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허영심.

2021.08.06 02:21

잔인한오후 조회 수:1058

  무슨 뜻인지 모르는 단어들로 쌓아 올려진 탑을 둘러보는걸 좋아합니다. 그런 산책을 여러 번 하다보면, 은전 한 닢처럼 몇몇 고유명사들을 손에 쥘 수 있고 적합한 상황이 아닌 분위기에 어울리거나 멋지게 발음될 위치에 꺼내 보게 됩니다. 그렇게 쓰인 비전문적인 글들이 별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낱말들을 낚기 위해 여전히 밀밭 사이를 방황합니다. 헤매인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글을 써내는 것은 일종의 도를 닦는 것과 비슷합니다.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있어보이려는 욕심을 끊임없이 밀어내야 한다는 면에서 말이죠.


  지인이 예전에 저보고 허세 탐지기가 고장났다고 말해 준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별 말도 안되는 허세를 부리고 있을 때, 그걸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죠. 그 말을 금과옥조 삼아 누군가의 말이 혹할 때, 그가 말하고 있는게 허세는 아닌가 회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넷 세계에서는 짧게 치고 빠질 수 있으니 어떤 정보의 근원이 아닌 곁가지만 말하고, 근원의 모종의 이유 때문에 밝힐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워놓는 편이 많고 세 개의 구멍이 있는 상자처럼 그 안을 남이 알아서 채워넣토록 하는 트릭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말하지 않는 것은 그냥 말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끝까지 다 털어 내었을 때야 강한 사람이라  존중하게 됩니다.


  아마 그런 허세에 약한 것은, 제게 똑똑하고 싶다는 욕망이 꽤 높은 순위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있고 싶지만, 알맹이를 보이는 것은 껍데기이니 모순 속에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써놓고 보니 적나라한데, 지적인 것과 지적 허영인 것의 차이를 알 수 있네요. 굳이 껍데기로 알맹이를 보일 필요가 없으니 이미 지적이라면 괴로울 필요가 없습니다. 역시 제 욕망은 똑똑하고 싶은게 아니라 똑똑하게 보이고 싶은 것인가 봅니다. 아아, 그래도 똑똑하지 않은데 똑똑해 보이는 것만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똑똑해서 똑똑해 보여야 합니다. 이런 뱅뱅 도는 이야기는 이제 넘겨버리고. (허영심의 근원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고 싶지만.)


  보니까 이상한 글을 쓰는 패턴이 있더군요. 저는 직장생활 하면서 커피를 아예 마시지 않는데, 가끔 콜라를 마시면 밤에 잠을 못 이룹니다. 액상과당과 카페인에 취해 밤에 잠을 못 이룰때면 이런 부끄러운 글을 쓰게 되더군요. 오늘도 피자를 과하게 먹고, 1.5리터 콜라를 꽤 마셨으니 카페인 과충전 상태입니다. 내일 연차를 내놓아서 마음이 편하기도 하구요 :P 그래도 내일을 더 망쳐놓기 전에 오늘은 좀 더 빨리 자야겠습니다. 무설탕 콜라는 있지만, 무카페인 콜라는 없는 것 같으니 이런 상황을 피하긴 어려울듯 싶군요. 무설탕 사이다를 시도해볼까요. (역시 그냥 물을 먹는게 최고겠군요.)


  누군가 '최근에는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보다 적다'라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작가보다 독자가 더 희소한 세상이라면 열심히 독자가 되자, 라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막상 쉽지 않은 일이네요. 좋은 책들을 골라 읽는 것도 의외로 품이 많이 듭니다. 좀 더 날렵하게, 읽을 책만을 사는 버릇을 잘 키워봐야겠습니다.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책을 빌려 운에 맡기고 사는 책들은 고심해서 정말 읽을 책들만 사는 식으로요. (하지만 정말 읽을 책일걸 사보지 않고 어떻게 분간할지는... ) 기왕에 독자가 될 것, 더 좋은 독자가 되는 방법은 뭘까 고민할 수도 있군요.


  딴소리입니다만 듀나님의 몇몇 단편들은 인터넷 세계의 알레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치광이 하늘] 류요.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도 약간. 어떠한 형체로 아무렇게나 변할수도 있고,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의 특수한 룰을 따른다는 것도 그렇고. 이미 토끼로 변해버린 듀나님을 상상하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집니다. 또 딴소리입니다만 한국인들은 정말 일 잘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반례를 떠올려보려고 해도 그와 관련된 캐릭터들 밖에 떠오르질 않습니다. 밉상인데 일 잘하는 드라마 주인공들과 해석이 왜곡되어버린 [위플래시]..


  ... 카페인에 취해 더 이상한 소리를 하기 전에 자야겠습니다. 최근에 읽은 근사한 책이 있다면 추천 바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346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268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3084
116941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가 27년전 영화였군요 ㄷㄷㄷ [18] 지나가다가 2021.08.29 599
116940 이강인 마요르카 이적할 것 [1] daviddain 2021.08.29 297
116939 배우들 20년전 모습 보게 비천무를 보려고 [6] 가끔영화 2021.08.28 470
116938 D.P,를 보고..(넷플) [4] 라인하르트012 2021.08.28 894
116937 [넷플릭스바낭] 아이슬란드산 화산 구경 스릴러, '카틀라'를 봤습니다 [16] 로이배티 2021.08.28 905
116936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의 종착점은 [6] 적당히살자 2021.08.28 530
116935 영화 판소리 복서 왜냐하면 2021.08.28 315
116934 제목 없음 (지식인들의 게시판을 둘러보다가) [3] 어디로갈까 2021.08.28 608
116933 우산 소동 동영상 [4] 가끔영화 2021.08.28 495
116932 세상은 넓고 재주꾼은 많네요. [4] thoma 2021.08.28 774
116931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3) [1] catgotmy 2021.08.27 387
116930 졸려서 쓰는 축구 잡담-호날두는 맨유/EPL 복귀 오피셜 [22] daviddain 2021.08.27 561
116929 슈퍼밴드2 8회 [3] 영화처럼 2021.08.27 477
116928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3] 조성용 2021.08.27 680
116927 [넷플릭스바낭] 영국산 농부 복수 스릴러 '어머니, 당신을 위해'를 봤습니다 [4] 로이배티 2021.08.27 506
116926 세상의 이치는 회사의 구조와 같다 가끔영화 2021.08.27 341
116925 슬의를 보면 기만당하는 느낌이 들어요 (스포?) [14] 잡채밥 2021.08.27 1211
116924 [정치] 무야홍은 윤총장을 추격하고, 최원장은 심상정보다 떨어지고 [16] 가라 2021.08.27 736
116923 빨간 십자가를 전국에서 사라지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면 [7] tom_of 2021.08.27 636
116922 이런저런 인스타잡담 메피스토 2021.08.26 32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