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한 물개가 평화로운 바닷가에서 잘 살았어요. 생각에 잠기기를 좋아하는 그는 어느날 바위에 누워 일광욕을 하다가 이런 각성을 하게 되었죠. '살면서 내가 하는 일이라곤 헤엄치는 것밖에 없네. 내 수영 자태에 대한 자부심은 있지만, 나보다 실력이 없는 고기들도 찾아보기 어려워. 다들 잘한단 말야~'
삶이 무미건조단조롭다는 생각을 계속 하다 보니 그의 가슴은 점점 답답해졌어요. 그래서 바다를 떠나 곡마단에 들어가기로 결단을 내리고 말았답니다.
무대 위의 시간이 몇 년 흐르자 물개는 콧등에 물건을 올려놓는 기술이 늘어서 관객의 박수를 많이 받게 됐어요. 빈병, 촛불, 나무막대기, 긴칼, 다람쥐 등등 무엇이나 주는대로 콧등에 올려놓을 수 있었거든요. 여러 신문에서 '위대한 물개'에 대한 기사를 읽노라면 그게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자연스레 셀프 인정하게 되었죠.
어느날, 공연을 다니며 떠돌다가 문득 그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서 옛바닷가를 찾아갔어요. 친구들 앞에서 그는 곡마단에서 익힌 기술들을 뽐내고 도시에서 익힌 속어들과 최신 유행의 옷차림을 자랑했죠. 또한 바닷가에 여전히 존재하는 여러 사물들을 콧등에 올리는 솜씨를 보이며 끼륵끼륵 웃어댔어요.
자랑거리 레퍼토리가 끝난 후 그가 친구들에게 물었어요."내가 보여준 기술들을 너희도 시전할 수 있어?"
친구들은 모두 할 수 없노라며 고개를 저었어요. 그가 제의했죠. "좋아~그럼 내가 못하고 너희들만 할 줄 아는 걸 보여줘봐."
할 줄 아는 게 수영 뿐이어서 그들은 모두 바위에서 바다로 뛰어들었어요. '그쯤이야' 하고 곡마단 물개도 바다로 첨벙 뛰어들었죠. 하지만 입고 있는 멋진 도시의 옷과 구두가 방해물로 작용해서 금세 허우적거리게 되었어요. 더구나 몇 년 간 수영을 하지 않았기에 꼬리와 지느러미 쓰는 법을 잊어버렸거든요.
그가 물 속에 여러 차례 가라앉는 걸 지켜본 물개들이 영차영차 구해냈지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어요. 친구 물개들은 그의 옛모습을 그리워하며 검소하지만 정중하게 장례식을 치렀답니다.
덧: 어제, 몇 년 전 정계로 진출한 옛상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우리 회사 방침을 놓고 떠난 그분과 다른 입장에서 부대끼노라니 예닐곱 살 무렵 읽었던 동화 몇 편이 떠오르더군요. 그 중 하나를 개발괴발 적어봤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