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주의

2021.09.15 14:51

Sonny 조회 수:560

궁극의 연대, 가장 진한 관계의 완성형은 늘 가족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피는 안 섞인 타인이지만 그 타인의 경계를 피보다 진한 유대감으로 초월했다고 말하죠. 그 사례로 힙합 쪽에서도 마이 브라더, 라고 말하거나 교회에서 형제 자매 여러분, 이라고 표현하는 것들, 혹은 사적으로 아주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스스로 "우리는 이제 가족이죠" 라고 말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이걸 곱씹어보면 모든 관계는 가족이 아직 되지 못한 관계와 가족으로 완성된 관계만이 있는 건가, 그런 재미있는 의심이 듭니다. 너무 친하고 좋아하는 사이이지만 가족까지는 되지못한 그런 사람들인 걸까요.


그렇다면 "진짜 가족"은 어떨까요. 가짜 브로, 가짜 시스, 가짜 엄마, 가짜 아빠가 제공하는 궁극적인 그런 감정을 늘 제공하고 있을까요. 핏줄이 이어졌고 태어날 때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진짜 가족의 안정감은 가족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미완성의 관계보다 훨씬 더 농도가 진해야 할텐데 현실에서는 그런 가족이 거의 없죠. 가족이라는 단어는 사실 조건을 갖춘 공동체보다는 절대적인 결속과 애정을 담보하는 환상적 개념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그 고찰은 인간이 어떤 사회를 접해도 태어났을 때의 최초이자 원시적인 사회로 결국 회귀하게 되는 일종의 체념인지도 모릅니다. 가족에서 출발해서, 친구, 동료, 연인, 수많은 가짓수로 나눠지는 관계가 모조리 가족으로 수렴한다면 모든 관계는 결국 불완전하다는 결론밖에는 남지 않을테니까요.


동시에 가족이란 개념은 친구라는 개념보다 더 친숙하고 일상적으로 파고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식당 가서는 이모라고 부르고, 형님, 언니, 동생, 이런 혈족관계가 정확한 관계를 대체하는 경우가 흔하니까요. 특히 아무렇지 않게 중년 여성을 향해 '어머니'라고 호칭하는 게 저는 여전히 어색하고 재미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가 가족관계를 이용해 구매자를 유인한다거나 타인 사이에 마땅히 존재해야 할 거리감이 가족의 호칭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좁혀진다거나 하는 부작용들이 좀 까탈스럽게 떠오릅니다만, 그건 2인칭 호칭인 "당신"이 사회에 아직 자리잡지 못한 한국이란 나라 특유의 관계맺기로 인한 결과물이라고 봐야할지도요. 저는 당신을 아주 친하게 생각하고 당신에게 더없는 사랑과 신뢰를 드리고 싶다는 축약어가 그 호칭안에 다 담긴 것 같기도 합니다.


연하의 타인이 누군가를 "누나"라고 부르는 건 꽤 재미있는 일 같습니다. 집 밖에 있지만 집 안에 함께 거주하는, 경계심이 불필요한 그 가상의 관계로 순식간에 점프를 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동시에 타인이던 사람들이 최초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배우자인 경우에는 정작 남편이나 아내로 부르는 게 그렇게 일상적이지 않으니 한국 문화 속에서의 익숙한 가족이란 일대일로 맺는 관계라기보다는 상하 위계관계에서의 압력을 최대한 희석시키려는 용도가 아닌지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더 쓰고 싶지만 그랬다가다는 역시 이 부조리를 타파하자는 혁명적 흐름으로 빠질 것 같으니 여기에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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