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000'류의 제목은 왠지 시적인 은유와 지루할 정도로 감성적인 내용일 것만 같은 뉘앙스를 풍깁니다. 생각해 보면 제 이런 편견에 부합하는 작품이 잘 없었던 것 같아요. 호텔아르테미스는 개봉 당시 비슷한 생각으로 넘어갔던 영화인데 SF였군요. 하지만 꼭 SF일 필요는 없는 내용인 것 같기는 합니다.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SF를 배경에 깐 가이리치나 쿠엔틴 타란티노식의 장난스런 갱스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역시 제 눈길을 끌었던 건 SF적인 장치기는 했어요. 나노머신 중심의 하이테크놀로지 의료기술과 기술이 발전하면 오히려 더 인권과 생명은 경시된다는 듯 구질구질한 세트와 물부족으로 인한 폭동 같은 것들을 설정에 깔고 있어요. 잔인하고 비참한 배경과는 다르게 극의 분위기는 가벼운 편인 것도 좋았구요. 예산을 많이 들인 영화 같지는 않은데 이런 마이너 감성 영화에 조디 포스터님이 떡하고 나와 주시는 것도 미묘한 균형감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조디 포스터님이 심드렁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자상한, 욕쟁이 간호사로 등장해 주십니다. 말은 간호사인데 실질적으로는 의사 포지션이죠. 고도로 발달한 의학기술 덕에 진단과 치료는 기계가 하고 인간은 그게 돌아갈 수 있도록 모니터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미래 사회 모습을 반영한 설정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요.


마치 드라마 시리즈의 시즌1 마지막화 같은 내용이었어요. 조디 포스터님과 과거에 얽힌 인물들이 잔뜩 등장해서 한바탕 난장을 벌인 뒤 주인공 캐릭터가 성장하며 앞으로 펼쳐질 일을 기대하게 하고서 끝나버리거든요. 내용도 뻔하고 특별히 기승전결이 뚜렷한 편도 아니라 망하는 게 당연하지 않았을까 생각되구요. 애초에 캐릭터 구경이랑 뻔한 내용이라도 설정만 좋으면 봐주는 장르팬들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영화 같기는 해요. 후반에 좀 감성적으로 되는데 내용은 그대로 두더라도 전반부 톤을 끝까지 유지해 줬으면 더 좋았을 거 같기는 합니다. 


노잼 영화는 굳이 글을 안쓰는 편인데 저는 재밌게 봤지만 추천은 못하겠네요. 장르에 대한 기대를 얼마나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따라 만족감이 달라질 듯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046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954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9805
117691 [영화바낭] 내가 방금 뭘 본 건진 모르겠지만 재밌습니다 '바쿠라우' [16] 로이배티 2021.11.13 754
117690 점원들 (1994), 바운드 (1996) [5] catgotmy 2021.11.13 288
117689 [KBS1 독립영화관] 불어라 검풍아 [11] underground 2021.11.12 381
117688 [넷플릭스에도있는영화바낭] 본격 고수&강동원 얼굴 뜯어 먹는 영화, '초능력자'를 봤습니다 [12] 로이배티 2021.11.12 795
117687 디즈니 플러스 - 계속보기 문제점 발견하셨나요? theforce 2021.11.12 412
117686 디즈니 플러스는 한달 공짜가 없군요 ㅠ [3] 삼겹살백반 2021.11.12 635
117685 [바낭] 디즈니 플러스 [7] 異人 2021.11.12 546
117684 크러쉬 (1993), Trojan War (1997) catgotmy 2021.11.12 241
117683 [게임바낭] 이분들 포르자 호라이즌5가 나왔는데 뭐하십니까 [14] 로이배티 2021.11.12 586
117682 반듯이, 반드시... 내로남불 또는 어휘력문제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 [3] 왜냐하면 2021.11.12 563
117681 윤석열이 대통령인 미래 [13] 칼리토 2021.11.12 1189
117680 요즘 본 영화(그린나이트, 런, 신용문객잔1,2) [5] 왜냐하면 2021.11.12 600
117679 디즈니 플러스 첫인상 [8] Lunagazer 2021.11.12 804
117678 로그인 한 김에 드라마 얘기 - 구경이, 연모, 너와 닮은 사람 [5] 애니하우 2021.11.12 598
117677 디즈니 매니아인데 디플을 망설이는 한 가지 이유 [2] 적당히살자 2021.11.12 480
117676 엠마뉘엘 카레르의 '왕국'같은 소설 추천 부탁합니다. [5] 애니하우 2021.11.12 293
117675 어제가 엔니오 모리꼬네 생일/축구 잡담 [3] daviddain 2021.11.11 221
117674 영화 이야기(시민케인 블루레이, 킹메이커) [4] 예상수 2021.11.11 296
117673 요즘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에 생긴 변화 [2] theforce 2021.11.11 644
117672 “반드시가 아니라 ‘똑바로’의 의미”라며 “과거 같이 근무했던 호남 출신 동료들이 ‘반듯이 하라’ 같은 말을 잘 썼다 [4] 왜냐하면 2021.11.11 55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