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1 10:39
- 아마존 프라임 오리지널은 아닌 듯 하구요. 2019년작 영화이고 런닝타임은 1시간 31분. 장르는 SF.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제목은... '끝없는 밤' 정도 되려나요.)
- 시작이 좀 웃겨요. 지인짜 옛날옛적 볼록 흑백 티비가 보이고 거기에 '트와일라잇 존'의 짭 프로그램 인트로 같은 게 흘러 나옵니다. '이성과 신화의 사이에 존재하는 그곳! 패러독스 시어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뭐 이런 나레이션과 함께 그 화면 속에 50년대 티비 프로그램풍으로 이 영화의 제목이 뜨죠. 그러니까 가짜 티비 프로그램의 에피소드인 척 하는 스타트인데, 꽤 적절합니다. 실제 영화 내용도 굉장히 고풍스럽고, 또 화면 연출 같은 것도 일부러 좀 옛날 티가 나게 찍은 부분들이 있거든요.
(대략 이런 느낌.)
어쨌든 이야기의 배경은 1950년대, '카유가'라는 뉴욕 언저리의 시골 마을입니다. 전체 인구가 300여명 밖에 안 된다고 시작할 때 슬쩍 나오는데, 검색해보니 실제 있는 곳이고 지금도 인구는 50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정말 시골 깡촌이네요. 그러니까 동네 주민들이 서로를 하나도 빠짐 없이 낱낱이 다 알고 지내는 그런 시골인 거죠.
주인공은 둘입니다. 한 명은 '에버렛'이라는 이름의 마을 라디오 방송국 DJ인데... 말이 방송국이지 혼자서 다 해먹는 1인 방송국이구요. 그래도 그럴 수 있을만큼 나름 능력자에다가, 능력값 하느라 좀 거만한 막말 캐릭터... 지만 은근히 상냥한 츤데레에다가 또 의외로 남들 하는 얘기 다 존중해주는 오픈 마인드의 소유자입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페이'라는 고딩 소녀에요. 알바로 마을 전화 교환원 일을 하고 있고 과학 덕후에다가 자기도 뭔가 폼나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휴대용 녹음기를 하나 샀네요. 그리고 그거 사용법 알려달라고 에버렛을 졸졸 따라다니며 아무 동네 주민하고 인터뷰 연습을 하고, 또 에버렛에게 자기가 잡지에서 읽은 미래 과학 이야기 늘어 놓고... 이런 식의 배경 및 캐릭터 소개로 91분의 런닝타임 중 거의 20분을 잡아 먹으며 시작합니다. ㅋㅋㅋ
정작 사건에 대해선 별로 설명할 게 없네요. 전화 교환원 일을 하던 페이가 갑자기 괴상한 소음이 자꾸 끼어드는 걸 발견해요. 이게 뭐지? 하던 차에 에버렛의 라디오 방송에 같은 소리가 끼어드는 걸 듣습니다. 바로 에버렛에게 전화해서 이게 뭘까... 대화를 나누다가 에버렛이 방송에다 대고 '이 소리가 뭔지 아는 분 연락 주세요?' 그랬는데 진짜로 정체 불명의 누군가가 음침하면서도 절박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그 얘기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라면 이미 지겹도록 들어 본... UFO 음모론이죠.
(두 주인공. 제법 케미가 좋습니다.)
- 일단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일입니다. 시작할 때도 밤, 끝날 때도 밤. 낮 장면은 아예 없습니다.
보면 중간에 한 두 번 짧게 비춰지는 강당 장면을 제외하면 화면 전체가 밝은 상황이 아예 없어요. 실내든 실외든 간에 늘 언제나 어두컴컴하고 빛은 항상 최소한으로만 비치죠. 이게 어느 정도인가 하니 대략 상영 시간 30분을 넘길 때까지도 주인공 둘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이 안 날 정도였네요. ㅋㅋ
그리고 마을 고등학교 농구팀이 다른 마을 팀과 시합을 벌이는 마을 축제스런 날이라는 핑계로 영화 내내 마을이 텅 비어 있어요. 에버렛도 혼자 일하고 페이도 혼자 일 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다 농구 보러 가서 길에서 누구 마주치는 상황도 거의 없구요.
뭐 당연히 이게 인디 영화라서, 제작비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만, 덕택에 어두컴컴(1950년대 시골 마을이잖습니까)하고 적막하면서도 은밀하고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잘 살아요.
(그러니까 내내 이런 분위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그리고 1950년대라는 시대 배경을 되게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입니다.
두 주인공이 자기 일을 하는 장면들에 요즘엔 볼 수 없는 옛날 도구들을 사용하는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자주 보여줘서 그냥 그거 구경하는 것도 은근히 재밌구요. 특히 그 끔찍하도록 거대한 녹음기를 낑낑거리며 들고 뛰고 달리고 하는 모습은... ㅋㅋㅋㅋ
또 주요 증인(?)들로 흑인, 미혼 싱글맘 등을 등장시켜서 당시의 사회적 편견 같은 걸 늘어놓고, 그걸 또 이야기 전개에 활용해먹는 센스도 괜찮았구요.
결정적으로 이땐 UFO 음모론 같은 게 지금처럼 대중화 되기 전이구요. 그 유명한 로스웰의 뭐시기도 그렇구요. 사람들이 '외계인'이나 'UFO'란 말을 아예 안 쓰고 '하늘 위의 사람들' 같은 식으로 표현하는데 이게 뭔가 고풍스러우면서도 신선한 디테일이더군요. 벌써 골백번을 들었을 'UFO 목격담'이 이렇게 신선하고 뭔가 있어 보이게 들리는 경험은 진짜 오랜만이었습니다.
(이런 첨단 기기라든가)
(요런 문명의 이기라든가... ㅋㅋ)
- 저는 아주 좋게 봤지만 호불호가 갈릴 법한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대부분은 예산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일단 영화 내용중 대략 95% 정도는 그냥 다 대화 아니면 독백 장면입니다. 거기에다가 화면은 내내 어두컴컴하고 분위기는 적막하니 한밤중에 보다 졸기 딱 좋아요. ㅋㅋ
그리고 사실 스토리는 저엉말로 별 것이 없어요. 우리가 다 아는 그 UFO 음모론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으며 가던 길에서 더 나가지도 않습니다.
50년대 티비 쇼 흉내는 시작과 끝에서만 했어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자꾸 중간중간에 끼어들어가구요. (아마 관객들 지루해할까봐 겁나서 그런 듯)
마지막으로 결말이... 뭐 이런 이야기의 끝이야 당연히 이거 아니면 저거 정도로 선택지가 정해져 있는 겁니다만, 그 중에서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결말이더라구요. 솔직히 전 정말 재밌게 봤는데 결말에서 짜게 식었...;
(이런 건 시작&끝에서 딱 두 번 정도 하면 좋았을 텐데... 엄청 많이는 아니고 그냥 조금 더 합니다. 대여섯번 정도?)
- 암튼 대략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트 하우스풍 UFO 음모론 영화랄까요. 아트 하우스 호러도 많고 아트 하우스 SF도 많지만 UFO, 외계인 음모론과 결합된 건 그리 흔치 않은 느낌? ㅋㅋ
그렇게 식상하다 못해 화가 날 정도의 뻔한 이야기를 1950년대라는 배경과 디테일하게 결합시켜 나름 신선한 개성을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또한 저예산의 한계를 어두컴컴 적막한 시골 마을이라는 배경과 결합해서 독특한 분위기로 승화시킨 전형적인 인디 영화판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영화구요.
보다보면 이야기에 비해 런닝타임이 좀 길다는 생각도 들고, 또 어떤 부분은 그냥 좀 지루하네... 이런 느낌도 없지 않아요.
하지만 전 그냥 느릿느릿 흘러가는 그 악몽 같은 분위기가 좋았고, 전형성에서 살짝 벗어나 의외로 매력적인(?) 두 주인공의 티키타카도 재밌게 구경하게 되더군요.
결과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런 91분이었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재밌을 거라고 추천하진 못하겠습니다. ㅋㅋ
'이야기 디테일보다 독특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분들만 한 번 살짝 시도해보시길.
+ 주연 배우 시에라 맥코믹이란 분을 검색해보다가, 7월달에 아메리칸 호러스토리'즈' 라는 제목의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스핀 오프가 방영되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다 다른 이야기인 앤솔로지 형식이었나 본데, 평가는 처참하군요. ㅋㅋㅋㅋ
근데 또 이달 말에 본가 시리즈 새 시즌이 나온대요. 사라 폴슨, 에반 피터스, 릴리 라베 등 추억의 개근 멤버들이 다시 또 나오긴 하는데... 이게 과연 재미가 있을지. ㅋㅋ 암튼 시즌 제목은 '동시 상영'입니다. 시즌을 반토막 내서 두 개의 이야기로 꾸민다는데... 아무리 사족이지만 본글 내용에서 너무 멀리 나갔군요;
++ 확인해보니 제작비는 총 70만 달러가 들었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
감독의 데뷔작이네요. 본인이 프로듀서, 감독, 각본, 편집까지 다 했다고. 근데 극장 개봉은 커녕 영화제 출품에도 계속 실패하다가 간신히 한 군데서 상영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고, 그걸 아마존이 냅다 구입해서 작년 코시국에 드라이브 인 극장에서 잠시 틀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 올렸다나봐요. 그러니 사실상 흥행 성적 같은 건 없다고 봐야겠네요.
+++ 극중에서 에버렛이 일하는 방송국이 요렇게 생겼는데요.
아마도 War Of The World에 대한 오마주 같은 거겠죠.
++++ 저기 글 첫머리에 짤로 올려놓은 티비 있잖아요. 1950년대 티비가 뭐 저래? 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50년대에 나와서 팔렸던 모델입니다. ㄷㄷㄷㄷ
+++++ 맘에 들었던 포스터 짤 두 개 더 올리며 마무리합니다.
이것도 뭔가 옛날 느낌 나서 좋고
이것도 괜찮네요. 아마도 전부 다 아마존에서 만들어줬겠죠. 애초에 극장 개봉을 못 하던 영화였으니.
2021.08.11 11:34
2021.08.11 12:38
솔직히 설마 이 영화를 보신 분이 있을까 싶어 걍 제 맘대로 막 적었는데요. 역시 듀게는 무서운 곳... ㄷㄷㄷ
말씀대로 모든 걸 다 제작비 탓을 할 순 없겠죠. 감독 겸 작가의 한계도 맞는 것 같아요. ㅋㅋ
다만 애시당초 뭔가 신선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 시나리오이기도 하죠. 그냥 흔해 빠진 UFO 스토리를 어떻게 (돈 안 들이고) 신선하게 만들어서 주목을 받을 것인가... 이런 쪽에 치중해서 만든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0년대를 배경으로 정치적 공정성을 UFO에 결합하는 아이디어 같은 것도 그렇구요. 그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먹혔는지 imdb나 로튼토마토 평점은 되게 좋더군요.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하하.
2021.08.11 13:09
저는 중간에 그렇게 지루한 면도 별로 없었고 끝까지 몰입하면서 봤는데요. 두 분 의견처럼 엔딩에선 많이 허무하고 김빠졌네요. 물론 관객 입장에서도 그렇고 각본가들이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이런 소재에서 다른 결말을 내기가 어렵다는 건 어느정도 이해하지만요.
중간에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이어지는 롱테이크 비스무리한 시퀀스는 아직도 생각나네요. 본문에도 적어주셨지만 만든 다음에 영화제에 처음 출품하고 아마존에서 사서 공개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려서인지 이거 홍보할 때 인터뷰를 보니까 주연배우 두 명이 본편이랑 비교해서 너무 확 성숙해졌더라구요 ㅋㅋ 특히 페이 역할의 여배우
2021.08.11 17:35
엔딩을 그렇게 낼 거면서 뭐하러 주인공들 캐릭터는 그렇게 괜찮게 만들어놨는지 모르겠... 는 건 아니지만 너무 아깝더라구요. ㅋㅋ
저는 그 롱테이크에선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영화 여건상(?) 굉장히 야심찬 장면이고 괜찮게 잘 찍었구나... 싶긴 하더군요.
저도 여배우 검색 해봤는데 하필 나오는 짤들이 대부분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즈' 짤이라서 그냥 다른 사람인가 했습니다. ㅋㅋ 마침 또 맡은 역할까지 변태스런 캐릭터라 이 영화에서 역할과 너무 다르구요.
2021.08.11 17:59
2021.08.11 22:12
그 좀비 영화가 뭘지 궁금하네요. ㅋㅋ
본문에도 적었지만 전 결말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재밌게 보긴 했어요. 아마존 결제하시면 (저도 에바 때문에 한 겁니다 ㅋㅋ) 한 번 재생해 보세요. 30분 정도 보시고도 재미가 없고 맘에 안 드시면 그 때 끄시면 됩니다. 하하.
2021.08.11 23:52
캐나다 영화 <폰티풀>이요. 라디오부스에서만 진행되는 영화인데, 있을 건 은근히 다 있습니다.
2021.08.12 10:39
감사합니다! 재밌어 보이는데 어디서 볼 수 있을지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분위기 좋고, 전반부 몰입도가 상당했는데, 결말 부분이 푸쉬쉬.. 역시 제작비 문제였으려나요.
저예산이어도 확실한 한방으로 끝내는 많은 영화들을 보면 돈 문제만으로 치부하기도 좀 그런데요.
미스테리 장르가 원래 진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마무리하는 경향이 있고, 그게 미스테리물의 본질일 수도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