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7 12:09
디아블로2 발매전까지 놀고 있는 스위치를 활용해보려고 이른바 '우주명작'들을 플레이해 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입수한 스위치 게임이 둘다 공교롭게도 오픈월드 게임이네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위쳐3 와일드 헌트>
젤다의 전설을 초반 10시간 정도 플레이한 결과 첫 인상은 '막막함'입니다.
자동사냥이 없는 게임을 접한 양산형 게임 유저처럼, 서술형 시험을 처음 받아보는 학력고사 세대처럼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미션 웨이포인트의 거리, 방향을 안알려주고 직접 찍으라고?'
반면 위쳐3는 작은 미션도 해야 할일을 순서대로, 내비게이션처럼 알려줍니다.
대사를 스킵, 스킵해도 딱히 곤란해질 일이 없습니다.
똑같이 '오픈월드'를 내세웠지만 굉장히 양극단에 있는 두 게임입니다.
젤다는 스토리보다는 (물리법칙에서) '샌드박스'적인 특성을 강조한 게임같고, 반면 위쳐3는 복잡하고 장대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인물을 따라가는 게임같네요.
문제는 둘중 어느쪽도 캐주얼한 플레이 감각을 선호하는 제 스타일이 아닌것 같다는 점이구요. 그러니까 둘 다 한마디로 '어렵다'입니다.
사실 두 게임을 하며 궁금했던 건 "도대체 오픈월드 장르를 좋아하는 유저는 누구일까?" 입니다. 아니면 "솔직히 오픈월드란게 장르이기나 할까?" 정도?
저같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초보인 유저를 위한 건 아닌것같습니다.
그저 그런 미니게임이나 반복미션을 30개에서 200개로 늘려 놓고 "하나마나한 것들이에요. 마음껏 즐기세요" 하며 겸양 떠는 걸 보는 느낌입니다.
처음에 잠깐 신기해 하다가 말이나 차 타고 휙 하며 지나쳐갈 거대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인력과 비용은 엄청나게 소요되고 당연히 가격은 비싸지겠죠.
뭐랄까 게이머 혹은 소비자 니즈라기보다는 업계의 비지니스 모델에 가까운게 아닐까? 의심이 듭니다.
가까이는 영화판의 '유니버스'나 아이돌계의 '세계관' 장사, 아님 멀리는 '4차산업', '메타버스'같은 경제계의 구호와도 같은 것들말입니다.
MCU 세계관으로 개별 영화의 톤이 뭉개지고 설정 따라가려면 디즈니 플러스 가입해야하고, mmorpg 캐릭터생성 창에서 튀어나온듯한 카리나에 비하면 찰흙덩이같은 CG 들이미는 에스파 세계관이 도대체 소비자에게 어떤 잇점이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메타버스' 어쩌구 하는 놈들은 세컨드 라이프가 언제 나왔는지 귀당겨 가며 알려 줘야 하구요.
결론은 모든 시장이 고인물 팬덤 장사 중심이 되어 저같은 초보자는 소외감 느껴집니다. '디아블로2 레저렉션'처럼 옛날에 했던 게임 또 하라고 내놓는 이유를 좀 알것 같습니다. 그렇게 다들 아재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2021.09.17 12:16
2021.09.17 13:10
버겁다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한거 같네요.
2021.09.17 12:33
그게 사실 엄밀히 말해서 젤다의 스타일은 최신 스타일이라기보단 옛날 스타일이죠. 옛날 게임들 중에 미션 마커 찍어 주는 게임 없었잖아요. 그냥 '동쪽 울창한 숲, 연못 속에 뭔가 있다' 이런 식으로 주워 듣고 삽질하며 찾아가는 게 옛날 게임들이었는데, 그런 시스템을 가져오면서 수준급 미술과 여기저기 할거리 숨겨 놓는 구성으로 탐험과 모험의 재미를 추구한 게임...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좀 불편하고 거부감도 드는데, 그냥 게임 속 세상을 헤매고 다니는 것 자체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 느낌이 전혀 달라져요. 물론 취향에 안 맞으면 다 소용 없는 거지만요.
위쳐는 옛날 일본식 rpg에 서양 맛을 잘 섞어 넣은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뭘 선택하고 또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 척 하지만 사실상 그냥 일직선 진행 게임이고 주연 캐릭터들 몇몇의 스타성에 기대는 게임이죠. 개인적으로는 전투가 좀 허술한 게 아쉬웠네요.
2021.09.17 13:17
윗 댓글처럼 오픈월드 대작의 볼륨이 일단 버겁기도 하고 스토리 진행의 종적인 방향과 오픈월드의 횡적인 다양성이 함께 하는게 저는 여전히 어색해요. 스토리 진행 강박이 적은 젤다에서조차 '세계를 구해야 되는데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하는 생각이 자주 들더군요.
2021.09.17 13:39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ㅋㅋ 서브퀘가 아예 없는 일직선 진행 게임이 아니면 대부분 마주치는 딜레마죠. 저도 한동안 그게 참 어색했는데 사실상 모든 게임이 다 그러니 이젠 그냥 포기하고 즐깁니다.
아마 예전에 게임 시스템적으로 그런 시간 제한(?)을 구현한 게 몇 있긴 했던 걸로 기억해요. 서브퀘도 있고 헤매는 것도 있는데 일단 게임 시작하면 바로 지구멸망까지 타이머가 돌아가서 니가 뭘 하든 이 문제는 그 안에 해결하라는 식으로. 아마 파이널 판타지 13-3이었던 듯.
2021.09.17 14:24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읽게 되는 글이었어요.ㅎㅎ 오픈월드라는 것은 정의도 모호하고 말씀대로 과연 장르이기나 한걸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죠. 저도 한때는 오픈월드를 좋아한다고 생각한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좀처럼 손이 안가는 게임이있고 푹 빠져서 도끼썩는줄 모르고 몇백시간씩 하게되는 게임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축적되고나서야 제가 좋아하는 건 오픈월드가 아니라 강력한 롤플레잉 경험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아무 목적없이 세계속에서 방황할 때는 꽤 할만하던 게임이 메인퀘스트를 따라가게 되면 금세 지루해지는 것도 그래서인것 같아요. 전통적인 RPG들과는 달리 메인퀘스트라는 트랙에 오르는 순간 의미없이 정해진 종착지를 따라 달려가게 되니까요. 그래서 전 오픈월드 게임의 메인 스토리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말씀하신것처럼 횡적인 다양성 때문에 어차피 몰입이 깨지기도 하고요. 그냥 게임플레이를 추동하는 작은 푸쉬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매력적인 서브퀘스트들이 더 흥미로운 경험을 주지않나요? 마치 우연한 모험같은 경험이요. 위처3에서는 비슷한 경험을 종종했던것 같아요.
어쨌든 정교한 이야기구조나 게임메커니즘도 중요하지만 저는 게임의 미술이나 톤, 메인 캐릭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것 같아요. 그냥 그 세계에 있는 것이 좋아서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를테면 똑같은 유비식 오픈월드에 거의 차이없는 게임메커니즘을 가진 어새신 크리드 오리진, 오디세이, 발할라지만 전 오디세이만 편애하는 편입니다. 고대 그리스 배경을 좋아하기도 하고 주인공인 카산드라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요. 그래도 가끔 플레이어는 나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직원들이 열심히 준비한 테마파크에 혼자 입장한 손님같은 고립감을 느끼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세계 전체가 갑갑하게 느껴지지요.
2021.09.17 15:10
저도 게임에 있어 중요시하는게 몰입 혹은 일체감이에요. 그걸 위해 NPC와 대화후에 후다닥 뛰어가는 것조차 삼갈 정도입니다.
사실 오픈월드 게임의 메인 미션과 서브퀘들은 각자 구분하면 둘다 좋아요. 과거의 베네치아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미국 서부 황야를 말타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경험이지요.
문제는 메인 미션은 에찌오나 존 마스턴에 감정 이입해서 플레이(당)하지만, 스토리성이 약한 서브 퀘스트는 특정한 캐릭터성을 가진 주인공과 플레이어인 제가 충돌한다는 느낌이 있어 싫거든요. GTA5의 미친 캐릭터인 트레버를 조종해 의도적으로 착한 사이드 미션을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좀 깨는 기분이에요.
자율성이 주어지지만 애초에 설정때문에 그 자율성이 충돌 혹은 침해받는 기분이라서 '차라리 주질 말든가' 하는 불만이랄까요?
2021.09.17 17:50
결국은 정밀하게 구성된 세계와 플레이어가 없어도 상호작용하는 높은 지능의 NPC가 기본적인 인프라로 깔려있어야 그 안에서 랜덤 이벤트도 발생시키고 우연적인 순간이 발생할텐데 오픈월드하기에는 아직 기술적으로 특이점에 도달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 웨스트월드 정도는 되어야...하긴 거기서도 지루해하는 게이머는 나타나긴합니다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