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1 20:28
오늘 밤 10시 50분 EBS1에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테스>를 방송합니다.
제가 EBS에서 <테스>를 두어 번 본 것 같은데 둘 다 초반을 놓쳤어요.
두 번째에는 꼭 처음부터 보려고 시계 알람까지 맞춰 놨었는데 마침 그 주에 EBS가 편성시간을 1시간 앞당기는 바람에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납니다.
1981년 아카데미 촬영, 미술, 의상상 수상작이고 작품, 감독, 음악상 후보이기도 했네요.
metacritic 평론가 평점 82점, imdb 관객 평점 7.3점으로 평론가쪽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감독에 대한 비호감이 관객 평점을 좀 낮춘 것 같은 느낌이긴 합니다.
제가 본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는 <Repulsion(1965)>, <Cul-de-Sac(1966)>, <Rosemary's Baby(1968)>, <Chinatown(1974)>,
<Bitter Moon(1992)>, <Death and the Maiden(1994)>, <The Pianist(2002)>, <Carnage(2011)>, <Venus in Fur(2013)>인데
2002년의 <The Pianist> 외에는 다 상당히 독특하고 몇몇은 꽤 파격적인 영화여서 저에겐 좀 흥미로운 감독이에요.
그래서 이 감독이 왜 1979년에 갑자기 소설 <테스>를 영화화할 생각을 했는지 좀 궁금하긴 합니다.
원작과 별로 다르게 해석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쨌든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이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인 <Knife in the Water(1962)>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고 있어요.
예전에 이 영화를 30~40분 정도 보다가 무슨 사정으로 그만 보게 됐는데 마침 유튜브에 올라와 있네요. 영어자막도 있고...
제가 봤던 지점까지는 딱 세 사람만 나오고 보트 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영화여서 완전 제 취향이었죠.
<테스> 시작하기 전까지 이 영화를 마저 봐야겠습니다. https://youtu.be/zrfUi_PZdG8
(이 영화 다 봤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재밌네요.)
<테스>는 대부분 보셨을 것 같은데 혹시 아직 못 보신 분들이나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같이 봐요.
2021.08.21 20:36
2021.08.21 20:44
오늘은 처음부터 보려고 EBS 편성표도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
SKT가 옥수수를 그만두고 BTV를 하나 보네요.
저는 무료영화 보여주는 곳은 어디라도 가는데 btv는 모바일로만 볼 수 있는 건지
PC에서는 좀 찾기가 어렵네요.
2021.08.21 20:45
저는 tv로 봅니다.
킨스키가 이 영화를 2년 정도 준비하면서 데미 무어와 한 아파트 살다 친해졌다고 해요. 데미 무어가 킨스키가 준비하는 것 보면서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하고요. 그러다 킨스키가 폴란스키와의 저녁 식사 때 데미 무어를 데려갔는데 나중에 폴란스키와 데미 무어 모녀가 저녁을 같이 했는데 며칠 후 사만다 베일리 사건이 터져 폴란스키가 유럽으로 도주.
2021.08.21 20:51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로만 폴란스키가 '테스'를 영화화 했다는 사실 자체가 참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생각 뿐입니다.
2021.08.21 20:53
<차이나타운>도 그 전에 만든 사람인데 <테스>를 왜 못 만들까요? <테스>는 제작자 끌로드 베리 성향도 있지 않나 싶네요. 나중에 <위험한 반항아>,<연인> 제작하죠.
<혐오>니 <로즈마리의 아기>도 다 고통받는 여자들이 나와요.
2021.08.21 22:31
그렇게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여성의 고통을 최대한 유려하게 각색하는 일은 여성인권과는 별개의 일이니까...
2021.08.23 16:42
저는 영화 <테스>가 여성의 고통을 유려하게 각색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여성의 고통을 손쉬운 방법으로 과장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테스가 알렉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에서 테스는 처음에는 알렉을 말에서 밀어 떨어뜨리며 강하게 저항하지만
알렉의 머리에서 피가 나는 걸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당황하다가 키스를 하게 되고 처음만큼 강하게 저항하지는
못하면서 뭔가 어리버리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하게 되죠.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아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한 어린 여성의 상당수가 테스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이 흐르면 여성은 왜 자신이 제대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부지불식간에 당했는지 더 자책하게 되죠.
그 장면에서 알렉을 좀 더 폭력적으로 묘사했다면 성폭행을 당한 여성의 고통을 좀 더 손쉽게 표현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어린 여성의 동정심에 호소하며, 어린 여성을 키스와 같은 육체적 접촉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로 만들면서
성폭행을 하는 알렉을 보면서 지금도 얼마나 많이 이런 식의 성폭행이 일어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어요.
나중에 테스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알렉과 함께 살게 되는 과정에서도 알렉은 테스에게 강압적으로 요구하지 않았어요.
테스에게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자기한테 연락하지 않았냐고, 도와주고 싶다고 말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테스가 응하게 만들죠.
여기서도 알렉을 좀 더 나쁜 남자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경제적 힘을 이용해서 여성을 소유하려고 할 때 알렉과 같이 나는 너를 도와주려고 한다는 식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알렉이 교묘히 계획한 게 아니라 그는 살제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겠죠.)
이렇게 가해자가 확실한 악인으로 구분되지 않을 때 피해자는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되고 더 고통스러워지죠.
마지막에 테스가 알렉을 칼로 찔러 죽인 것은 그때까지 그 모든 고통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며 참아온 것,
알렉으로 인해 조금씩 파괴되어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한순간에 폭발한 결과처럼 보였어요.
저는 테스와 알렉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한 것이 여성의 고통을 유려하게(미끈하고 아름답게) 각색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테스의 부모나 테스의 남편 에인젤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너무 길어져서 이만 총총... ^^
2021.08.23 18:09
원작 소설의 알렉은 악인은 아닌 걸로 나오고 마을 전체에 악명높은 난봉꾼이었죠. 그리고 에인젤 아버지로 인해 개심하다가 테스를 우연히 만나고 그녀의 말을 듣고 개심했던 마음이 사라지고요. 영화에는 그 부분이 안 나왔죠. 테스 비극은 이렇게 우연이 만든다는. 에인젤도 테스를 완전히 이해는 못 하고 테스가 알렉 죽인 걸 테스의 혈통에흐르는 기질때문이 아닌가로 생각하기도 해요. 드라마에서는 에디 레드메인이 에인젤 하기도 했을 걸요. 에인젤은 똑똑하긴 하지만 인간적인 이해와 동정심은 좀 부족한 걸로 나와요.
소설에서는 에인젤, 테스의 부모 다 비판대상입니다.
<혐오>의 카드린느 드뇌브 역시 수동적인 인형처럼 있다가 자기 세계를 침범하려는 남자를 살해하죠
2021.08.22 03:22
저는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이 감독이 욕망과 권력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욕망하는 사람과 욕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 간의 권력 관계, 동일한 대상을 욕망하는 사람들 간의 권력 관계 등
그런 측면에서 보면 <테스>도 희미하게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21.08.22 03:00
오늘 영화를 보면서 <테스>가 참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야기의 흐름에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철저히 각 캐릭터의 논리에 따라 진행되죠.
알렉은 알렉이라는 캐릭터가 할 법한 말과 행동을 하고
에인젤은 에인젤이라는 캐릭터가 할 법한 말과 행동을 하고
테스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잠시 스쳐가는 주위 사람들의 캐릭터까지
어느 하나 어색하거나 거슬리는 데가 없네요.
마치 정말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소설에 빚지고 있는 것일 텐데 그런 캐릭터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기 때문에 이 소설이 가진 비극적인 울림이 지금 저에게도 전달되는 것이겠죠.
이런 캐릭터와 이런 권력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 테스에게 일어난 비극은 마치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여요.
아름답게 태어나는 것은, 그래서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의 삶을 파괴하는 불행의 시작이 될 수 있죠.
아름다운 것을 욕망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육체적, 경제적, 사회적 힘을 사용하여
어떻게든 그들이 욕망하는 것을 가지려고 할 테니까요.
테스의 삶이 언제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죽지도 않고 부활하는 그런 캐릭터들을 마주할 때,
그리고 그 속에서 파괴되는 한 사람의 삶을 지켜볼 때
한없는 슬픔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2021.08.23 20:33
작년 이 맘때에 ebs에서 했죠. 제가 듀게에 광고해서 기억해요.
영화 시작할 때 to Sharon이라고 떠요. 샤론 테이트가 좋아했다나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에서 마고 로비가 연기한 샤론 테이트가 폴란스키 선물로 테스의 초판본을 주문해서 받는 장면도 있어요.
이거 btv 무료영화로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