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8 19:17
- 에피소드 하나당 45분 정도 되고 총 여덟편. 다음 시즌 나올 일은 없을 스토리구요. 결말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볼 거라면 모르고 보는 게 나을 정보가 조금은 들어 있긴 한데 어차피 안 보실 거 다 압니다? ㅋㅋㅋ
(뒤에 보이는 양반 때문에 무슨 SF 액션 스릴러처럼 보이는 포스터. 참 구립니다.)
- 제목 '카틀라'는 화산 이름입니다. 실제로 아이슬란드에 있는 화산이고 무려 활화산이에요. 특이하게도 빙하 한 가운데 떡하니 박혀 있어서 혹시라도 본격적으로 터졌다간 인근 마을이 몽땅 물에 잠기게 만들어 버릴 무시무시한 화산이라고 하네요.
드라마는 이 화산이 대략 1년 전에 한 번 가볍게 터졌다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화산 인근의 마을은 거의 유령마을 비슷하게 되어 버렸구요. 화산 연구 및 감시를 위해 상주하는 학자들과 그 사람들 상대로 장사해서 먹고 사는 아주 소수의 주민들 + 어쨌든 사람이 살고는 있으니 최소 인원 정도만 유지하고 있는 경찰들 정도만이 이 마을을 떠도는 인원 구성 되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화산 쪽에서 온몸을 꼼꼼하게 화산재 코팅을 한 여성 하나가 걸어 나오구요. 다행히도 기억력이 매우 멀쩡해서 나는 누구이고 이 마을 사람 누구누구를 알고 등등 주절주절 늘어 놓는데... 그게 영 이상해요. 말이 안 됩니다. 그래서 다들 '이게 뭐임?'하고 어안이 벙벙해하는 사이에 또 한 명의 화산재 코팅녀가 걸어 나오고. 이 또한 말이 안 되는데 왜냐면... 이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이야깁니다.
(딱히 주인공 없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끌어가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한 명 고른다면 가장 주인공에 가까우신 분.)
- 일단 칭찬부터 하고 시작하자면, 소재를 정말 잘 잡았습니다. '카틀라' 화산이요.
이 화산이 정말 그동안 제가 봐 온 숱한 드라마들 중에서도 원탑급으로 유니크한 배경을 제공해줍니다. 뭐랄까... 무슨 외계 행성 같아요. ㅋㅋ 빙하+바다+거대한 산들+화산재에 덮인 자연과 건물들... 이것들이 조합이 되어 뿜어내는 분위기가 정말로 압도적입니다. 아무 일 없이 그냥 주인공들이 차 타고 달리기만 해도 시각적으로는 독특하고 의미심장하며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강력하게 뿜어내거든요.
더불어서 이야기 전개에도 정말 편리한 조건을 만들어줘요. 애초에 사람이 몇 살지 않는 곳이고, 외부와 물리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곳(아예 격리 구역입니다)이다보니 드라마 속에서 벌어지는 그냥 지구가 벌컥 뒤집힐만한 사건이 연달아 벌어져도 그 동네 사람들끼리만 알고 각자 놀라고 말아 버리는 식의 전개가 어색하지 않거든요. 사실상 강력 범죄에 가까운 일이 벌어져도 그냥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뭐 그런 현실 속 비현실 동네라는 느낌. 그래서 이런 설정을 이야기 내내 알차게 잘 써먹습니다.
(들어는 보셨습니까 검은 모래사장. '흑사장'이라고 해야 하나요)
- 이야기 측면을 살펴보면 일단 이 시리즈는 제가 '수습불가 미스테리' 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의 이야기입니다. '아 ㅅㅂ 꿈!' 엔딩이 아닌 이상에야 도무지 논리적으로 해명할 길이 없는 떡밥을 마구 집어 던지면서 시청자를 유혹하는 거죠.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살아 남을 방법은 크게 둘 중 하나입니다. 첫번째는 작가님께서 겁나 천재셔서 그 말도 안 되는 설정을 수습할 합리적이고 말이 되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시전해주시는 거구요. 두번째는 애시당초 수습 포기한 김에 그딴 거 아예 신경 끄고 그냥 그 먹음직한 떡밥을 활용해서 최대한 재밌는 드라마를 좍좍 펼쳐주는 겁니다. 그런 다음엔 "결말이 부실해서 죄송하지만 그동안 재밌게 보셨으니 용서해주세요" 라는 식으로 대충 끝내버리면 고민 해결.
그리고 세상엔 당연히 그런 천재 작가님들이 지극히 드물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의 작품들은 후자의 길을 택합니다. 이 드라마도 그래요.
(분장팀도, 배우들도 참 고생했을 것 같은 모습이죠. 전 그 와중에 저 분 눈이 너무 커서 신기했...)
- 근데 또 후자의 길도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적극적으로 설정을 활용한 게임을 하면서 장르적인 재미를 팍팍 만들어내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궁서체로 진지하게 폼을 잡으면서 자기 설정으로 철학적인 듯하고 아주 깊이 있는 듯한 사유를 풀어내는 쪽이죠. 그리고 이 드라마는 후자에요.
화산에서 쌩뚱맞게 살아 돌아오는 인간들은 모두 이 마을 사람들의 가족, 친지, 지인 등등이구요. 그 가족, 친지, 지인 등등의 사람들은 모두 살아 돌아온 자들과 얽힌 인생의 멜로드라마가 한 두 개씩 있습니다. 그래서 '우왕! 죽은 내 가족이 살아 돌아왔어!!' 라고 심플하게 기뻐하지 못하고 다들 번뇌에 빠지죠. 그리고 살아돌아온 자들 역시 '나는 내가 누군지 알지만 그래도 난 누구이고 왜 살아 돌아왔는가' 라는 식의 번뇌에 빠져서 방황하구요. 그러다가 결국 범죄가 벌어지기도 하고, 그냥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기도 하고, 혹은 인생 트라우마의 힐링 이벤트가 열리기도 하는 모습들을 거대하고 신비로운 화산 풍경과 더불어 아주 느릿느릿하게 보여주는 침울한 이야기. 라고 대략 정리할 수 있는 드라마 되겠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화산 다큐를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풍경들)
- 말이 또 너무 실속 없이 길어지고 있는데요. 이쯤에서 끊어야겠습니다. ㅋㅋㅋ
그러니까 도저히 수습 불가능한 떡밥을 물고 그걸로 진지하게 인간과 삶에 대해 사유하려고 드는 드라마입니다.
장르적 재미는 기대할 수 없는데, 또 뭐 막판 세 에피소드쯤 남겨 놓고는 조미료가 팍팍 투입되기는 해요. 하지만 역시 '와 재밌다!'이런 수준과는 아주 거리가 멀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틀라 화산 일대의 환따스띡한 풍광으로 인해 빚어지는 유니크한 볼거리와 분위기 덕에 '난 걍 분위기만 그럴싸하면 어지간하면 참고 본다!'는 분들이라면 한 번 도전해볼만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론 그냥저냥 괜찮게 봤는데... 문제는 결말이네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호'보다는 '불호'가 훨씬 많을 듯한 마무리이고 저도 별로 맘에 안 들었어요. 앞서 말 했듯이 수습은 그냥 포기하고 인물들간 드라마를 정리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결말인데, 결말 내용은 무난한데 그 결말을 만들어내는 수단과 방법이 상당히 포악(...)해요. 그래서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이 'ㅋㅋㅋ 이거 이래도 되는 거임?' 이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래도 되는 거였을까요. ㅋㅋㅋ
+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구글 검색으로 세계 지도를 찾아봤습니다. 극중에서 스웨덴 사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슬란드를 휙휙 오가고 그러는데... 겁나 멀잖아요!!! 비행기도 아니고 카 페리 타고 오가는 것 같던데. ㅋㅋㅋ
(이걸 차 타고 다니다니...;)
++ 위에서 적었던 결말에 대한 이야기인데. (당연히 스포일러 없구요)
역시 유럽 사람들은 좀 특이합니다. 금기 건드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냥 즐기는 느낌이랄까. =ㅅ=
더 이상의 설명은 불가하지만, 암튼 그러합니다.
+++ 혹시나... 하고 검색해봤는데 드라마 속 풍경들이 거의 다 그냥 실제 그 동네 풍경이라는 걸 알고 당황했습니다.
뭐 가끔 cg로 과장한 장면들이 당연히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실제라네요. 극중 배경이 되는 마을도 실제로 있는 마을이라 하구요.
이것도
이런 것까지 다 한 동네의 실제 풍경이라니 황당하잖아요. 허허.
++++ 살짝 비슷한 설정을 다뤘던 드라마 '착오' 생각이 좀 나더라구요. 그것도 어느 날 쌩뚱맞게 죽은 사람들이 막 살아서 돌아오는 이야기였는데... 그건 세 시즌을 끌고 가면서 막판에 벌려 놓은 게 너무 많아서 수습 못하고 멸망했었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 시리즈는 그래도 미덕이 있는 편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다음 시즌 안 낼 것처럼 끝내거든요. 뭐 혹시라도 사람들 반응이 폭발적이면 다음 시즌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겠지만 일단 다음 시즌이 '필요 없는' 결말이라는 얘깁니다.
2021.08.28 19:53
2021.08.28 22:59
한 번 보셔도 나쁘진 않을 거에요. 다 보고 나서 확인해보니 생각 외로(?) 비평적으로 되게 호평이기도 하네요.
그리고 그 압도적인 자연 풍광은 확실하거든요. ㅋㅋ
2021.08.28 20:21
몇 년 전에 영화제에서 아이슬란드 영화를 한 편 봤어요. 여성 환경운동가가 개인적으로 기업 방해 활동을 하는 영화였어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의 내용이 아니고 그 여성의 강인한 체력과 풍광 자체였습니다. 나무나 숲이 잘 없고 이끼같은 것만 있는 거무스름한 지형이 굴곡진 벌판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런 춥고 인적 없고 광활한 곳을 이 여성이 케이블 같은 걸 끊으려고 뛰어다니던 영화였습니다. 아무튼 지형이 우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빙하와 화산의 땅이라고 하더라고요.
2021.08.28 23:01
진짜 희한한(?) 곳 같더라구요. 사실 다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드라마 내용 보다도 '와 저기 한 번 직접 가서 구경해보고 싶다' 이런 거였네요. 멋지게 황량한 느낌이 되게 압도적이었어요. 뭐 시작부터 끝까지 화산 근방만 나오니 다른 동네 모습을 전혀 모르지만요. 하하.
2021.08.29 02:21
아이슬란드는 이렇게 저를 백만년만에 로그인해서ㅋ 댓글을 띄우고 싶게 하는 구름이기도 합니다. 한 달 정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남은 건 구름뿐이네요. 의문이에요. 빙하에서 이끼산에서 바다에서 카페 테라스, 숙소 창가까지 구름이 마구 걸어다녔습니다. 진짜로요. 레이캬비크 극장에는 올드보이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반가웠지만 저는 당연 아이슬란드 영화를 보았어요. 제목이 '새'였나. 배우들이 모국어로만 말하니까 의미는 몰라도 됐고.. 동성애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남달라서 두 눈 번쩍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제가.. 아이슬란드어뿐이라서 생략. 암튼 영화가 뭐랄까 음악이며 영상이며 연기며.. 시스템까지 네.. 여러 가지 모든 것들이 저처럼 별로였습니다ㅜㅜ 극장 자체가 육칠팔공 분위기랄까. 시간 속 사이를 왔다리갔다리. 상영관에 아무도 없어서 영화가 끝났는데도 본적 뽑기처럼 엄청 많이 울었어요. 이유는 별개 아닌데.. 영사기로! 쏟아지던 빛도 너무 신기했고 그 빛이 맨 뒷좌석 가운데 앉아있던 저의 뒤통수를 관통해 나가는 것도 그랬고 그 조악한 스크린에 닿기 직전까지 뻗어 있던 그 빛의 터널이 한시간 넘게 오롯이 그렇게 떠있었던 터널이 사라져서요.
흐.
오랜만에 듀게에 글자를 쓰려니까 버벅이 난무하지만 제가 마치 아이슬란드 인간인 것처럼 된 것 같아서 암튼 감사합니다.
2021.08.28 21:07
저 분장 하나만큼은 참 인상적이었어요. 풍경이 이래서 미국 영화에서 자신들과는 다른 별개의 요정 나라 쯤으로 묘사되곤 하는가 봅니다. 넷플릭스 톨 걸에서 북유럽에서 온 남자애가 왕자님 같은 생김새로 온 학교 여자애들이 설래하는데 자기는 정작 자기 동네에서 흔해 빠진 외모라는 태도를 보이던 것이 생각나네요. 미드 소마에서는 아예 미친 또라이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나오기도 하고. 다운사이징에서도 세계 멸망을 피해 주인공 일행이 가는 곳이 북유럽이었죠. 정작 거기 사람들도 요상한 의식을 하는 컬트 집단이고요.
2021.08.28 23:02
되게 꼼꼼하게 분장을 해놨더라구요. 뭐 당연히 무해한 성분으로 만든 거겠지만 입히는데 진짜 고생했겠단 생각을. ㅋㅋ
극중에서도 '체인질링'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꾸 나와요. 보니깐 그냥 애초에 그 이야기를 레퍼런스로 화산 얘기랑 다른 설정을 갖다 붙였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아무래도 저런 동네에서 오래 살다보면 그런 괴상한 요정 얘기 같은 걸 생각해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이 세상 풍경이 아니어서.
2021.08.29 02:31
제가 가 본 장소가 주루룩~ 너무나 반갑네요. 저기 여주인공 배경은 비크 같고. 내내 걸어다니기만 했지만 여기서까지 아이슬란드 영화를 만나게 될 줄이야. 감사. 시간 내서라도 꼭 보겠습니다.
2021.08.29 11:59
오 저 사진 하나로 정확하게 맞히시네요. 맞습니다 드라마 배경 마을이 비크에요. 전 그냥 신기한 동네구나... 하고 글 적었는데 듀게에 진짜 아이슬란드 좋아하는 분이 계실 줄이야. 하하.
2021.08.29 12:30
뜨아 비크가 맞았다니! 비슷한 데가 많아서 설마 했는데. 네. 제가 일명 아이슬란드덕질러라고들 ㅋ
2021.08.29 10:02
2021.08.29 12:01
네. 넷플릭스로 이 나라 저 나라 작품들 좀 다양하게 보다보면 뭐라 콕 찝어 말할 순 없어도 같은 서양이어도, 같은 유럽이어도 뭔가 조금씩 다르긴 다르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 드라마도 그랬어요. 그게 댓글 달아주신 분들 이야길 읽어보니 아무래도 사는 곳의 자연 영향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2021.08.29 17:59
이상하게도 로이배티님이 리뷰 올려주시는 작품들은 (보지 말라고 쓰여있어도) 괜히 보고 싶어진단 말이죠?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브랜드 뉴 체리 플레이버]는 혹시 보셨는지 궁금해 집니다.
2021.08.30 10:45
아마 제가 사실은 재밌게 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ㅋㅋ 너무 아무 거나 다 재밌게 보다 보니 소감글 적을 땐 일부러 너프(?)해서 결론을 내곤 합니다. 사실 이 드라마도 결말만 좀 애매했지 재밌게 봤거든요. 하하.
브랜드 뉴 체리 플레이버... 는 호러 시리즈라서 당연히 언젠간 보는 걸로 해두긴 했는데 요즘 밀린 게 너무 많아서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요즘엔 게임도 드라마도 영화도 정말 많아도 너무 많네요. 휴직하고 놀고 싶습니다... ㅠㅜ
2021.08.30 12:49
아이슬란드에서 홍어 삭힌것을 먹더라고요.
저 광주출신인데 얼마전 홍어 지대 삭힌것을 먹고 식겁해서 1/3만 먹고 나머지는 냉동해두었습니다.
2021.08.31 00:20
어느 나라 무슨 음식인진 까먹었는데 삭힌 홍어 따윈 쨉도 안 되는 강렬한 향과 맛의 숙성 어류 음식이 있었죠.
매운 맛도 그렇고 발효된 맛도 그렇고 사실 한국 음식은 그렇게 극단적인 축에는 안 들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ㅋㅋ
예전에 유튜브에서 예고편을 보고 기대했던 작품이에요.
돌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고, 게다가 자연풍광이 압도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 뒤로 까먹고 안봤었는데, 기왕 이렇게 추천글이 올라왔으니 이번에 보는 걸로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