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질문

2021.08.26 14:13

어디로갈까 조회 수:694

어제, 반드시 회사 현장에서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재택 근무 중 간만에 출근했습니다.  며칠만에 저와 대면한 팀의 깐족 막내가 난데없는 질문을 하더군요. "물리학에 경도된 이유가 뭐예요?" 피식 웃음으로 넘기지 않고 또렷하게 답해줬습니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 전체를 다 볼 수 없을 만큼 세상이 크고 넓다는 걸 나는 좀 일찍 깨달았던 것 같아요. 인생에는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여러 길이 있다는 걸 막연히 느꼈는데 왜인지 그 앎에는 물리학이 가장 적합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거죠. 우리 내면에는 마음 뿐만 아니고 정신의 에너지도 흐르고 있고 이것에다 어떻게 방향을 정해주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갔는데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독신으로 사시면 성적인 욕망과의 갈등은 없으신가요?" 

제가 이런 질문을 한두 번 받아봤겠습니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고요. 고수답게 이렇게 친절하게 답해줬습니다.
"그건 오래 전에 프로이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연구에서 주장한 내용을 함 읽어보면 다 이해돼요. 나는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일기>라는 책에서 그의 인용구로 읽었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찾울 수 있을 겁니다.

그 책엔 다빈치가 어떻게 성적인 힘을 학문과 예술에 향하게 하면서 파괴적인 욕구를 생산적인 힘으로 변화시켰는가라는 생각이 담겨 있어요. 후기 프로이트에게서  매우 특징적인 관심사가 이 대목에 반영되어 있고요. 타나토스와 에로스가 있다면 이 둘의 긴장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공익을 위해 어떤 쓸모 있는 존재로 변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전제되어 있지만요. 
더불어 인간은 이 세상에 살러온 존재이며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며 인생에는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사랑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에요. 흠흠"

뻘덧:  은사님이 쓰시는 독서대는 여러 개의 책을 동시에 놓을 수 있는 독서대입니다. 프랑크푸르트의 가톨릭 대학에서 선물받으셨다더군요.  이건 서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데,  미사에서 성경 올려 두고 쓰던 독서대에서 이렇게 확장된 거였죠.
책을 여러 권 동시에 펼쳐 두고 참조할 수 있는 독서대라 매우 편합니다. 여러 자료를 놓고 모니터도 보고 책도 펼치고 할 수 있죠. 이를 두고 '조직화된 무질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갖고 싶은 물건이에요. 깐족 막내가 구해봐주겠대서 설레고 있는 중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73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28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459
116985 샹치..를 보고<스포> [2] 라인하르트012 2021.09.01 623
116984 역마차 (1939) [2] catgotmy 2021.09.01 267
116983 군대에서 받는 그 모든 훈련들, 장비들. 현시대에 필요할까요? [17] tom_of 2021.09.01 836
116982 [넷플릭스바낭] 러시안 팬데믹 아포칼립스 드라마 '투 더 레이크'를 봤습니다 [2] 로이배티 2021.09.01 827
116981 코로나 시대의 지름 [5] thoma 2021.09.01 448
116980 슈퍼밴드2 9회 [2] 영화처럼 2021.09.01 398
116979 코로나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글들이 몇 개 올라왔는데 정작 미국 사정은.. [4] 으랏차 2021.09.01 913
116978 저도 이제 공식적으로 엑박유저입니다. 깔깔 [13] Lunagazer 2021.09.01 435
116977 <이적시장 종료를 남겨두고>그리즈만 atm행 [17] daviddain 2021.09.01 387
116976 미국은 다양성의 나라 [5] catgotmy 2021.08.31 736
116975 마을버스기사의 난폭운전 [5] 사팍 2021.08.31 601
116974 코로나 백신 거부와 사망률 [52] catgotmy 2021.08.31 1494
116973 이것저것 단편적인 소감.. [1] 라인하르트012 2021.08.31 333
116972 코비드-19 백신 [17] 겨자 2021.08.31 1520
116971 [넷플릭스바낭] 본격 중간 관리자의 고뇌 시트콤 '더 체어'를 봤습니다 [16] 로이배티 2021.08.31 945
116970 나쁜 손 뿌리치는 윤석열 [3] 왜냐하면 2021.08.31 756
116969 창밖에는 비오고요 [9] 어디로갈까 2021.08.31 540
116968 공리 나오는 손오공을 보고 그래 불교는 그런거구나 [3] 가끔영화 2021.08.31 402
116967 (영화 바낭)비와 당신의 이야기 [4] 왜냐하면 2021.08.31 282
116966 책을 읽고 정리를 하시나요? [25] 잔인한오후 2021.08.31 93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