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하지 않고 감동받았던 영화

2013.02.02 18:46

티포투 조회 수:4484


MSN 메신저가 사라진다는 말을 전해듣고, 얼마 전 허겁지겁 계정에 로그인해봤다가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어요.

몇 년 전, 모 작가 사인회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을 첨부해서 지인에게 보냈던 메일에는 이 날 얼마나 떨렸는지의 감회가 구구절절...

작가분 눈동자에 비치는 내 얼굴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고 쓰여져있더군요. 허허

지금도 기억하는 건, 이 분의 사인을 받을 수 있다고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엄청난 경쟁률이 몰릴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공포에 떨며

참가 신청을 했었는데, 정작 행사장에 가보니 제가 첫번째 참가신청자였으며 전체 희망자 수도 손에 꼽을만큼 적었다는 웃지 못할 사실이었죠.


저는 정말 온몸으로 떨리고 긴장하고 감동받을 때, 남들이 봤을 때도 상반신부터 얼굴 전체가 덜덜 떨리게 되는 특이한 증상이 있는데,

이 증상을 겪을만큼 떨린 적은 매우 오래전이고, 최근이라 해봤자 몇년 전의 저 작가 사인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마음에 동요가 일었던 순간, 감동받았던 순간을 도무지 떠올려보려 해도, 

국민학교 때 음악시간의 단소 시험 때 느꼈던 감정같은 무지 옛날 일들만 생각나더군요.-단소시험 때는, 늘 여지없이 삑사리를 내곤 했거든요.-


최근에 생각한 건, 

무언가에 열을 올린다던가, 예민해진다던가, 어떤 발언에 분노하게 된다던가... 

즉 너무 논리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났던 때는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지만,

아무런 계산이나 분석 없이 무언가에 의해 감동받고 눈물을 흘리고 떨려하고 했던 기억은 점점 드물어지는 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영화를 좋아하는 덕분에, 

단소 불기 시험이나, 작가 사인회와 같은 제 직접적 신변의 일은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면서 그런 현상을 겪은 경험이 의외로 많았다는 걸 인식했어요.

정확한 맥락은 기억이 안나지만, 정성일이 영화를 처음 좋아할 때는, 그냥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갔었는데,

그 이후 단계로 가니 영화의 줄거리, 화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위치를 찾으며 분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말을 했었죠.

때로는 영상에 대한 순수한 몰입에, 쌓여가는 잡지식이 방해요소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 영화를 멀리 한지도 몇 년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제가 영화 일을 할 것도 아닌 이상, 그냥 순수하게 영화를 즐기고 감동받았던 때가 그립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아무런 계산이나 분석 없이 사랑에 빠졌던 영화나 특정 씬은 무엇이었나요?

그 영화가 비록 영화사적으로나 비평을 통해서는 그리 대단치 않은 영화라고 해도요.


저같은 경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프리티 우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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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러 갔을 때 씬을 특히 좋아하거든요.

물론 비비안은 한번도 그때까지 오페라같은 걸 보러 가 본 적도 없었죠.

영화에서 오페라 장면을 좀 길게 비춰주는데, 비비안이 보다가 감동받아서 눈에 눈물이 맺혀가는 장면에 감동받았어요.


그런데 큰 친분은 없지만, 실제 저를 아는 분과 어쩌다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가 <프리티우먼>에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더니, 

다짜고짜 '돈 많은 남자를 잘 만난 여자의 이야기에 환상이 있으신가보죠.'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전 그렇진 않다, 그 반대라고 해도 그 씬이 좋았을 것 같다

(설령 비비안이 더치페이로 라 트라비아타를 보러 갔다 할지라도요.-_-)고 응답했을 때

'뭐, 아니면 말고요.'란 식으로 대답해서 더 언짢아졌죠. 네, 저도 페미니즘 비평을 통해 얼마든지 <프리티우먼>을 깔 수 있다고요.

그래서 이후에는 왠만한 친분 아니고서야 <프리티 우먼>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함부로 안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오해 받을 여지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리틀 로망스>도 비평이나 계산없이, 무척 설렜던 영화고 처음 봤을 때 눈물을 질질 흘린 영화였어요!

아마도 조지 로이 힐 감독과 제 유머코드는 멋지게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간간이 나오는 유머가 빵 빵 터지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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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게분들이 순수하게 감동받은 영화를 알려 주시면,

제가 안 본 것들 중에 기회가 될 때 꼭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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