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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샹치>는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였습니다.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블랙 위도우>에 이어 인종주의의 타파를 외치는 <샹치> 역시도 이런 식의 만듦새를 갖고 있다는 건 마블이 대단히 게으르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정치적 공정함을 배경으로 두고 만들어졌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허술함은 마블이 자신들의 사회적 체면을 위해 정치적 공정함을 티내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샹치>는 이야기랄 게 없이 그저 익숙해보이는 모든 공식들을 적당히 때려박아서 만들었기 때문이죠.


어느 영웅의 숨겨진 유년기, 부자 간의 왕위 계승 서사, 신비한 차이니즈 세계, 드래곤(!) 등 신화적이라고 할만한 구도를 짜깁기했을 때만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영화 처음부터 이상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요. 샹치는 헤어졌던 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아버지의 군대에게 습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가보았더니 동생은 그 편지를 쓴 게 아니랍니다. 샹치와 함께 있는 동생에게도 아버지의 군대가 습격을 합니다. 샹치의 아버지 웬우의 군대는 이 남매의 펜던트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펜던트를 빼앗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 남매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친근하게 말을 하면서 텐링즈의 본거지로 자식들을 불러모읍니다. 그리고 죽은 아내의 이야기를 떠듭니다. 샹치와 샤링은 그 이야기를 듣고 고민합니다. 그럼 근본적인 의문이 들죠. 처음부터 웬우가 그냥 자식들에게 이야기를 해봤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왜 습격을 하고 왜 굳이 동생이 보낸 것처럼 위장 편지를 보내고 왜 또 거기까지 가서 또 습격을 합니까? 일단 대화를 시도해보고 그 다음에 안됐으면 텐 링즈의 본거지에서 이들을 압박해놓으면 되는 일 아닌가요. 스토리가 엄청나게 낭비가 됩니다. 그 이유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인물들 사이에서 뭐라도 액션을 보여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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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치>의 놀라운 점은 아무리 이 히어로의 데뷔작이라 해도 양조위가 분한 웬우에게 모든 요소가 질질 끌려다닌다는 점입니다. 샹치는 너무나 하는 게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결정들은 전부다 웬우가 하고 샹치와 케이티, 샤링은 철저하게 그에 대한 리액션만 합니다. 이야기가 아예 웬우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이 영화는 오히려 텐 링즈를 갖고 있는 미중년의 폭주와 실패, 정도로 요약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이 이상한 무게중심을 보다보면 영화 전체가 양조위를 위한 마블 측의 팬픽 서비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심지어 양조위의 얼굴을 빼고서도 이야기적으로 샹치는 영웅으로 도약할만한 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웬우가 이기적인 야욕에 미친 악당이 아니라, 아내에 대한 사랑이 너무 지극해서 이 모든 일을 벌리는 로맨티스트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적 울림이 커다란 안타고니스트를 밋밋한 대의만 가지고 있는 프로타고니스가 이겨야하는데, 샹치가 책임져야하는 인물과 세계는 전부 다 허상에 가까운 것들입니다. 한 명의 구체적 인간을 향한 사랑과 두루뭉실한 환상적 세상에 대한 책무가 맞붙으면 당연히 전자에 선을 들어주죠. 더군다나 이 픽션의 세계에서 악에 가까운 애절함과 광기는 얼마나 매혹적입니까. 그걸 더군다나 양조위의 얼굴로 설득하고 있는데. 이 영화를 즐길려면 영화의 바깥에서 배우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에 몰입하기가 대단히 힘들어요. (웬우는 심지어 최후의 모습조차도 아름답고 기품이 넘칩니다. 영화가 그를 절대 망가트리려 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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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중국영화"이지 않을까요. 신비의 동양무술도 하고, 변검 스타일의 가면을 쓴 교관도 있고, 중국 무기도 다루고, 중국식 펜던트도 있고, 중국인들의 은거지도 있고... 영화 전체가 아예 오리엔탈리즘의 결정판 같습니다. 아마 <블랙팬서>의 공식을 그대로 중국문화 컨텐츠에 다룬 것 같은데, 중국인들이 미국 내에서의 흑인과 동일한 문제를 겪고있어서 같은 해법을 들고 오면 되는 것인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차별의 뿌리가 과연 고향을 상실한 고통인지, 그래서 영화 내에서 가상의 고향과 본거지를 만들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히려 너희 중국인은 우리 미국인과 다르고 신비하다는 타자화로 비춰질 뿐 아닌지.


영화가 차라리 확실한 쿵푸 장르 영화로 매김했을 수 있지 않나 아쉽습니다. 초반의 쿵푸 씬을 볼 때 저는 '이렇게밖에 못하나?'라고 떨떠름하게 있다가 갑자기 영화가 텐션을 올리면서 제 기대치를 그대로 충족시키던 경험을 했거든요. 샹치의 액션들은 아주 반가우면서도 많은 중국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고 그것들이 한 때의 추억이 아니라 충분히 현재진행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여러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매우 짧았다는 게 문제지만요. 


@ 용의 얼굴을 밟고 내려오는 장면에서 정말 식겁했습니다. 서양인들이여... 용은 그런 편리한 말 같은 거 아닙니다... 훨씬 신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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