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0 03:28
- 2019년에 나온 인디 게임입니다. 장르는 어드벤쳐. 뭐 대단한 스토리는 없는 게임이지만 스포일러 없이 적겠습니다.
(고갱님들께서 제목에 숨겨 놓은 의미를 못 알아챌까봐 걱정이 되었던 게임 제작진은 그만... ㅋㅋㅋㅋ)
- 어두컴컴한 바다 위, 자그마한 쪽배 위에서 '케이'라는 젊은 여자... 인데 시커먼 괴물의 형상을 한 사람이 눈을 뜹니다. 여긴 어디? 나는 왜 이 꼴이지? 궁금한 건 많지만 답을 해 줄 사람은 하나도 없구요. 허공에 뾰로롱 나타나서 친한 척을 하고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는 소녀의 형상을 뒤쫓아 물에 잠긴 세상 위를 둥둥 떠다니는 가운데 '넌 항상 세상의 중심이 너였지!'라며 폭언을 퍼붓는 거대 괴물을 피해다니며 자신의 가족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세상 제일 슬프고 궁상맞은 거대 괴물들을 도와야 합니다...
(난 누구인진 알겠는데 여긴 어디이고 내 꼴은 왜 이러니.)
- 게임 하나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이 헐리웃 블럭버스터들과 당당히 맞짱 뜨게 된지 벌써 꽤 오래되었습니다. 거의 10년째 우리고 또 우리고 계속해서 우려지고 있는 레전설 게임 GTA V의 제작비가 2억 6천만 달러였다죠. 뭐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다는 영화인 '캐리비안의 해적' 마지막 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 기준으로도 탑 10 안에 가볍게 들어가는 엄청난 제작비구요. 또 중요한 건 1억 달러 이상이 들어가는 블럭버스터 게임들이 비슷한 예산을 들이는 블럭버스터 영화들보다 한 해에 더 많이 나오기도 한다는 겁니다. 이러니 게임 매니아들이 게임 산업에 대한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짜증이 날만도 하지요. ㅋㅋ
- 암튼 그렇다보니 게임이라는 게 어떤 개인의 작품, 특히 사적인 의미를 듬뿍 담은 물건이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그런 게임들이 나오곤 합니다. 당연히도 죄다 인디 게임들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게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괜히 반갑고 뜻 싶으며 소중하단 생각이 들어요. 게임도 개인의 사적인 경험과 생각을 남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일 수 있다는 거.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ㅋㅋ
이 분야의 레전드로는 오래 전에 제가 이 게시판에 소감도 적은 적 있는 '댓 드래곤, 캔서' 같은 게임도 있고. 또 '프랙쳐드 마인드' 같은 물건도 있구요. 또 뭐 기타등등 찾아보면 이것저것 있는 가운데... 보면 하나 같이 다 아주 우울한 체험들입니다. 전자의 경우엔 소아 백혈병으로 어린 자식을 잃은 아빠 프로그래머가 그런 자신의 체험을 게임 '형식'으로 표현한 물건이었구요. 후자 같은 경우엔 정신 질환을 겪다가 어렵게 극복에 성공한 17세 청소년 개발자가 '사람들에게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마음과 상태를 이해하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게임이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둘 다 돈 주고 사는 '제품'이라는 개념으로 냉정하게 평가할 때 넘나 아마추어적이고 부족함이 많은 물건이라 보통 그 의의를 크게 생각해서 호평들을 해주고 합니다만. 제가 지금 리뷰를 한답시고 딴소리만 하고 있는 이 '씨 오브 솔리튜드'는 분명 '플레이'하며 놀 수 있는 멀쩡한 게임의 형상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또 나름의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그림도 예쁘잖아요.)
- 이 게임의 주인공 '케이'는 그러니까, 심플하게 말해 모든 인간 관계를 망쳐 버린 사람입니다. 남동생, 엄마, 아빠. 모든 가족들이 다 망했고 본인은 그 중심에 있었으면서도 그게 망해간다는 걸 눈치 채지도 못했고 심지어 그걸 가속화하기 까지만 책임이 있어요. 물론 본인은 아무런 악의도 없었고 심지어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죠. 그래서 그동안 쭉 남들 탓만 하며,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억울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이 게임의 스토리는 그랬던 케이가 드디어 철들고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며 노력해서 극복해나가는 성장담 비슷한 겁니다.
제작팀의 대빵 젊은이가 한 번 아주 대차고도 독하게 실연을 당한 후 한동안 우울증 증세를 겪다가 생각해낸 게임이라고 해요. 거기에다가 함께 일하던 제작팀원들의 개인사, 가정사 같은 걸 결합해서 만들어낸 스토리이고 게임이라고.
그러니까 이렇고
또는 요렇게 생긴 게임 속 몬스터들은 하나 같이 다 주인공의 마음 속 생각들과 특성들을 이미지화한 거라는 뻔한 이야기죠.
- 게임 자체는 뭐... 심플합니다.
계속해서 주인공이 도달해야할 지점이 주어지고 그 지점까지 물 속 거대 괴물을 피할 수 있는 경로와 타이밍을 찾아서 도착하기만 하면 돼요.
'바다'라는 배경 특성상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을 것처럼 생겼지만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철저하게 외길로 제한되어 있어서 헤맬 걱정도 없구요.
게다가 그 경로와 타이밍이란 것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 뻔합니다. 또 중간중간 전투 비슷한 거, 보스전 비슷한 게 있긴 한데 그 또한 직관적으로 뭘 해야할지 다 눈치챌 수 있게 해 주는 데다가 난이도도 쉬워요. 거기에다 덧붙여서 게임 길이도 짧아서 대충대충 아무 생각 없이 플레이해도 5시간 정도면 누구나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돈 주고 샀는데 5시간은 너무 짧다고 아쉬워할 사람들을 위해 병에 든 편지 찾기, 멍 때리는 갈매기 쫓기 같은 수집 요소를 넣어두긴 했지만 뭐 별 의미 없는 거라 전 그냥 대충 저절로 눈에 띄는 것만 수집하며 엔딩 보고 깔끔하게 지워버렸네요. ㅋㅋㅋ
근데 뭐 일단 비주얼적으로 보기 좋게 (아, 뭐 취향따라 다르겠지만요) 잘 다듬어져 있고. 또 '주인공이 마음 속 풍경을 탐험한다'는 컨셉에 맞게 연출도 잘 되어 있구요. 되게 재밌고 잘 만든 게임은 아니지만 또 상도덕에 어긋나는 허접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이런 장르, 이런 소재를 선호한다면 해 볼만한 게임이에요. 물론 저는 이것도 게임패스로 했기 때문에 추가금을 전혀 안 들였지만요. 늘 이어지는 호평 릴레이의 비결이죠.
사실 대단한 깊이 같은 걸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게임 속에 상징과 비유들이 넘쳐나지만 다 그냥 바로바로 이해가 되는 뻔한 것들이구요. 그 극복의 과정도 그렇게 참신하다 싶은 건 없어요. 하지만 제작자들 개인사에서 우러나온 스토리라 그런지 묘하게 '진짜라는 느낌' 같은 게 묻어나는 게 조금 있고. 특히 마지막 극복 대상과의 이야기 전개를 보면 이 사람들이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이 게임을 만든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서 조금 만족스러웠습니다.
(넓고 복잡해 보이죠? 직접 해보시면 정말 놀랍도록 단순하고 쉽습니다. ㅋㅋㅋ)
- 뭐 더 길게 얘기할 것도 없으니 마무리하자면...
인디 게임들 좋아하시고, 그렇게 대단할 건 없어도 좀 흔치 않은 개성 같은 걸 중시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해보실만 합니다.
사실 순수하게 '재미'로 평가하자면 그렇게 재밌는 것도 아니지만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여~ 수준이라 고작 2만 2천원 밖에 안 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매를 권하진 않아요. ㅋㅋㅋ 걍 게임패스 유저분들 중에 좀 독특한 게임 하나 짧게 즐겨보고 싶으시다면 추천하는 정도. 그게 아니라면 대박 세일 시즌을 노려보시든가... 아님 그냥 영원히 안 해보셔도 좋습니다.
전 바로 직전에 아주 빡세고 시간 걸리는 퍼즐 풀이 게임 둘을 연달아 플레이해서 그런지, 이렇게 쉽고 짧은 게 반가웠습니다. 덕택에 호평을. ㅋㅋㅋ
+ 참고로, 그래서 2억 6천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다는 GTA V가 벌어들인 수입은... 2018년 기준으로 60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3년 동안 수천만 장을 더 팔고 온라인 모드용 DLC를 미친 듯이 팔아제꼈으니 지금은 아마 100억 달러에 근접하거나 넘겼을지도. ㅋㅋㅋㅋ 웃음만 나오죠.
참고로 GTA V의 이 수입은 온갖 유료 DLC 판매 파워!! 에 크게 힘 입은 것이고. 순수하게 게임 본편 판매량만 놓고 비교하자면 역대 최강 넘버 원은 '마인크래프트'입니다. 모든 플랫폼 판매량을 다 합하면 이미 2억 카피를 넘긴지 오래라고(...)
++ 사실 제가 이 게임을 플레이한 이유는, 일단 당연히 게임패스에 들어 있어서가 큰 이유이지만 거기 덧붙여서... 게임 제목과 포스터 이미지를 보고 크툴루를 소재로 한 호러 게임인 줄 알았어요. ㅋㅋㅋㅋㅋ 뭐 게임 내용상 호러 분위기는 자주 나긴 합니다만. 크툴루는 무슨 개뿔.
+++ 게임의 발매는 2019년이었으나, 올 봄에 '디렉터스 컷'이라는 제목을 단 개선판이 닌텐도 스위치 독점 발매되면서 현지화가 되었습니다. 닌텐도 스토어답게 가격은 2만 5천 8백원으로 조금 비싸네요. 하하. 근데 뭐 걍 영문으로 해도 별 상관 없어요. 영어 공부 소홀히하지 않은 중3 정도면 다 실시간으로 알아먹으면서 플레이할 수 있을 수준으로 영어의 난이도가 낮습니다.
++++ 아 맞다. 게임이니까 영상도 하나 덧붙이며 마무리합니다.
시각적으로 '이코'나 '완다와 거상' 만든 일본 제작사 게임들 영향을 많이 받은 게 보이죠.
정작 그 제작사는 최근에 소니가 해체해 버렸습니다만(...)
2021.07.20 08:38
2021.07.20 09:24
내일 시리즈 엑스 한 번 더 도전해보시죠!! ㅋㅋ
인디 게임치곤 최적화가 괜찮아서 제 970 달린 PC로도 별 부담 없이 잘 돌아가더라구요.
하루 한 시간 애들한테 스위치로 게임 시켜주는 시간에 저는 방에 처박혀서 PC로 게임을 하는데, 사양이 이렇다 보니 인디 게임들만 하게 되네요.
고사양 AAA 게임은 콘솔, 저사양 인디 게임은 PC로 하는 남들과 다른 패턴이 확립되었습니다. ㅋㅋ
2021.07.20 13:17
혹시 셀레스트란 게임 해보셨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공황장애, 우울증 등 개인적인 경험을 다룬 게임인데, 드물게도 플레이하는 맛이 아주 좋아서 대중과 평단 양쪽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은 적이 있지요. 이러한 소재의 게임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나이트 인 더 우즈인데, 이건 플레이 특성상 호불호가 갈려서 쉽게 추천은 못 드리겠네요.
2021.07.20 13:42
셀레스트는 난이도가 아주 화끈하다는 소문을 듣고 관심만 갖다 접어두었는데... 이렇게 추천하시니 또 다시 관심이 가구요. ㅋㅋ 나이트 인 더 우즈는 아트워크가 맘에 들어서 언젠간 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지금 확인해보니 공식 현지화가 안 되어 있어서 제가 해야할 플랫폼인 엑박 or 윈도우 스토어로는 영어로만 해야 하네요. 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ㅋㅋ 추천 감사드려요!!
2021.07.20 15:49
저도 난이도 높은, 소위 슈퍼미트보이 류의 피지컬 플랫포머 게임은 선호하지 않는데, 셀레스트는 일단 진행에 필수적인 루트 난이도는 몇 번 트라이하다보면 깰 수 있게 해놓고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엔딩은 보여주겠다는 느낌.......) 이 장르 매니아들이 선호하는 기상천외한 난이도는 dlc나 추가 수집 요소로 빼놔서 할만하다는 느낌이었어요. 엔딩까지 플레이타임이 10시간 내외로 짧은 것도 한몫하고요. 특이한 건 조작감이 상당히 좋아서 캐릭터가 내가 의도한 동작을 빠릿빠릿하게 수행한다는 점인데, 이게 도트게임 특유의 빠른 로딩과 맞물리면 죽는다 -> 빠르게 부활 -> 괜찮은 조작감으로 다시 한번 도전한다 라는 긍정적인? 사이클이 형성됩니다. 그런 도전의식 자체가 게임 분위기하고도 잘 어울리구요. 나이트 인더 우즈는 비공식 한글패치가 괜찮은데 마소 쪽 스토어에서는 적용이 어렵나 보군요. 저도 보통 콘솔로 게임을 즐기는데, 나온지 꽤 됐다거나 소규모 제작사 게임은 한글패치가 없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덕분에 바이오쇼크1 같은 유명한 고전 명작도 구매를 망설이는 중입니다 ㅠㅠ
2021.07.20 22:12
설명 감사합니다! 이 '셀레스트'가 사실 게임패스에 있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게임 끝나면 한 번 설치해서 그 매운 맛이나 한 번 봐야겠습니다. ㅋㅋ
현지화가 참 문제죠. 어지간한 대작들은 다 되어서 나오긴 하는데 가끔의 예외나 말씀하신 바이오쇼크 1편처럼 현지화 암흑기에 나온 소수 게임들이 그런 경우가 있어서... ㅜㅠ
2021.07.20 21:20
2021.07.20 22:14
아. 그게 제가 이 댓글을 보고 다시 확인해보니 해체된 건 맞는데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ㅋㅋㅋ
소니 '재팬 스튜디오' 소속이었는데 지금 보니 마지막 작품이었던 '라스트 가디언'을 만드는 도중에 원래의 이코팀 멤버들은 이미 독립해 나갔네요. 결국 해체된 건 이 분들이 없는 재팬 스튜디오이고, 이 분들은 자기들끼리 회사 차려서 에픽 독점으로 신작 게임 개발중이라고 해요. 슬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