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만원/ 브레송/ 스트로브

2021.12.04 07:51

어디로갈까 조회 수:520


지난 일 년 동안 지인의 어떤 작업을 도왔어요. 보수가 협의된 사안이 아니었고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도운 거였어요. 전혀 염두에 둔 문제가 아닌데 어제 점심에 지인이 저를 불러내더니 봉투 하나를 슥 내밀더라고요. 삼백만원인데, 고마운 마음은 더 크다면서요.
사양하고 말고 승강이 하는 게 어색해서 얼떨결에 받아 가방에 분명 넣어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봉투가 없더군요. 제가 자신을 신뢰할 수 없을 지경으로 요즘 셀프 사건사고가 자주 일어나니까 정신이 멍해집니다. 봉투는 어디로 정처없이 떠난 걸까요? 흠

심란해서인지 잠이 자꾸 끊겨서,  로베르 브레송과 장 마리 스트로브의 영화 두 편을 봤는데 난데없이 이런 짐작이 들더군요.
아주 뛰어난 검술을 자랑하는 무사를 기용하고 싶을 때,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라면 정말  무사를 찾아내서 기용했겠구나, 장 마리 스트로브 감독이라면? 그는 오랫동안 서예에 몰두해온 선비를 찾아서 기용했겠구나.
그 선비는 붓질하던 그 감각으로 칼을 들고 상이한 감각들의 상충에 대해 고뇌하면서 점차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것을 즐기기 시작할 것이고 그때 스트로브는 카메라를 들이대고 영화를 찍는 거겠구나.

브레송 감독의 시네마토그래프 개념은 삶의 시간적 빚어냄, 그 산물을 그대로 셀룰로이드 필름이라는 물질적 조건을 뚫어버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모델'이란 살아가는 사람, 저마다의 오랜 시간 동안 지난한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을 영화로 이입시킨 배우이니까요.  배우가 아닌 배우인 거죠. 스트로브 감독은 그런 식의 초대를 행하지 않는 거고요. 

엄~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이 따로 있어서 게시판을 열었는데 여기까지 쓰노라니 또 까묵해버렸어요. 하쿠나~ (조기 치매가 분명함.-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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