요.
"2220년 대한민국,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공들로 인해 인간들이 설자리는 점점 더 줄어든다.
예고편은 전혀 SF스럽지 않지만... ^^
< 구직자들 > 영화제 상영 및 수상내역
오늘 밤 12시 45분 EBS1 영화는 <바베트의 만찬(1987)>입니다.
imdb 관객 평점 7.8점, 평론가 평점 78점으로 아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네요.
1988년 아카데미 그리고 BAFTA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입니다.
유명한 영화인데 저는 아직 못 봐서 <구직자들>을 보다가 그냥 그러면 <바베트의 만찬>으로 넘어갈 생각입니다.
예고편 가져왔어요.
예고편에 대문짝 만하게 나오는 배우들 이름 하나도 모르겠네요. ^^
좀 지루해 보이는 영화 같긴 한데 좀 전까지 4시간 잤으니 아주 맑은 정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궁금하신 분들 같이 봐요.
2021.12.04 00:46
2021.12.04 08:15
2021.12.04 10:35
그 영화에 와인 이름이 여러 번 나왔는데 왜 적어놓을 생각을 못했을까요.
아쉬운 마음에 검색해 보니 저만 궁금했던 건 아닌지 음식과 술 이름이 다 나와 있네요.
The seven-course menu in the film consisted of: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Babette%27s_Feast#Menu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서 마셔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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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름을 읽을 줄은 알아야 언젠가 찾아서 마실 수 있겠다 싶어 급히 찾아봤어요.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3134093#home
첫 번째 요리인 거북이 수프가 등장할 때 함께 제공되는 식전주는 ‘아몬티야도(Amontillado)’이다. 스페인 셰리(Sherry) 중에서도 고급으로 치는 피노(Fino)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지만, 숙성을 오래 시키고 알코올 농도를 높인 최고의 식전주다.
두 번째 요리인 블리니스 데미도프와 마리아주를 맞춘 와인은 당연히 샴페인이다. 샴페인을 한 모금 맛본 로렌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큰 소리로 외친다. “이건 1860년 빈티지의 뵈브 클리코(Veuve Clicqout)가 틀림없어요!” 경건한 촌로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너무 맛있는 것이다.
메추리 요리인 카이유 앙 사코파주와 더불어 드디어 오늘의 메인 와인이 등장한다. 바로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이다. 나는 클로 드 부조가 화면에 비치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아아 클로 드 부조! 일찍이 12세기부터 시토파 수도회가 개척한 부조 마을에서도 단 하나뿐인 그랑 크뤼 포도밭 클로 드 부조!
2021.12.04 16:06
그 수많은 포도주 중에서 특정 와인의 이름을 기억한다는게 대단합니다. 내 이름은 누가 기억하려나
제가 만드는 음식은 재현이 안되는데 저는 정확한 계량을 안하기 때문에죠. 넣는 시점도 다릅니다. 그래서 저의 요리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그말은 하찮다는 말과도 같아요.
그래서 제 아이에게는 소울푸드 이런거 없어요. 음식이 매번 다르기 때문이죠
식당차려서 같은맛으로 수십년 팔고있는 사람들 보면 참 신기합니다.
2021.12.04 18:34
포도주 이름까지는 어찌어찌 외운다 해도 몇 년산 포도주가 어쩌고 하는 건 거의 신의 영역인 듯 해요. ^^
공룡 좋아하는 아이가 공룡 이름 줄줄 외우듯 포도주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그런 연도가 술술 외워지나봐요.
생각해 보면 저는 힘들었던 시기에 음식을 먹여준 사람에게 참 쉽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아요.
시험 준비할 때 김치볶음밥 싸와서 먹인 사람, 학교 축제 때 혼자 방황하던 저에게 파전 부쳐서 먹인 사람,
갓김치 먹어본 적 없다니까 어머니가 보낸 갓김치를 빼돌려 저에게 먹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겼죠.
몸과 마음이 허기진 시기여서 그랬는지 한 끼를 채워준 그 음식이 참 맛있고 고마웠어요.
그러고 보니 미각 예술은 불가능한 것 같네요. 사흘 굶은 사람에게는 뭘 먹여도 맛있을 테고
밥을 잔뜩 먹은 사람에게는 뭘 먹여도 별로일 테니 평가자의 몸 상태에 너무 좌우돼요.
어쩌면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넘볼 수 있는 영역인 것 같기도 해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배고플 수밖에 없고 살면서 언제나 마음의 허기를 느끼는 존재니까요.
누구든 누군가를 따뜻한 밥 한 끼로 기쁘게 만들어 줄 수 있죠.
어쩌면 누군가는 그 순간의 따뜻함을 오래 기억할 수도 있고요.
<바베트의 만찬>으로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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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예술은 그림, 사진, 영상으로 남길 수 있고, 청각 예술은 녹음으로 남길 수 있는데
후각, 미각, 촉각 예술은 아직 남길 수 있는 방법이 없네요.
어쩌면 남길 수가 없어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는지도 모르죠.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것을 가치있게 여기고 그런 것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후각적, 미각적, 촉각적 만족을 주는 것들은 그저 일시적 쾌락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겠죠.
종교는 죽음, 신체의 소멸 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 내려는 인간의 욕망을 투영하는 것이고요.
음식은 하루 이틀만 지나도 부패해서 추해지는 것, 몸 속에 들어간 후 별로 아름답지 않은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참 짧은 순간의 만족을 위해 돈과 노력을 기울이는 허무한 일로 여겨질 때가 많아요.
그런데 맛있는 음식과 술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은 그 순간을 참 행복하게 만들죠.
소중한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봤던 경험,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던 경험은 아주 오래 기억돼요.
후각과 미각은 어쩌면 더 강력하게 그 감각과 함께 했던 사람을, 순간을 우리의 기억에 새기는 것 같기도 해요.
소중한 사람과 함께 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름다운 감각을 공유했기 때문에
소중한 순간,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되는지도 모르죠.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맛은 매번 조금씩 달라져요. 재료의 상태나 양념, 조리 시간과 방법의 차이,
먹는 사람의 몸 상태와 기분, 먹는 장소, 함께 먹는 사람들과의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지죠.
음식의 맛은 그렇게 음식 자체가 갖는 것이 아닌 함께 했던 모든 것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이고
그래서 반복되기 어려운 경험이기 때문에 그 순간의 유일한 경험으로 더 그립게 기억되는 것 같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