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보고 계시더라고요. 이미 봤을 이 옛 영화를 왜 보시냐고 여쭸더니 인간은 나이들수록 더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다가오는데 그걸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신다고.  그는 결정적인 게 제도라는 것을 알았던 사람이고 그걸 영상으로 표현해낸 사람이라고, 발레리가 "제도라는 건 인간이 감정과 지성을 집중적이고 전승이 가능하게 합성할 수 있는 질적으로 새 속성을 만들 수있다"고 말했는데 그걸 영상으로 보여준 게 타르코프스키고 생각하신다고 (음?) 

〈희생〉(1986)은 1932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1986년 12월 망명지 파리에서 54년의 생을 마감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이죠. 저는 십대 때 이 영화를 본 터라 기억도 감상도 희미합니다. 다만 그건 알아요.  그가 생애 동안 고작 영화 7편밖에 만들지 않았지만 영상으로 사유하는 철학자의 면모로 세계영화사에  한 봉우리를 세웠다는 것. 그의 영화들이 철학적이며 사변적이며 신과 인간의 문제와 같은 종교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심오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 그의 영화들이  분명한  서사 전략을 위한 빠른 템포의 상업영화와는 달리 호흡이 긴 롱 테이크의 기법으로 유장한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 오래 전에 읽었던 타르코프스키의 글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인간은 일곱 개의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다. 거기에서 극적인 갈등이 생겨나는 것이며 거기에 개인이 각자 선택한 길이 놓여 있는데 바로  그 극적인 갈등이 예술과 예술적 형식의 내용인 것이다." 뭐 맞는 말씀이죠.

# 바둑를 두는 동안, 저를 십대 때부터 봐온 이웃 아주머니가 놀러오셨는데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그 인물에 그 학벌에 왜 홀로 외롭게 나이들어가고 있냐?"
으흠. 사람은 아는 만큼, 셍각하고 고민하는 만큼 보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서로 다른 생각/판단을 히고  있는 걸 알기에 서로 '딱 그만큼만 생각하는' 그 이야기들을 나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서로에게서 배우는 게 있는 것이고요.

자기는 비록 '딱 그만큼밖에 생각하지 못하지만'. 다른 생각을 들려주는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때로 그 '딱 그만큼밖에' 라는 한계를 넘어설 수도 있는 것이죠.  물론 실제로 넘어서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새롭게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죠. 안 그러면 정말로  '딱 그만큼만'  생각하다가 가게 되는 거고요.
이 게시판에 주절거릴 뿐이지 아주머니에게 답은 못드렸어요.  어떤 답을 해봐야  저의 삶을 이해하시겠나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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