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30 01:02
제가 호주에서 워홀을 할 때의 일화입니다. 당시 저는 친하게 지내던 남자 동생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딱 봐도 동양인처럼 생겼고 몸도 좀 호리호리해서 근육떡대랑은 거리가 먼 체형이었습니다. 그는 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고 그는 종종 저를 보기 위해 시드니의 여행자 숙소에 놀러오곤 했습니다. 어느날은 저를 보러오는데 아주 괴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오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어떤 호주 20대 남자들이 자기를 갑자기 걷어차고 튀었답니다.
"전 진짜.. 그냥 걷고 있었는데... 누가 엉덩이에 싸커킥을 날리는 거에요?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까 싸커킥을 한대 또 날리고 웃으면서 막 뛰어갔어요..."
http://www.koreatimes.com/article/1365457
호주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백호주의 차별범죄입니다. 그 때까지 저는 인종차별을 거의 겪은 적도 없고 인종차별을 일종의 '>>>>>>>>>주류와 어울릴 수 없게끔 뛰어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별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터지니까 그 때부터는 좀 걱정이 되더군요. 저는 다행히 그런 일을 겪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저를 볼 때마다 계속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동안은 길을 걸으면서 두리번거리기도 하구요.
이런 일화를 이야기하면 호주에서 인종차별이 분명히 있고, 그곳에서 거주하는 아시안과 코리안들은 명백한 사회적 약자라는 걸 다들 인식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예시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미국 (남부)에서 사는 흑인이라든가,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라든가... 어떤 종류의 무차별 폭력은 대다수가 그 사회의 주류가 비주류를 향해 저지르는 사건들입니다. 거꾸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사건들의 질과 비율이 누가 사회적 약자인지를 증명합니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주류 특유의 권력적 의식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비주류는 여기에 저항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몸을 사리면서 자신의 안전을 개인적으로 지키려고 하구요.
제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국적이나 인종에 따른 테러는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분류기준으로 사람들이 잘 인식을 하는데, 이걸 성별간에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대구 도심 카페서 처음 본 여성에게 '묻지마 폭행' 40대 남성 검찰 송치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413010001964
2021.06.30 01:29
2021.06.30 12:40
2021.06.30 09:38
2030 남자들이 찌질해지는 이유가 이런 사소하고 자잘한 성추행들을 못하게 단속하고 몰카같은 거 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겨서 그렇다고 (진심으로)아우성치는 부류들이 있기 때문이죠. 정말 놀랍긴 합니다만, 페미 때문에 한국남자들 다 죽게 생겼다고 비명을 지르는 걸 (남초 사이트)에서 종종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진짜 저긴 딴세상이군. 여초에서는 (성범죄에 맞서서 살아남기 위한)생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남초에서 말하는 '생존'은 그 생존과는 전혀 다른 걸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2021.06.30 12:41
2021.06.30 22:53
2030ㅇ,로 한정할 필요도 사실 없지요
2021.06.30 10:14
저런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보고 꾸준한 관리를 해야할지
혼자서 컨트롤이 가능한 정상인으로 보고 따끔하게 벌을 주면 정신을 차린것으로 보고 도로 사회에 풀어놔줘야할지
제가 괜히 고민입니다.
2021.06.30 12:42
2021.06.30 10:44
차별이나 혐오라는 것의 토양이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세대나 자란 환경에 따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면 상상력 또한 빈약할 수밖에 없죠.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 자신의 세상에서는 당연하니 구태여 왜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때까지와 달리 내가 누려야 할 것들을 왜 내놔야 하는지 짜증과 분노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살기도 빠듯한데 '관심 갖고 싶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그 '관심'에는 따르는 비용이 있으니까요.
제 경우도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배움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갈수록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라는. 새로운 이야기들, 다른 이야기들, 내 환경에서는 좀체 접하지 못했던 것들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학교 교육이 줄 수 없었던 혐오나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과 공생에 대한 내용들에 배우려는 자세로 접근하느냐 아니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배운만큼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많이 중요한 것 같아요.
2021.06.30 12:42
제 동거인은 중학교 2학년때 까지는 키가 150도 되지않는 작은 체구였답니다. 그래서 소위 "삥"뜯기는 일이 한달에 한두번씩 있을 정도로 잦았죠. 학교에가서 특정 불리에게 뜯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으슥한 골목이나 공원에서 서넛모인 불특정한 "형들"에게 뜯기는 거죠. 그래서 키가 훌쩍 자라고 야구를 하면서 단련이 되기 전에는 멀리서 고학년들이 두섯만 모여있어도 가슴이 뛰고 두려워 돌아가거나 다른 지나가는 어른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 기분을 평생 일정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느끼며 살아야한다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을 해보았답니다.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을 자신은 그 경험을 통해 유추한다고. 맨날 남자는 어쩌구 저쩌구 떠드는 근육마초도 그정도 센스는 있습니다. 근데 이제는 약자성을 증명하라고 공공연하게 떠드는 부류들이 라이징하고 있군요. 짜증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