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심장(끌로드 소떼)

2021.07.26 00:45

thoma 조회 수:447

26693037530F502813


'연애를 다룬 창작물' 하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 써 봅니다. 디브이디로 보고 나중에 극장에서도 한 번 봤었어요.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처음에 '금지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지다가 요즘은 원제대로 소개되는 것 같습니다. 아래에 내용 다 있어요. 내용 다 알고 봐도 좋은 영화입니다.

스테판과 맥심은 바이올린 수리, 제작 일을 함께하는 동업자입니다. 스테판이 공방 일을 하고 맥심은 영업을 맡아 운영합니다. 이들 사이에 까미유라는 아름다운 연주자가 있어요. 맥심의 애인입니다. 맥심은 곧 이혼하고 이분과 결혼하려 생각 중입니다. 그런 맥심의 이중생활이 스테판은 약간 역겹습니다. 둘 사이에 우정은 없어요. 예상이 되시죠? 스테판과 까미유는 맥심으로부터 소개받던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고 서로를 의식합니다. 스테판은 출장 간 맥심 대신 까미유의 녹음실을 방문하고 휴식 시간에 카페에서 잠시 만나 서로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알게 돼요. 결국 까미유는 스테판에 대한 마음을 맥심에게 고백합니다. 까미유는 자기 상황을 정리하고 스테판에게 갈 준비를 한 겁니다. 녹음을 마친 날 (마지막 단계까지 갈 수 있다는 암시를 하며)둘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까미유에게 스테판은 '뭔가 잘못 알고 있다. 나는 댁을 좋아하지 않는데.' 라고 말합니다.

이후 스테판은 까미유에게 '아무것도 아닌 공허한 인간'이라고 욕도 먹고 맥심에게 뺨도 맞고 사업도 갈라서게 됩니다. 스테판은 왜 그랬을까. 연습하는데 찾아가서 뚫어지게 쳐다보고 녹음실 갔던 날의 카페에선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누가봐도 고백 비슷하게 들리는 말까지 했으면서.

제가 생각하기엔 이렇습니다. 까미유와 호감을 느끼던 날 중 하루, 스테판은 맥심을 따라 수리 중인 아파트엘 갑니다. 까미유와 들어가 살 집인데 여긴 까미유의 연습실로, 여긴 침실로 하며 맥심의 의도적이며 자랑섞인 안내를 받다가 스테판은 갑자기 현기증을 느낍니다. 맥심이 건넨 물을 마시고 겨우 정신을 차리죠. 아마 이 순간이었을 겁니다. 까미유와 자신이 지금 한 걸음 더 내디디면 어디로 가야하는지가 보였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표현하고, 마음을 확인한 후, 이어질 일이 파노라마로 눈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집'이라는 물질의 이미지로. 그 단단한 현실로 말입니다. 맥심의 진지함에 압박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치기어린 행동의 가벼움에 어지러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많은 서구의 영화들에서 두 사람이 좋은 감정이 생기자마자 마지막 단계로 '일단은' 가보고 그후에 생각한다거나 그게 아니면 그 마지막 단계가 오로지 목표인 전개를 보다가 이 영화를 보니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현실에서 이처럼 한치 앞을 보여주는 파노라마가 작동되어 준다면 좋겠구만...아니 경고음은 언제나 울리는데 우리 스스로가 무시하는 거겠지만요. 왜냐하면 스테판처럼 혼자 늙어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겠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스테판은 재결합한 까미유와 맥심을 만나 안부를 주고받고 연주여행을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카페에 앉은 채 봅니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홀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하지 않길 잘 했지? 내가 맥심 너만 못해서 혼자 있는 게 아니란 거 잘 알았겠지? 난 공허한 사람이 아니야, 나에겐 일이 있으니까? 역시 커피는 혼커피야? 나는 홀로 늙어갈거야...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는데 다니엘 오떼이유의 표정이 매우 쓸쓸하다는 건 누구나 동의할 것 같습니다. 차가운 심장의 소유자면서 그걸 알고 그 길로 충실했으니 잘 된 겁니다.


@ 라벨의 바이올린 피아노 협주곡이 매우 아름답게 오래 나옵니다. 엠마누엘 베아르가 배웠다는데 잘 하더라고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039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946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9719
116627 친구가 촬영감독 [2] 사팍 2021.08.02 387
116626 웃음을 주는 기자님 [25] thoma 2021.08.02 913
116625 [넷플릭스바낭] 괴감독 신정원의 평범한 괴작 '차우'를 봤습니다 [14] 로이배티 2021.08.02 518
116624 [주간안철수] 윤총장에게 싸대기 맞고 안철수에게 화풀이 [7] 가라 2021.08.02 640
116623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쥴리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17] 지나가다가 2021.08.02 957
116622 배경음악이 뭔지 사람들이 수없이 물어봐도 대답을 안해 가끔영화 2021.08.02 296
116621 인간관계에서 가오도 자존심도 없습니다만 [5] 적당히살자 2021.08.02 670
116620 파이널 판타지 3 픽셀 리마스터 (스퀘어에닉스) [3] catgotmy 2021.08.01 378
116619 이종범은 왜 아들을 하나만 낳았을까요 [11] daviddain 2021.08.01 990
116618 군대의 부조리에 대해서 [29] 적당히살자 2021.08.01 817
116617 SH사장 포기 [6] 사팍 2021.08.01 780
116616 넋두리 5 (백두번 째 애인이었던 이와의 재회를 앞두고) [13] 어디로갈까 2021.08.01 691
116615 주말ㅡ머더리스 브루클린/죽음의 섬/street of dreams [14] daviddain 2021.08.01 473
116614 컴퓨터 카톡 아찔 [4] 가끔영화 2021.08.01 478
116613 올림픽뽕이 무섭네요 [4] 정해 2021.08.01 989
116612 여자 배구 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110] 로이배티 2021.07.31 1495
116611 홍준표가 왜 다음영화에 [4] 가끔영화 2021.07.31 489
116610 페미니즘에 대해 [8] catgotmy 2021.07.31 944
116609 GS 그손 사건에 대한 뉴욕타임즈 기고문 [2] bubble 2021.07.31 980
116608 얼마 전 브라질에 내린 눈소식 [4] 예상수 2021.07.31 48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