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올모스트 페이머스

2021.11.10 05:53

어디로갈까 조회 수:601

날밤을 새우는 날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어제부터 시작된 윗분들과의 머리 아픈 논쟁이 오늘도 이어질 예정이라, 아무 작정없이 잠이 달아나버리고 말았어요. 그런데 오밤중에 난데없이 카메론 크로우의 <올모스트 페이머스>가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한 분야의 권위자가 햇병아리에게 충고하던 장면이요.

심드렁하고 시니컬하면서도 따뜻한 품성의 음악평론가 래스터 뱅스는 굉장히 유명한 록비평가이죠. 음악전문지 '크림'의 편집장이자 1970년대에 이미 록큰롤의 사멸을 예감하던 그는 크리틱을 지망하는 소년 윌리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알아둬. 평론가는 가수와 친구가 될 수 없어. 가수는 너를 모셔다가 밥 사주고 약도 같이 하고 여자와 놀게도 해줄거야. 하지만 그들이 너에게 원하는 것은 딱 한가지뿐이야. 너를 통해 자신이 신神이 되는 것.
세상에는 정직하고 따뜻한 글만 써도 되는 사람들이 있지. 하지만 평론가는 정직하면서 잔인해야 돼. 평론가로서 올바른 명성을 쌓으려면 정직함과 잔인함을 가져야 돼."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래스터가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의 체험적인 진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는'Rreal world' 에서나 들을 수가 있는데, 요즘은 그런 세계를 함께 구성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참으로 힘들잖아요.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한 사람의 크리틱 critic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크리틱은 세상의 등에(곤충)처럼 성가시기 짝이 없는 존재이기 십상인데 세상은 왜 그런 존재를 허락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밥벌이하는 한 직업군 이상의 무슨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그저 따뜻하고 관대한 시선으로 옥석을 가리지 않고 듣기 좋은 말만 한다면, 크리틱이 대중과 구별되는 점이 있기나 한가요. 그 또한 제대로 작동되는 세상은 아닌 거겠죠. 

회사 일로가끔 보스/상사들의 결정에 정직하고 잔인한 비평을 감행하곤 합니다. 아무도 안 하니까 제가 합니다. - - 어제 그럴 일이 있었는데, "당신은 우리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군" 으로 시작되는 반론을 받았습니다.
비평의 대상자에게서 나온 반론은 영향력도 설득력도 없어서 볼멘 항변은 덧붙이지 않았어요.  물론 누구나 자신에 대한 평가의 강도를 자연히 깨닫기 마련입니다. 불쾌하셨겠죠. 그렇지만 신뢰가 쪽박에서 물이 줄줄 새듯 센치멘털하게 일방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 거잖아요. 그것은 표나지 않게 관계의 배면에 공평하게 깔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또 충분히 정직하고 잔인하게 그분들과 맞설 수 있을까? 잠을 놓친 이 새벽까지 줄어들지 않은 고뇌이자 부담입니다. 
어릴 때 읽었던, 누구의 말인지 기억 안 나는  이 조언이 떠올라서 굳이 적어둡니다.
"젊은이는 기성세대에게 환상을 갖거나 그들을 복제해서는 안 된다. 차별하는 권위에 복종하지 마라. 차이만이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위해 힘을 쓰는 게 청춘의 몫이다. 세상의 변화는 구경꾼이나 감상주의자가 아닌 비평가에 의해 시도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의식조차 못할 정도로 느리게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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