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1 08:33
스포일러는 안 적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근데 스포일할만한 것도 없어요. ㅋ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좀 별로였습니다. 일단 제가 일본문화에 평균이상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네요. 정확하게는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일본문화"에 거부감이 심하지요. 오리엔탈리즘같은 것은 차치하고 너무 구려요. 야쿠자니 사무라이니 하는 것들요. 시대착오적인 느낌도 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배경이 잘 붙었으면 거슬림을 참고 즐길 수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가 거기에 성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플롯이 너무 식상한데다 드라마요소가 불필요하게 길고 상대역의 배우와 합도 잘 맞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냥 존윅처럼 주인공의 과잉폭력에 대한 동기부여는 최소한으로 끝내고 어떻게 멋지게 악당들을 죽이는지에만 초점을 맞췄으면 더 깔끔한 영화가 되었을것 같군요. 장면장면들이 잘 붙지를 않는다는 느낌이 컸지만 그렇다고 좋은 장면이 없는건 아니었습니다. 초반의 일본양키에게 양카를 빼앗아 내달리는 카체이스는 아주 훌륭했어요. 리듬감이나 액션의 템포도 끝내줬고요. 전 항상 카체이스장면을 지루해하는데 이 장면은 아주 인상깊게 봤습니다. 아주 짧게 끝나버리긴 했지만요.
윈스테드는 아주 잘했습니다. 우디 해럴슨도 아주 뻔한 역할을 맡았지만 그래도 역시 믿음직한 배우예요. 곡성으로 국민 '일본귀신'이 되신 쿠니무라 준도 든든하고요. 이 셋이 없었으면 영화는 그냥 볼 가치도 없었을겁니다. 특히 주연 케이트를 연기한 메리 윈스테드는 그 멋진 표정으로 백만번은 본듯한 뻔한 이야기에 그래도 유니크한 느낌을 조금이나마 살려주었고요. 액션연기도 꽤 괜찮게 소화했습니다. 훈련을 많이 한 것 같더군요. 가장 아쉬운 것은 케이트와 정서적인 유대를 나누는 '아니' 역의 마티뉴 미쿠입니다. 이 영화의 거의 모든 배역이 다 식상하고 얄팍하지만 어떻게든 대사에 없는 표정과 연기로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캐릭터의 레이어를 담은 다른 베테랑 배우들과는 달리 '아니'는 장면마다 상대역들이 힘겹게 쌓은 설득력을 깨부십니다. 글의 품질이 이따위인데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 배우도 아닌 어린 신예에게는 좀 가혹한 미션이긴 했을 것 같긴해요. 유창한 영어와 어설픈 일본어를 설명하기 위한 혼혈 설정이 필요해서 배우풀이 제한되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니까 애초에 설정을 무리하게 "일본에서 활약하는 백인여자킬러" 따위로 잡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요.
액션은 b-정도는 되었던것 같습니다. 나름 신경써서 설계된 장면도 많고 안무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핸드투핸드 컴뱃에서 약점이 많았어요. 이건 존윅도 그랬죠. 총격액션은 그래도 멋지게 소화하는 편인데 키아누나 메리윈스테드나 모두 허우대가 쭉쭉 길어서 그런지 격투장면이 속도감이 다소 떨어지고 허우적대는 느낌이 있지요. 스턴트더블이 연기하는 장면과도 연결이 좀 튑니다. 홍콩액션스타들의 비현실적인 격투능력과 연출에 길들여진 아시아인관객의 까다로운 잣대일지도 모르겠지만 몇몇 격투장면에서는 너무 타격의 느낌이 없어서 몰입을 해쳤어요. 나이프 파이팅은 그런대로 괜찮았던것 같기도합니다만 되새겨보면 고어연출에 눈이 속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도 윈스테드의 표정연기가 조금 허술한 부분을 덮어주기는 합니다. 이냥반 얼굴자체가 설득력이 있어요.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소재와 구조의 건파우더 밀크쉐이크와 비교를 하자면 아주 약간 나은 수준입니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가 캐런 길런보다는 훨씬 좋은 액션배우고요. 종합하자면 스타일리시하려고 애쓰고있고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진부하다는 표현조차 진부한 플롯과 들쑥날쑥한 디렉팅이 발목을 잡은 액션영화 정도 되겠네요. 아무튼 여성 주인공의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기대작들의 결과물들이 영 시원찮아서 좀 섭섭해요. 뭐 그래도 이런영화들이 자꾸 나오다보면 언젠가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마스터피스가 나오겠지요.
+ 초반 장면의 배경음악에서 생뚱맞게 한국어가 나오길래 역시 K-pop이 대세인가 하는 국뽕이 잠깐 찼었는데 일본의 래퍼 챤미나가 부른 I'm a pop이라는 노래였어요. 엄마가 한국인이라더군요.
2021.09.11 12:50
2021.09.12 16:22
그래서 저는 스캇 필그림으로 영혼을 정화한 뒤 "교묘한 탈출"을 감행하였지요. 안나푸르나가 배급한 게임 중 오랜만에 맘에 드는 애가 나왔네요. ㅎㅎ
2021.09.12 21:31
2021.09.12 22:48
2021.09.11 13:22
2021.09.12 16:25
2021.09.11 16:24
따끈따끈 갓나온 영화인가 봅니다. 몸으로 막싸움 장면은 본 시리즈가 참 좋았습니다. 그 이외 서양인들 격투 장면은 본인들도 권투 폼으로 싸워야 할지 무술 종류로 싸워야 할지 주저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손에 뭘 들고 싸우고 싶어하는 것 같고요. 타인의 몸에 직접 손을 대는 걸 매우 실례로 여기는 문화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암튼 다부지지 않아요.ㅎㅎ
2021.09.12 16:38
우왕. 이렇게 글이 먼저 올라와 있으니 좋네요. 저는 정말 짧게 적거나 그냥 스킵해도 될 듯. ㅋㅋ
진짜 내내 한숨 쉬면서 봤습니다. 초반부터 보여지는 어설픔들 때문에 시작과 동시에 기대치는 팍 내려갔는데, 그래도 좋아하는 배우님이 계속 화면에 나오시니 기대를 아예 내려놓진 못 했으나... 하아. ㅠㅜ 말씀대로 초반 카체이스씬 하나는 게임 느낌이면서도 역동적으로 잘 연출했던데 기억날만한 장면은 그것 뿐이고. 액션은 평타는 되는 정도였으나... 마지막 싸움은 그게 뭔가요. 그냥 영화를 만들다 말고 시원하게 내려 놓아 버린 느낌. ㅋㅋ 스토리가 워낙 조잡하니 시작부터 예고됐던 마무리 장면도 아무 감흥이 없었구요.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에 관심을 가진지 어언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 이상은 안 되려나봐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