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님이 변했어요!

2010.11.10 12:55

남자간호사 조회 수:4527

아내님은 저랑 상당히 성격이 다릅니다.

저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룰루랄라 밝고 재미나게 살면서, 인사성도 밝고, 스스럼없이 쉽게 사람들에게 말도 잘 걸곤 합니다만,

아내님은 쿨하다고 할까요? 곰살맞은 스타일이 아닙니다. 맺고 끊는 것이 보다 확실하며, 자신이 딱 원하는 거기까지만 충족되면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엔 몇 번 같은 가게에 가면 계산하는 짧은 순간에도 인사도 곧잘 하고, 소소한 농담도 나누곤 해서 금방 단골 손님 도장이 찍혀서 덤도 곧잘 받곤 하지만, 아내님은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 사고 돈 내고 나오면 끝입니다. 간단하고 목적에 매우 충실한 거죠.


그리고 아내님은 저랑 상당히 식성이 다릅니다.

전 가리는 것 없이 먹는 것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제가 만들어서 먹는 것도 좋아하지요.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 가정의 외아들로 자라오며 먹고 싶은 것은 내가 해먹는 게 제일 편하다는 생각을 가져왔기에 요리도 곧잘 합니다. 

물론 병원 취직하면서는 3교대 하는 간호사 생활도 힘들고, 요리할 시간도 없고, 돈은 곧잘 벌었기에, 사먹는 즐거움을 온전히 맛보며 지내왔지요. 

그러다가 캐나다 오게 되면서 가난한 유학생 모드에 돌입하게 되자 다시 요리혼이 불타올라 이것 저것 요리하면서 지내고 있고요.


그런데 아내님은 상당히 오랜 기간, 오로지 빵과 우유로만 인생을 살아왔더군요. 

아니, 사실 한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밥을 안 좋아해요! 

제 주식이 밥이라면, 아내님의 주식은 빵, 특히 파리바게뜨 빵과 서울 우유였던 거지요!

 

그래서 아내님이 캐나다에 와서도 음식 적응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해요. 캐나다에 온지 4개월만에 저랑 데이트를 처음 시작했는데, 저와 데이트를 시작하고 제가 해준 요리와 밥이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먹는 '밥'이었다고 하니까요.  


흠. 어쨌든 저랑 식성은 다른 아내님이었습니다만, 데이트하고,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 아내님 식성에 맞는 요리를 찾아가면서 아내님은 시나브로 살이 오르게 되죠. (아내님의 증언에 따르면 저랑 만나고 3개월만에 5kg가 쪘다고 합니다. 핫핫. 제가 다 먹인 거여요.)




아, 그런데 엊그제 나름 뿌듯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언제나 딱 뿌린대로만 거두는 정직함을 추구하며 덤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유지해왔던 아내님에게 말이지요.


아내님이랑 날씨 좋은 날 데이트를 나갔어요. 맛있는 와플을 먹으러 갔는데, 거기 신 메뉴 초콜릿 퐁듀가 있길래 그것도 시켰죠.

과일 + 초콜릿 퐁듀 세트, 마쉬멜로 + 쿠키 + 초콜릿 퐁듀 세트 중에서 아내님이 마쉬멜로를 평소에 좋아하기에 마쉬멜로 + 쿠키 + 초콜릿 퐁듀를 시켰습니다.


하지만 실수였어요.

달달한 마쉬멜로를 초콜릿에 찍어먹으니 맛있긴 한데....단 거 게이지를 훨씬 뛰어넘는 단 맛에 느끼함이 부부의 속에 쌓이고 쌓이게 됩니다.


결국 카페를 떠난 후 장을 보러 한인 마트에 도착하자...맵디 매운 떡볶이가 먹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떡볶이와 순대를 시켰죠. 

아내님하고 저는 맛나게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떡볶이가 상당히 맛있었고, 떡볶이 국물이 그득하게 그릇에 남아있자 아내님은 고민하시기 시작하셨죠.

이걸 퍼먹고 싶긴 한데, 숟갈은 없고 이걸 어찌해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떡볶이를 애타게 바라보더군요.

고민하는 아내님에게 숟갈을 가져다줄까 물어보았지요. 아니면 들고 마시든가.


저를 만나기 전의 아내님이었다면, 숟갈을 따로 요청하는 번거로움이 싫어서 떡볶이 국물에 대한 아쉬움을 애써 떨친 채 그냥 쿨하게 가버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쿨한 아내님께서! 결국! 좌우를 살피더니!

떡볶이 그릇(작지 않아요! 분식집 떡볶이 그릇 사이즈 맞습니다)을 통째로 들고! 떡볶이 국물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따로 숟갈을 달라고 요청하는 건 귀찮았나봐요!


그렇게 꿀꺽꿀꺽 국물을 반쯤 끝냈을까요.

한인 슈퍼 떡볶이 매장 아주머니께서 스윽 오시더니, 나즈막히 저희에게 말씀하시더군요.


'순대가 남았네, 떡볶이는 다 먹고. 그럼, 떡볶이 한 그릇 더 줄까?'


오오. 아내님의 맛있게 떡볶이 먹는 모습에 감화되신 게 분명합니다!

아내님은 덤이 갑자기 생기는 이러한 상황 자체가 어색한지라 머뭇거리고 있었고, 전 재빠르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럼요! 주시면 너무 좋죠~' 


라고 말하며 감사를 표했죠.

아주머니는 새로운 떡볶이로 재빨리 리필을 해주셨고, 부부는 맛나게 맛나게 떡볶이 한 접시를 또 비울 수 있었다죠.


매장을 떠날 때 밝게 웃으며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한 건 물론입니다(아, 이것도 제가 담당했음). 



네, 아내님은 낯도 살짝은 두꺼워진 것 같고, 덤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어요. 


뭔가....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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