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4 13:35
- 나온지 며칠 안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에요. 장르는 일뽕(?) 액션 스릴러 정도 되고 런닝타임은 1시간 46분. 스포일러는 있을 수가 없는 영화네요.
(저 차는 대략 3분도 안 나오는 것 같은데...)
- 주인공 케이트는 킬러입니다. 프리랜서는 아니고 회사 소속이죠. 매즈 미켈슨이랑 같은 회사면 재밌겠 어려서 고아가 된 후로 아빠처럼 키워준 우디 해럴슨의 지도편달로 킬러 조기 교육을 거쳐 탄생한 프로페셔널이죠. 근데 그런 양반이 하필 회사의 미래가 달린 가장 중요한 임무를 앞두고 아무 남자나 만나서 주는 거 넙죽넙죽 잘 받아 먹다가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을 드링킹 해버리셨네요. 덕택에 임무는 실패했고, 이제 남은 건 누가 자신에게 이런 짓을 했는지 밝히는 겁니다. 이게 뭐 독약 같은 것도 아니어서 치료제 따윈 없고 길어야 24시간 뒤면 죽는 상황에서 일본 도심의 밤거리를 누비는 한 마리 야수!!! 우리 케이트찡은 과연 어떻게 되...
(완전 소중 윈스테드님)
- 아니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요. 케이트는 죽습니다. 이건 스포일러가 아니에요. 애초에 마신 게 어중간한 독약 같은 게 아니잖아요. 주인공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못박아 놓고 제한 시간을 던져준 후 그걸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그 과정인 거죠. 그 안에 뭘 채워 넣었느냐... 가 핵심인데요.
문제는 그게 영 별로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잡아 놓은 컨셉을 괴상하게 낭비해버리는 알 수 없는 영화에요.
- 그러니까 얘가 죽잖아요? 시간 제한이 있잖아요? 그럼 당연히 액션은 액션이지만 서스펜스 가득한 스릴러가 되려고 애를 써야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 그래요. 24시간, 하룻밤이라는 시간 제한을 두고 시작해서 실제로는 24시간도 아니고 동 틀 때까지 몇 시간만에 끝나는 이야기인데 괴상할 정도로 이야기 페이스가 느긋합니다. 뭔 생각인지 알 수 없게 느긋하게 앉아 다른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장면도 여러 번 나오구요. 나름 급전개 중에도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시간 제한 말고 또 하나의 중심축이 되어줘야할 '누가 그랬을까'도 마찬가집니다. 추리도 추측도 뭐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지금 내 임무 때문이겠거니' 하고 주인공이 부지런히 그쪽 애들만 패고 쏘고 죽이고 다니긴 하는데 그냥 주인공이, 그리고 영화 자체가 거기에 관심이 없어요. 그냥 되는대로 닥치는대로 찾아내고 쥐어패다 보면 갑자기 범인이 툭 튀어나와서 '내가 그랬는데?' 이러고 끝입니다. 흠...;
(어쨌든 윈스테드님은 소중합니다.)
- 대충 애초의 의도는 알 것 같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인공 '케이트'가 어쩌다 자기랑 엮인 십대 소녀와 교감을 나누면서 죽기 전에 나름 '가족' 행세도 해 보고, 킬러를 벗어난 새로운 삶의 맛이라도 살짝 본 후에 후련하게 세상 뜨는 감동적인 이야기... 같은 걸 중심에 깔고 액션을 버무린 형식을 바란 거겠죠. 그래서 그 십대 소녀와의 장면이 많이 나오긴 해요. 하지만, 위에서 말한 저런 기본도 안 지키는 사람들이 그거라고 제대로 했겠습니까... ㅋㅋㅋ 뭐 와닿는 거 정말 1도 없어요. 둘이 왜 저래? 저 애는 주인공을 왜 저리 좋아하고, 주인공은 그 바쁜 와중에 지금 쟈 데리고 뭐함? 이런 생각만 계속 들다 끝납니다.
나름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라면 뭐랄까. 원래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의 설계도(?)는 확실히 보이거든요. 그리고 그 부분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나쁘지 않아요. 사부이자 사실상 아빠 역할인 우디 해럴슨과의 관계 같은 것도 그렇고. 나름 단순하고 평면적인 이야기를 탈피해서 뭔가 해 보고 싶었다는 의도는 확실하게 보이죠.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냥 종합적으로 다 망했는데요.
(주윤발... 은 농담이고 어쨌거나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점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입니다. 설득당해 주세요.)
- 마지막으로 액션 이야기를 하자면... 나쁘지 않지만 아쉬운 부분이 자주 눈에 밟히는 정도? 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주연을 맡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가 최대한 소화하려고 노력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전체적으로 난이도 조정(...) 같은 게 눈에 띄어요. ㅋㅋ 뭐 난이도를 좀 조정하더라도 재생 속도로 훼이크를 쳐서 좀 더 박진감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많은 장면들이 익숙한 느낌으로 폼은 나는데 뭔가 미묘하게 느려요. 어찌보면 더 실감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래 보이는 장면도 있지만, 이건 그냥 좀 스피드 업 했음 더 폼났을 텐데... 하는 장면들도 있고요. 그 와중에 쌩뚱맞게 박진감 넘치는 초반 카체이스 장면 같은 건 꽤 괜찮았는데...
이것도 결국 크게 칭찬해주기 힘든 게 최종 결전의 연출 때문입니다. 와, 이게 진짜 구려요. 그게 장면 연출, 안무가 구린 게 아니라 그냥 애초부터 설정이 망했습니다. 어쨌거나 이게 '고독한 살인기계' 장르 아니겠습니까. 근데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이 싸움을 거의 안 해요. ㅋㅋㅋ 어찌저찌해서 득템한 아군들을 끌고 가는데 싸움은 갸들이 다 하고 주인공은 그냥 폼 잡으며 걷다보면 상황 정리. 이렇거든요. 어쩌라는 겁니까. 도대체 이 영화를 만든 양반은 뭔 생각이었던 건지 진지하게 궁금해졌습니다.
(가장 완성도 높고 재밌었던 카체이스씬. 아마 1분 남짓 정도 될 겁니다. ㅋㅋㅋㅋ)
- 그나마 좋은 점이라면 배우들입니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우디 해럴슨 둘 다 아무런 개성도 질감도 없는 캐릭터들에 나름 살아 있는 사람 느낌을 불어넣느라 개고생하는 게 보이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어요. 아사다 타다노부나 쿠니무라 준 같은 사람들은 뭐... 뭘 보여주기엔 분량이 많이 짧긴 했지만 그래도 본인들 짬밥만큼 할 수 있는 건 다 하지 않았나 싶구요. 암튼 되게 없어 보이는 이 영화를 그나마 조금은 뭔가 있어 보이게 한 건 배우들의 힘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영화를 구원하기엔 아주 많이 모자랐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왜 나왔을까요? 라는 표정의 아사다 타나노부 아저씨)
- 결론적으로.
그냥 일당백 액션이라면 일단 봐야 하시는 분. 저처럼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좋아하시는 분... 만 보세요.
그 외엔 추천하지 않습니다.
2021.09.14 15:09
2021.09.15 09:32
그래뵈도 '존 윅'이 다방면 여러모로 퀄리티가 괜찮은 영화였죠. 그렇게 막 뛰어나다 싶은 부분은 없어도 캐릭터, 액션 같은 핵심 포인트들도 잘 짚었고 군더더기도 없었구요. '내 개를 건드리다니!' 드립이 너무 흥해서 오히려 준수한 완성도가 충분히 평가받지 못 했다고 생각해요. ㅋㅋ
2021.09.15 11:18
존윅의 위대한 점은 약점을 최소화하고 강점만 보여준다는 것 같아요. “아내가남긴개를죽인악당들에빡쳐놓았던총을척!”까지만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몇개의 법칙만으로 만든 조잡한 세계관에서 줄창 멋진 총질만 보여주거든요. 캐릭터를 만들기위해 복잡한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않죠. 존윅 카피작들은 원본과는 반대로 자꾸만 인물과 스토리에 몰입시키려하니 원래 조잡한 장르의 약점만 선명히 드러날 뿐이죠. 장르 자체의 조잡성을 인정하는 존윅의 성공법칙을 잘 따른 아류작중 최고는 ‘신의 한수’라고 생각해요.
2021.09.15 18:02
2021.09.14 16:46
그러고 보니 쿠니무라 준은 '블랙 레인'(단역이었지만), '킬 빌 vol. 1', '케이트'까지 일본색 짙은 미국 영화들에 출연했군요.
2021.09.15 09:37
영어를 할 필요가 없는 역할로만 나오다보니 그런 게 아닌가... 는 농담이구요. ㅋㅋ 지금 찾아보니 홍콩 영화에도 몇 편 나왔고 곡성에도 나왔으니 한중일을 아우르며 헐리웃까지 가끔 방문하는 폭 넓은 커리어네요. 실제 본인 발언을 보면 현재 일본 영화계에 불만이 많은 것 같기도 하구요.
2021.09.14 21:09
포르노는 세팅과 디테일이 중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ㅋ "어떻게"의 중요함을 모르는 영화였어요.
2021.09.15 09:38
영화를 보다보면 은은히 묻어나는 드라마와 인간미... 이런 걸 생각하며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결과물은 걍 이거 하다 저거 하다 오락가락하다 다 망한 모양새죠. ㅠㅜ
2021.09.14 22:48
2021.09.15 09:40
보고 싶으면 보는 거죠! ㅋㅋ 기대를 좀 낮추시면 괜찮을 수도 있어요.
2021.09.15 06:51
2021.09.15 09:43
그래픽 노블 원작이 있어야할 것 같은 색감이었죠. 조명도 살짝 과장되게 써서 문득 '블레이드 러너' 생각도 나고 그랬습니다. ㅋㅋ 특히 저 핑크핑크차 타고 달릴 때 좋았네요.
2021.09.15 10:39
이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고 하면 돈 많이 써서 비주얼은 화려하지만 내용은 '이게 뭐야?' 소리가 나오는 컨텐츠들의 집합이라는 인식이 생길 지경입니다. 예고편 봤을 때는 되게 재미있어 보였는데 아쉽네요. 나중에 대충 건성으로 보긴 하겠지만.
2021.09.15 10:55
'좋은 각본'이란 게 얼마나 희소하고 소중한 것인지 알려주고 있지요. ㅋㅋ 근데 생각해보면 헐리웃 영화들도 매년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각본이 아주 좋다 싶은 건 별로 없긴 합니다. 넷플릭스보다 돈을 많이 쓰니 비주얼 더 화려하고 각본도 조금은 더 다듬어져 나오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요. 사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 대다수는 그 동네 기준으론 비교적 저예산 축에 속하는 걸로 알아요. (아님 말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