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4 16:27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 2020)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보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찜해 두었었는데 니나 시몬의 다큐를 보고 나니 음악인 소재의 드라마도 이어서 보자 싶어서요.
1927년 시카고입니다.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와 그녀의 밴드가 음반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에 모인 하룻 동안 일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영화 시작하면 두 청년이 숲 속에서 쫓기듯이 긴박하게 뛰고 있어서 마 레이니 가족 등장하는 과거 장면인가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마 레이니가 남부에서 활동할 때 천막 공연하는 시간에 맞추어 입장하려는 청년들인데 마치 농장에서 탈출하는 노예를 연상하도록 찍었어요. 마 레이니의 천막이 해방구같고요.
영화는 녹음하는 장면보다 녹음을 기다리고 준비하며 보내는 과정이 더 길고 그러면서 인물들 간의 대사로 갈등을 쌓고 갈등이 폭발하는 연기를 보여 주는, 앞의 장면 일부를 빼면 대부분 장면이 실내에서 펼쳐지는 실내극, 상황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원작이 희곡이었습니다. 보고 나서 찾아보니 오거스트 윌슨이라는 매우 유명한 극작가의 작품이었어요.
예술가들이 특유의 까다로움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내용을 좋아하지 않아서 앞 부분의 마 레이니의 행동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보다보면 납득이 가고 공감하게 됩니다. 그 스튜디오에 있는 이들의 배치라던가 지하 대기실 맴버들 사이에서 막판에 벌어진 사건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시각적이고 상징적입니다.
특히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채드윅 보즈먼의 연기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보즈먼이 연기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상당히 움찔움찔합니다. '내려 와라! 한번 붙어보자!' 하늘을(지하실이었으니 천장이지만) 올려다 보며 눈물과 땀범벅이 되어 신에게 소리지르는 장면에서, 유작이 된 이 영화를 보며 누군들 마음 아프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마 레이니 역할의 바이올라 데이비스의 연기도 뛰어났고요. 두 사람 다 이 영화로 상 받을만 했습니다. 연기 보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였어요.
음악에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쩌다 보니 음악인 영화를 두 편 이어서 보았습니다. 니나 시몬도 그렇고 마 레이니도 그렇고 흑인이고 여성인 음악인이 자기 존중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과정에 어떤 왜곡들이 생기는지 보게 되네요.
2021.09.24 17:22
2021.09.24 17:54
압축적으로 잘 쓰여진 원작이 바탕이라 그렇지 싶어요. 오거스트 윌슨이라는 원작자가 퓰리처상 수상 등 인정받은 극작가라고 합니다. 이 사람도 엄마쪽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인데 차별 속에서 학교도 일찍 그만뒀다고 하고 평생 자신의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합니다. 이분도 60세에 간암으로 별세.
보즈먼은 모든 열정을 발산한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는 연기였어요.
2021.09.25 17:17
2021.09.25 18:52
영화에서 마 레이니가 백인들은 부르스를 들을지 몰라도 이해는 못 한다고 말 합니다. 아침에 눈 뜨는 걸 돕는다고 하고요.
실제 뮤지션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고 당연히 일반적인 전기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동안의 일화를 다뤄서 놀라웠는데 하고싶은 얘기는 다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스먼은 아카데미 남주는 아쉽게 놓쳤지만 그래도 유작에서 거의 모든 열정을 발산하고 떠난 것 같아서 슬픈 가운데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