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6 15:47
1.
장기화 된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사소하지만 이런저런 불편한 사유들이 촉발되어 점심을 혼자 먹기 시작한 지도 벌써 6개월이 넘어가네요.
초반엔 냉장고털이 한답시고 먹다 남은 반찬이랑 밥이랑 도시락 싸갖고 와서 자리에서 먹기도 했는데, 뭐든 목적성 공간 분리에 민감한 사람이라 점심밥은 식당에서 사먹는 걸로 자진타협하고 요즘은 밖에서 되도록 짧게 해결하고 있습니다.
근무하고 있는 지역이 맛집으로 따지면 장안 세 손가락에 들어갈 만큼 맛있고 가격도 착한 편이라 아직도 6000원~7000이면 푸짐하고 맛있는 식사와 풍미를 맛볼 수 있는 맛동네예요. 이 동네에서 근무 3년차가 넘어가고 근처 식당을 다 가본 건 아니라도 고정적으로 다니는 곳에서 맛으로 실망한 적은 없었어요.
화장실만 지저분하지 않고 분리되어 있으면 남성향?의 식당도 나쁘지 않고, 이미 혼고기&혼술을 시전한 게 벌써 20대부터라 혼밥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지요.
하지만 요즘 몇 주간은 평균대비 비싸면서 맛없고 예의 없는 식당에서 마음이 상하고 돌아오네요,.
애초에 식욕도 식탐도 없는 편이고, 저에게 먹는 행위는 그냥 생존 목적이 가장 크기에 저 또한 하루 중 유일하게 정식으로 챙겨먹는 끼니로는 그 비중과 중요도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게 점심입니다만. 그렇다고 늘 대단한 정찬을 먹을 건 아니지만 그때그때 그날 먹고 싶은 걸 먹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자영업 하시는 분들 힘들다 힘들다 해도 어떨 때 좀 심한가 싶은 식당들도 더러 있네요.
예를 들어 점심 밥값을 1만원 내는데, 자동주문기 이용에(이건 그렇다치고), 20분 가까이 기다려 받은 식사는 메인인 탕에 공기밥, 그리고 깍두기 서너 점이 고작.
순간 당황해서 이게 전부냐고 물었더니, 그런 거 묻는 사람 처음 봤다는 식으로 쳐다보면서 반찬은 이게 다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양심상 메인인 갈비탕에 뭐라도 고기가 실한 갈빗대라도 한두 대는 있어야 할 텐데 말라 비틀어진 뼈대에 살이라고는 없대요. 국물은 당연히 MSG맛이 심하게 나고요. 식당에 사람이 하나도 없길래 코로나 때문인가 했는데, 없는 이유가 있었네요... 조만간 여기도 간판이 바뀌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한 군데는 인건비 때문에 알바를 안 쓰고 사장님 가족이 직접 다 서빙을 하는 식당인 것 같은데, 제가 이 동네 회사 입사 초기에 드나들며 봤었던 사장님 아드님으로 추정되는(?) 남자분이 몇년 새 초반의 의욕과 친절함을 잃고 고생한 흔적이 역력해지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급기야 까칠함과 불친절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타더니, 얼마 전 방문했을 땐 급하게 그릇을 치우다가 다른 손님들이 고기와 김치를 잘랐던 가위를 떨어뜨려 그게 제 발에 꽂힐 뻔 했는데도 죄송하다는 말을 안 하더군요. 주문을 이미 한 상태였지만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나왔습니다. 그날로 발길을 끊었구요.
위의 예시들을 겪은 제 소회는... 말하기 애매하게 뭔가 몹시 기분 나쁘고, 본인들 생업이 힘들다고 저렇게 힘든 티를 손님에게 내나 싶은 불쾌함이었습니다.
저도 쓸데없는 과도한 친절 , 불필요한 상냥함 따위 거북스러워 하는 사람이지만, 각자 최소한의 역할극을 거슬리지 않게만 해주는 것이 그렇게 힘든가요. 무료급식소에 배급받으러 온 사람에게도 안 할 것 같은 행태에,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하는 생각보다, 코로나에 각박한 시국에 존버하긴 서로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손님한테 이런 식으로 장사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2.
1의 에피에 대한 1g의 인류애도 나눠줄 수 없는 건 저도 살아가는데 지칠 만큼 지쳤고, 질렸기 때문이죠. 평균수명 백세시대에 도대체 내 노년이 어찌될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일을 해 왔고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이제 더 이상 남의 회사에 기여해서 남 좋은 일 하고 싶지 않네요. 예전에도 회사의 대표라는 인간군상들을 좋아하지 않았고(좋아할 리가!), 내 할일 똑바로 하고 사리분별 잘 하며 절대 어느 정도 이상의 선을 넘지 않도록 철두철미하게 지내왔지만, 결국 2n년 넘는 직장생활에 남은 결론은 회사는 자본주의가 낳은 최고 더러운 똥덩어리가 아닌가 해요. 철저히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모순적 집합체.
3.
그 와중에 만났던 숱한 관계들 중 간혹 이건 진짜다 싶은 인연들도 있었지만, 결국 관계에 염증나는 계기들을 기회로 제가 일방적으로 다 단절하고 차단하고 지냅니다. 지금 제가 다니는 조직의 남은 인력들과는 철저히 그냥 어쩌다 마주치는 동네 주민들 같이 인사 한 두 마디 나누고 각자 할 일 하면서, 하지만 내가 내리는 지시와 명령은 그들이 수행해야할 것이고 그 지점이 잘못됐을 땐 내 가차없는 비판과 독설을 견뎌야 하는 순서만 남겨놨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떠난 사람들은 결국 저에게 오게 돼 있는 건가요?
제 속으로 스스로 쌓아두었던 벌점을 계기로 차단한 관계들임에도(저는 철저히 제 어떤 모습도 노출되지 않도록 다 막아버립니다)그들은 기어이 연락을 해와요. 나에 대한 뒤늦은 소중함 때문이든 뭐든, 그런 미련함 따위는 내 영역이 아니므로 답은 커녕 미동도 않고 응하지 않으며 몇 년이 지났음에도요.
일전에도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길래 뭔가 봤더니 제 밑에서 일하던 후배였습니다. 이미 내 성격을 아는 사람이고 내가 어떤 조치를 취했을 거라는 것을 잘 알 것이기에, 내게 그 신호를 보내기까지 망설였을 고민이 엄청난 방어적 문장으로 점철된, 이를테면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도 생략하고 잘 지내셨죠? 이후 그동안 내 생각이 많이 났다면서 본인 메세지가 불편하면 연락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문자를 보고 이게 무슨 뜻인가 싶다가, 네네 저는 답을 하지 않았어요. 그 와중에 끝까지 체면은 잃고 싶지 않는 그 행간들을 읽으며 불편보다는, 그냥 싸인에 응할 필요를 못 느껴서요.
직장에서 만났든 사적으로 만났든 대다수 관계에서 다들 본인들 더 잘살아보겠다고 떠났을 때 저는 충분히 행복을 빌어줬고 누구 하나 섭섭치 않게 보내줬어요,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도, 그리고 물질적으로도. 그리고나서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서 저는 그 관계들을 미련없이 접었죠. 누구와든 내 옆에 있을 때(만) 잘하자,가
제 인생의 모토거든요. 모든 관계의 골든타임은 현존하는 지금이 가장 유의미 한 것! 그리고 부득불 떠나게 됐을 땐, 떠난 직후부터 더욱 공들여 가꾸기 시작해야 하는 법. 그 사소한 중요도를 알지 못하는 당신들은 왜 내가 언제든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라고 멋대로 착각하는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고 돌아오면 받아줄 것이라는 방만하고 오만함에 응답할 이유는 여지껏 찾지 못했어요.
4.
아름다움만이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주문을 걸며 주 7일, 평균 10회~12회가 넘는 발레 수업을 듣고 있어요. 발레를 하기 시작한 건 몇 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미쳐있는 건 처음이죠. 지인 농담대로 무슨 국발 입단할 거냐는 소리 들어가며 하고 있는데, 현생의 일과 발레의 비율이 이제는 49 대 51로 역전이 됐을 만큼 엄청난 일과가 됐네요. 지금 제 직장은 그냥 발레비를 벌기 위한 ATM기계일 뿐입니다, 저 같은 일충이가 이렇게 됐다는 게 스스로도 놀랍지만 더더욱 놀라운 비극인 건...
일하는 시간 말고는 다 쏟아붓고(주말, 일요일, 공휴일, 휴가 때까지 다 발레, 틈만 나면 발레할 생각 뿐인 뇌구조) 갈아넣는데도 노력대비 실력이 너무 일천하다는 냉정한 팩트예요. 지난 몇 년간, 제가 발레에 투자한 모든 것을 일의 성과로 따졌다면 저는 이미 독립된 하나의 회사를 차리고도 남았을 투자와 열정이었는데, 이 취미가 이렇습니다. 고단한 삶의 여행처럼 즐겁자고 시작한 취미가 발목을 잡아서 요즘엔 고행이 됐지만 이렇게 자처한 것은 본인이므로 누구를 원망도 못하죠.
강박증에 완벽주의 성격 때문에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로 콩쿨도전은 계속 미루고 있지만, 그래도 올 가을엔 취미인으로서는 엄청나게 과분한 규모의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그에 걸맞는 실력이 되고자 평일 퇴근 후 저녁마다 데일리 클라스에 주말집중 클라스 & 공연연습 +일요일엔 개인레슨까지 쉴 틈이 없어서...
요즘엔 고양이랑 놀아줄 시간도 없는게 제일 안타깝네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좋은 이 두 가지를 내 생활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벅찬 시기를 그나마 견디는 숨통이 되어주는군요!
2021.08.06 20:47
2021.08.06 23:25
과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제일 칭찬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08.06 22:28
그래도 발레하시면서 허리나 발목 안 다치고 꾸준히 계속 하고 계시는 게 참 대단한 거예요.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부상으로 그동안 노력해서 쌓아올린 거 다 까먹는 상태가 되기 쉽거든요.
저는 운동을 좀 미련하게 열심히 해서 허리 나가고 팔목 나가고 무릎도 나가고 그래서 쉬다가
그동안 노력했던 거 다 까먹고 코로나 시국에 살만 찌고 있어요. ^^
너무 몸을 갈아넣어 연습하지는 마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2021.08.06 23:29
발목 얘기를 거론하시는 거 보니 언더그러운드님 하시는 운동도 뭔가 촉이 오는, 비슷한 취미신가요? ㅎㅎ
저는 진짜 발레에 미친자가 되어 산게 벌써 몇년째인데... 사실 주변에서 다치고 부상당한 거 듣고 보면 벌벌 떨어요.
지금 제가 목숨과 건강을 지키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고양이와 발레예요. 특히 다치고 부상 당하지 않으려고 엄청 조심합니다.
그동안은 제 모든 육체와 멘탈을 콘트롤 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입찬 소리는 말라 했다고 저도 진짜 더 신경쓰고 몸을 아낍니다.
사실 더 갈아넣고 싶지만 직장에 묶인 몸이라 시간이 없는게 한이죠. 그렇다고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발레밖에 할 일이 없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고요.
공감어린 독려와 격려 감사합니다. 언더님도 부디 건강 잘 지키시길요!
2021.08.06 22:35
뻘소리지만, 처음 간 식당의 음식 맛이 심각하게 별로라서 막 화가 나고 있는데 식당 사장님이 엄청 친절하시면 그것도 상당히 곤란합니다. 덧붙여서 노부부가 둘이 하는 식당이라서 함께 엄청 친절하시거나 하면, 그게 또 문 연지 얼마 안 된 식당이고 하면 레알 진심으로... ㅠㅜ
2021.08.06 23:34
저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 잘 알아요! 이 동네의 생래적 특성상 맛없기도 쉽지 않은데 확실히 검증 안 된 프렌차이즈 식당을 차린 분들은 오래 가긴 힘들더라구요.
그리고 이미 본인들이 자신들의 음식맛에 자부심이 있다면 고객들에게 함부로 하지도 않지요. 이 동네 노부부가 하루종일 주방에서 지지고 볶고 하는 식당도 꽤 많아요. 주문하면 최소 25분쯤 기다려야 하는? 하지만 맛이 있고 위생적이고 무엇보다 손님의 기다림에 대한 성의를 보이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결국은 모든게 공들인 만큼은 돌아오는 것이고, 설사 지금 시절이 하수상하여 그 보상이 쉬이 오지 않을듯 너무 가혹한 시기라 해도 그 분풀이를 은근히
손님에게는 안 했으면 싶어요. 자영업자 만큼, 직장안들도 다같이 힘든데... 그래도 상생하자며, 그냥 내 돈 주고 밥 한끼 맘편히 먹자고 가는 건데요.
2021.08.07 14:02
2021.08.07 21:47
맞아요! 바로 그 심리가 다 읽히더라구요! 제가 누구를 재단하고 심판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저는 부모자식간의 관계도 너무 유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맞는 사람들 같이 있을 때 최선 다하지만, 떠난 이후 케어하지 않는 관계는 상호간의 공백이 그럴만한 온도였다고 판단하면 그냥 손절합니다. 저는 사실 저 포함 최소 1년 동안 형식적이고 기본적인 안부인사 한번 안 하는 관계들은 주소록에서 다 지워요. 생일 같은 건 피차 오글거리지만, 아무리 먹고 살기 바빠도 일년에 두 번의 명절과 신정구정이라는 명분상 인사하기 좋은 시기가 있고요. 이게 사소하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큰일에는 더더욱 무심할 사람들이죠. 무엇보다 스스로 떠났으면, 스스로 개척해야죠, 돌아보지 말고. 떠나보니 내가 너만큼 사랑할 사람이 없다는 논리라면 혹시 모르겠는데, 대부분은 너만큼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 좋은 사람이 없더라는 회한에는 감흥이 전혀 없네요. 저는 그러려고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죠.
2021.08.07 15:05
제가 위에 쓰신 이유로 점점 편의점 음식이나 밀키트, 간단하게나마 제가 싸 간 음식에 의존하게 됩니다. 꼭 식당이 아니더라도 편의점만 해도 내가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 하는 분위기 풍기는 주인이 있는 곳은 일부러 좀 더 걸어서라도 딴 데 갑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무척 맛없는 음식 돈 주고 먹었던 적이 있는데 - 재료가 아깝고, 만든 사람의 미각 손실이 의심되는 - 계속 눈치주고 만든 자신은 맛있는데 네가 이상하다, 복 떨어지게 먹는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기가 음식 못 하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기에는 존심 상하고 아닌 척 하려니 그런 거죠. 쓰신 대로 무료 급식소에서 얻어 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눈치 보며 먹어야 했는지 모르겠네요.
어느 여자 선배가 돌싱된 후배들이 왜 자꾸 자기한테 전화하느냐고 그러시더군요. 그 분도 팍팍하게 사시는 분인데 왜 그러는지 옆에서 듣는 저도 모르겠더군요.아마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싶네요.
2021.08.07 22:31
내가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람은 진짜 구려요.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마인드가요. 돈 백만원을 벌어도 자기은행 이자가 아닌 타인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이라면 프로의식을 가지는게 맞죠. 늘상 그런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생각으로 스스로를 가두면서도, 자기존엄은 인정받고 싶은 모순이라면 이제 좀 지겹네요. 본인이 그런 사람이 아니면, 정작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를 좀 보고 싶구요.
제 경우는, 돌싱상담? 하소연은 아니지만 암튼 자기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떠날 때 이미 충분히 재고할 시간을 줬었고, 그럼에도 떠나기로 했을 땐 진심으로 행복 빌어줬기 때문에 저에겐 감정도 무엇도 잔고가 남지 않았네요. 일말의 에너지와 신경분할조차 내 삶과 고양이와 발레하기도 아까워요.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