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1 이야기 - 변현제

2021.11.15 00:16

Sonny 조회 수:539

912d5ceecda74cb179faa8e877add937.png


그의 유튜브 썸네일이 보이시나요? 저 문구들은 상대편 선수들이 실제로 뱉은 말들입니다. 그리고 이 반응들이 그를 대략적으로나 설명합니다. 유튜브 판에서 자극적이지 않은 사람이 그 누가 있겠냐만은, 그는 매체나 시대와 무관하게 현존하는 스타크래프트 리그 참여자 중 가장 도발적이고 공격적이며 악랄한 플레이어입니다. 이건 스타크래프트 1 리그를 20년 가까이 시청한 제가 보증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변현제는 쌍욕이든 경탄이든 한 쪽의 극적인 반응은 거의 무조건 끌어내는 선수입니다. 스타크래프트 1 리그에서 상대를 도발하거나 말리게 하는 초반 러쉬를 가장 많이 감행했던 임요환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전성기가 지나고 그의 초반러쉬는 그의 캐릭터는 보여줬으되 전술적 성공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변현제의 초반러쉬는 정말로 지독하고 엄청나게 위협적입니다. 그래서 그를 상대하는 동등한 수준의 프로선수들조차 이게 왜 이렇게 일찍 끝나냐면서 볼멘소리를 내곤 합니다. 


1.gif


2.gif


스타크래프트는 건물을 지어야 하는 곳에 다른 유닛이 있으면 그 공간에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이걸 악용(?)해서 상대편의 건물 짓기가 당연시되는 곳에 초반견제용으로 자신의 유닛, 특히 일꾼을 미리 갖다놓고 건물건설을 방해하는 게 하나의 전술이 되었는데 변현제는 이걸 제일 징그럽게 해대는 선수입니다. 그래서 상대하는 선수들도 그걸 당연히 예측하고 대응을 하지만 살짝 간지럽히면서 못짓게 하다가 빠지고, 다시 지을려고 하면 다시 일꾼으로 톡톡 치고, 거기다 아예 자기 건물로 알박기를 해버리는 훼방질을 연속으로 해서 다들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의 게임을 보는 다른 선수들은 늘 "또 사람 열받게 할려고 게임하는구만!!" 이라며 욕을 아끼지 않습니다.



cc7fe84b529ab5426fce5a226f44bc0accb9b67d





 


약 10여년 전 거의 데뷔전에 가까운 경기들에서도 그는 지금처럼 상대방을 괴롭히는데 거의 전력을 투자하는 방식의 게임을 해왔습니다... 상대방 본진에 건물을 짓고 자신의 병력을 빙빙 돌려가며 계속 상대의 일꾼을 잡는다거나, 자원을 채취해야할 일꾼들을 네마리나 끌고 가서 상대의 건물 건설을 방해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건 일반인들의 게임에서도 미친 짓 취급 당하는 전략입니다. 왜냐하면 상대의 병력을 줄이고 발전에 방해를 줄 확률이 많이 낮은 도박수이기 때문이죠. 특히나 상향평준화된 프로들간의 게임이라면 어지간해서는 나오지 않는 종류의 게임입니다. 그런데 변현제는 그걸 또 밀어붙입니다. 후에 말하기를 자기는 이런 소수 유닛 컨트롤을 다른 프로들보다 유난히 좋아할 뿐더러 자신감이 있다고 합니다. 프로게이머 연습생 시절에도 일반적인 전략 전술로 상대해주는 게 아니라 이런 초반러쉬만 주구장창 해대서 선배 게이머들에게 엄청 혼났다고 밝히기도 했구요.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그 성정을 이용해 2전 3기만의 우승을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


그의 그 표독스러운 게임은 분명 엔터테인먼트로서 재미가 있습니다만 그게 그의 쇼맨십만은 아닙니다. 그가 초반에 그렇게 승부를 걸고, 자신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상대 본진으로 병력을 투입시키는 이유는 변현제라는 인간이 게임을 이해한 끝에 나온 결론입니다. 변현제는 승부를 "선수필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상대보다 먼저, 빠르게, 미처 예상을 못한 시점에 찌르고 거기에서 승점을 챙기는 게 그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답고 효율적인 승리의 방식입니다. 이걸 조금 더 고급스러운 표현으로 정리해보죠. 그는 승부를 "의식의 선착순"이라고 정의하고 싶어합니다. 이건 단순히 생산과 병력에서 시간적인 우위를 가져가는 (예를 들어 6파일런 7게이트라던가 극초반 센터 99게이트라거나)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의식을 하고 예측을 해서 '너는 이것을 하겠구나'라는 결론에 도착하기 이전에 자기가 그 결론을 상대의 의식적인 헛점을 두고 먼저 던져버리는 거죠. 설마 이걸? 벌써 이렇게? 이 정도로 빨리?


이것은 지극히 고전적이면서도 어려운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스타크래프트는  후수後手의 승부로 진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스타크래프트에는 상대의 진영을 정찰을 한 다음에, 자신의 대응방식을 결정할 수가 있습니다. 아주 어긋난 전략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지지 않을 정도의 반응을 하면서 그 다음을 도모할 수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게 좋냐면, 스타크래프트는 자본주의적인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돈을 벌면서,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최대한 늦게 결정하는 게 좋습니다. 경제적인 투자 방식과 똑같습니다. 내가 빨리 투자하고 소비의 결정을 서두를 수록 내가 더 돈을 벌고 더 많은 것들을 구매해서 생산하게 될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병력 대신에 일꾼과 기지에 투자를 한다면 나중에 병력이 두배 세배로 나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늦게 병력을 생산할 수록 생산의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상대가 10을 투자해서 10을 갖고 온다면, 나는 11을 투자해서 11로 대응하는 게 가능해지고 그게 제일 좋은 방식입니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는 맨 처음에는 본진 자원 하나로 생산과 공격을 감행하다가 나중에는 상대의 초반 러쉬를 최소한의 손실로 막고 본진 자원과 앞마당 자원을 거의 동시에 활성화시키는 "더블" 생산기지 방식이 하나의 정석이 되었습니다. 이게 시간이 더 흐르면서 나중에는 No 병력기지 더블 생산기지, No 병력기지 트리플 생산기지 이런 방식으로 진화를 해왔습니다. 상대의 빠른 공격을 어떻게든 나의 작은 병력과 시간끌기로 막아내고, 나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양과 더 고효율의 병력으로 카운터를 날리는 게 가장 일반적인 승리공식이 되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전략 전술에 최대한 느리게 후수를 두면서 나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게 이미 최선의 전략으로 정해져있습니다. 그런데 변현제는? 극단적으로 빠른 공격 병력의 생산과 투입으로 그 후수를 아예 못두게 할 정도의 선수를 둡니다. 그는 스타의 진화 방향을 거스르는 게이머입니다. 혹은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을 가장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게이머입니다.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yjh0501&logNo=222130587264&parentCategoryNo=&categoryNo=45&viewDate=&isShowPopularPosts=true&from=search



다른 게이머들이 이 개념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를 뺏어오는 게임을 구현하는 게 엄청나게 힘듭니다. 스타크래프트가 후수의 게임으로, 시간을 벌고 내가 생산하는데 투자를 하게끔 진화해올 수 있었던 것은 전투병력이 아닌 자원채취용 유닛, 일꾼을 동원하고 건물 지형으로 상대 유닛의 진입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상대의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전술이 엄청나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슨 건물 옆에, 한칸 아래로 다른 건물을 지으면 상대방 유닛이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심시티가 이미 연구가 거의 끝난 상태입니다. 그래서 프로토스의 초반 유닛인 질럿이 올 수 있으니까 테란은 아예 건물을 이렇게 짓자는 게 하나의 정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으면 접근을 해서 때려야하는 프로토스의 질럿은, 건물 틈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원거리에서 총을 쏘는 마린에게 허무하게 맞아 죽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변현제는 이 건물의 바깥으로 빙 둘러서, 다른 곳을 공격하면서 상대방의 방어병력을 유인하고 그걸 다시 쫓아가서 죽이는 눈치싸움을 치열하게 펼치면서 자신이 "공격을 하고 있다"는 이점을 극대화하는 게임을 합니다. 방어를 하는 전술이 이미 최적화가 끝나있고, 상대방도 같은 프로게이머로서 변현제 못지 않은 컨트롤 실력을 가졌는데도요. 혹은 자신의 병력만이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는 지점을 기어코 뺏어서 상대가 공격을 하기 싫게 만듭니다.이 지점에서 변현제의 공격력과 집요함은 역대 모든 게이머 중에 최정상급을 달립니다. 그러면 당연히 막아야되고 방어가 훨씬 수월하다고 여기는 쪽에서 당황을 하게 됩니다. 자신은 상대를 따라다니면서 피하거나 역공을 가하기만 하면 되는데 어느 순간 자기 방어유닛이나 일꾼들이 죽어있거든요.


초반의 선택만 이렇게 극단적인 선수 뺏기로 하는 게 아닙니다. 변현제는 이 선수뺏기를 게임 내내 한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상대의 주둔지가 본진, 앞마당, 제 3멀티 이렇게 나눠진다고 합시다. 그러면 변현제는 이동속도가 빠른 발업질럿을 활용해 선수뺏기 게임을 시작합니다. 제 3멀티를 살짝 찔러보며 게릴라 전술을 펼칩니다. 이러면 사람인 이상 주의가 제3멀티로 몰리죠. 그러면 변현제는 주의력이 덜몰리는 본진으로 다른 소규모 병력을 찌릅니다. 그래서 3멀티의 방어에 전념하다보면 본진이 쑥대밭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술은 전쟁 게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성동격서 방식이기 때문에 상대방들도 다 의식을 합니다. 그러면 변현제는 3멀티, 본진, 앞마당, 본진, 3멀티, 이런 식으로 계속 찌르면서 상대방이 어디에 병력을 집중해 막고 어느 정도로 분산해야되는지 헷갈리게 만듭니다. 이걸 다 막아도 변현제는 계속해서 사람의 주의가 쏠릴 수 밖에 없는 최전선을 지나 다른 곳을 계속해서 찌릅니다. 그러니까 변현제를 상대하는 사람은 머릿속에서 혼자 알람을 울리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 저기? 이걸 가능하게 하는 건 그가 상대의 헛점을 찌르는데 거의 중독되었다 싶을 정도로 자기 유닛을 움직이며 상대의 틈을 후벼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게임은 난장판이 됩니다. 동시 세군데에서 싸움이 일어나거나, 자기 본진이 털리고 있는데 상대 본진도 자기가 털고 있다거나, 유닛들이 계속 와리가리를 하면서 간을 본다거나, 전술이 성공할 때 신출귀몰하듯이 상대의 유닛들을 끌고 다니거나 하는 식으로 게임이 엄청나게 빠르고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게임이 다이나믹하고 속도감이 대단한 볼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게이머의 경기가 다른 게이머들의 경기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위험한 수를 피하고 자신의 자원효율을 극대화하다가 타이밍이 되면 싸우러 나가는 후반지향형 안정적 플레이어들과 다르게, 이 선수는 엉뚱한 타이밍에 치고나가면서 게임의 서사 자체를 예상 외의 것으로 만듭니다. 


어쩌면 그는 역대 프로토스 중 가장 움직임이 창의적인 프로토스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타짜의 고니처럼, 질 때 지더라도 설마하는 틈을 내 모든 걸 걸고 찌르겠다고 덤벼들기 때문에 현재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그런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란 인상마저 주죠. 때문에 위험천만해보이는, 아슬아슬해보이는 그의 그런 게임 스타일이 자신의 답답한 삶에 대한 가상 대안으로서 사람들에게 쾌감을 주는지도 모릅니다.


---


그는 우승을 차지했고 생각보다 우승의 기쁨은 하루만에 사라지며 일상으로 돌아온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상대방 게이머들을 스트레스받게 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중입니다. 어쩌면 그의 커리어 하이인 우승은 그의 게이머로서의 매력을 사회적으로 입증하는데 필요했던 최소한의 조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눈 앞의 상대방을 열받게 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그는 어쩌면 다시 우승을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약점은 하나 보입니다. 일장일단. 그가 찌르기를 좋아하고 상대를 흔들기 좋아하는 만큼 흔들림이 없이 자신도 상대도 준비를 끝마친 상태에서의 한판 싸움을 그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습 아니면 역습으로 무언가 꼬이는 게임을 자꾸 하려고 하죠. 그가 계속 빠르기와 헛점찌르기로 이점을 가져가는 게임 스타일을 유지하며 그의 정상급 실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는 프로토스의 모든 악의가 뭉쳐져서 태어난 선수인 것처럼 다른 선수들에게 심리적 외상을 남기는 게릴라를 계속해서 시도하는 선수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분명 같은 레벨의 선수들인데도 변현제의 이와 같은 공격을 막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스타일리스트가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보여주는 그 완성도 높은 개성은 아주 즐거운 감상거리입니다.


60855940e6ecc.pn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56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842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8627
117722 [영화바낭] '킬러 노블레스 클럽', '안나와 종말의 날'을 봤습니다 [4] 로이배티 2021.11.17 363
117721 아버지의 갤럭시 버즈2 사용기 [6] skelington 2021.11.17 1092
117720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2차 예고편 [4] 예상수 2021.11.17 444
117719 해리 포터 20주년: 리턴 투 호그와트 티져 예고편 [7] LadyBird 2021.11.17 660
117718 드라이브 마이 카 런칭 예고편 [1] 예상수 2021.11.17 294
117717 [영화바낭] 묶음 바낭 '액션히어로', '인피니트 맨', '퍼펙트 머더: 와이 우먼 킬' [6] 로이배티 2021.11.16 559
117716 흩어진 꽃잎 (1919) catgotmy 2021.11.16 290
117715 데이빗 린치의 듄, 상상초월의 괴작이네요... [14] 지나가다가 2021.11.16 1524
117714 폭스와 디즈니... [1] Tuesday 2021.11.16 357
117713 누굴까요? [8] 왜냐하면 2021.11.16 440
117712 더 플래시 티저 예고편 [3] 예상수 2021.11.16 337
117711 <A Woman Scorned: The Betty Broderick Story> - <더티 존 시즌2> 동일 소재 영화(스포일러) [2] 스누피커피 2021.11.16 921
117710 디즈니+ 숨은 명작 찾기 사팍 2021.11.16 379
117709 더 파워 오브 더 도그 - 제인 캠피온 신작 [5] 애니하우 2021.11.16 567
117708 애플 tv 테드 래소 1시즌에 나온 무리뉴 daviddain 2021.11.15 449
117707 [EBS1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어윈 체머런스키 [1] underground 2021.11.15 314
117706 OTT의 홍수에서... (OTT 서비스 후기입니다) [16] Tuesday 2021.11.15 885
117705 디즈니+는 [2] 사팍 2021.11.15 541
117704 저는 모르겠는데 남들이 [23] thoma 2021.11.15 988
117703 게임패스에 토탈워 워해머 3가 올라온대요. [4] Lunagazer 2021.11.15 30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