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보고 왔습니다

2021.09.12 10:46

Sonny 조회 수: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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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이미 <모가디슈>의 장점과 높은 완성도를 이야기하셨고 저 역시도 그런 평들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것은 <모가디슈>를 비롯해 몇몇 영화에서 보이는 공포의 외주화입니다. <랑종>이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같은 작품들을 보면서도 조금 움찔한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이 영화들은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적 배경으로 특정한 공포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가디슈>는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벌어지는 쿠데타와 민간인 약탈을 소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큰 과장은 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굉장히 난폭해지고 흥분상태가 되니까요. 저 역시도 다수의 군중이 걷잡을 수 없이 과격해지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직접 눈 앞에서 본 광경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저 개인이 말릴 수가 없겠다는 그런 공포심을 안겨줬습니다. 총이 쥐어지고, 사악한 위정자를 몰아내고, 모든 치안이 마비되었는데 자기 편 아닌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한다면 아마 쿠데타 세력은 자신들의 세력에 충분히 도취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걸 현장에서 본 사람들은 정말 무서웠겠죠.


그럼에도 <모가디슈>에서는 이런 묘사가 과연 필요했던 것인지 묻게 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려는 림용수 대사 일행이 총을 들고 있는 소년병들을 마주쳤던 장면입니다. 그 소년병들은 너무나 어려보이지만 그들은 총을 가지고 림용수 일행을 위협하며 히죽거립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언제든지 발사될 수 있는 총기와 대비되면서 대단히 위험하고 무언가가 완전히 무너진 사회상태를 실감하게 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모가디슈라는 공간은 지옥으로서 더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당시의 모가디슈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아수라장으로서의 의미를 완성하게 됩니다.


여기서 갖는 이 공포심이 과연 모가디슈라는 외부의 공간과 당시의 시간, 그리고 소말리아라는 한 국가에 대한 편견과 분리될 수 있는지 좀 걱정이 되더군요.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를 두고 우리는 서구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니까요. 류승완은 <모가디슈>의 몇몇 장면을 통해 소말리아인들은 "악마적"으로 그렸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은 충분히 "악마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자신의 힘에 도취되고 그 폭력은 마치 정치적 유혈사태를 초월한 비정치적인 것으로까지 묘사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그 소년병들은 딱히 정치적인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그들의 등장과 그 힘의 과시는 분명히 류승완 감독의 신중한 선택일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장면을 굳이 세세하게 묘사해서 지옥도의 인상을 심어놓는 것이 필수적이었는지 묻게 됩니다. 그 장면에서 아동들을 성년으로 바꿔놓으면 어떤 효과는 완전히 사라져버립니다. 


폭력은 늘 야만과 직결됩니다. 그리고 야만은 "미개함"이라는 제국주의적인 단어와 맞물리며 계급적인 경멸을 투사합니다. 이 때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흑인", "아프리카", "개발도상국", "세계 경제 몇위 국가"등의 일차적인 스캐닝을 벗어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무리 의식한다해도 뿌리깊이 남아있는 편견이거든요. (샘 오취리가 한창 인기를 끌 때, 해피투게더에서 가나도 라면이 있냐는 유재석의 말에 울컥해서 반응했던 게 생각납니다) <모가디슈>를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소말리아인들의 얼굴은 어떤 것일까요. 그들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노려보거나 잔인하게 미소를 짓거나 인정사정없이 찡그러트린 얼굴들만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한신성과 강대진에 이입하느라, 림용수와 태준기와 가까워지려 애쓰다가 소말리아인들의 다른 표정은 전혀 얻어내지 못합니다. 그건 그냥 남과 북 한국인들을 위협하는 완전한 외부세계이고 닫혀진 세계입니다.


영화 초반 남한 대사관들을 공격한 소말리아 청년이 나오죠. 하지만 그는 그 강도질로 획득한 결과물을 자기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리고 그의 그런 행동은 순수한 약탈이 아니라 북쪽 대사관으로부터 사주를 받았다는 것이 나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인간적'인 묘사겠지요. 누군가에게 꼭 공감을 하거나 동조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인간들의 집단적인 폭력조차도 그 이면에는 자신들만의 유대나 자신들만의 사회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입니다. 소말리아 정부군과 반군들에게도 그런 게 있지 않았을까, 혹은 그런 것들을 포함해도 한국인 입장에서의 공포는 희석될 수 없을만큼 압도적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 혼자만의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탈출할 때 소말리아 무슬림들이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기도를 하는 장면에서, 이들의 종교적 의식과 엄수를 이들만의 문명과 질서로 보기 위해 그 순간 이들의 엄숙한 얼굴을 더 가까이에서 오래 들여다봤으면 어떘을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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