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대로라면 어제 저는 상암동에 있는 영상자료원을 갔어야 합니다. 하지만 서울의 발달한 대중교통으로도 저희 집에서 그곳까지 가는데는 대략 한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영화 한편 (공짜로) 보고 오기 위해서는 왕복 두시간을 소모해야한다는 것인데 이게 이제는 가볍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삼십분 걸리는 거리여도 극장에서 주섬주섬 챙겨서 나오고 차 기다리는 시간 포함하면 대략 한시간쯤 걸리는 게 심리적인 거리감인데... 영상자료원은 순수하게 지리적으로 멀어서 이 심리적인 거리감까지 포함하면 어림잡아 한 세시간을 왔다갔다하는데 소모됩니다. 


좋은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집에서 모니터로 보면 사운드나 화면을 온전히 감상하지 못한, 영화의 0.8 정도만 감상한 것 같은 불완전한 느낌이 들거든요. 극장에 갔을 때 거의 완전한 암실이 되면서 세상 모든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영화와 저 혼자만의 온전한 일대일 관계가 이루어지는 느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집에서 보면 불끄고 본다고 이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건 그냥 집에서 보는 것이지 일상적인 환경에서부터 저를 격리하는 공간은 아니니까요.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극장에 가는 게 이제 일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극장에 가려면 따로 시간도 뺴야하고 스케쥴도 맞춰놔야 하고 오고가는 번잡함도 겪어야 하는데 그게 저한테 꽤나 커진 것 같습니다. 옛날에 너무 열심히 영화를 보러 다녀서 그럴까요? 한시간 거리를 걸어다니기도 하고 아맥을 본다고 괜히 천호나 판교쪽까지 가고 그랬는데 그 떄 뭔가를 다 소모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은 영화들의 시간표가 아주 개똥입니다!! 오후 세시 네시에 틀면 일하는 사람은 어떻게 보라는 것인지? 그럼 또 주말을 투자해야하는데 주말에 영화 한편 보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시간 대가 역시 오후 황금 시간대에 걸쳐있어서 그 시간을 자르면 누굴 만나서 놀거나 혼자 뭘 하기가 드럽게 애매하거든요....


오늘은 정성일 라이브러리 톡이 포함된 영화를 예매해놓고도 못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다가 다시 잤는데 알람 소리를 듣고 다시 일어나니 너무 머리가 무겁고 허리도 뻐근한 거에요. 이렇게 극장 가면 상영 내내 백퍼 졸 것 같아서 그냥 포기해버렸습니다. 장삐쮸 더빙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에라이 모르겠다 X발...!! 그냥 질러버렸습니다!!" 하고 속으로 외치면서요. 돈은 날렸지만 덕분에 컨디션은 좋습니다. 왜냐하면 저번주에도 <그 여름, 가장 따뜻했던>을 보러갔다가 정말 내내 잠만 잤고 정성일 평론가 톡도 귀에 안들어왔으니까요. 일요일 하루를 엄청난 찌뿌둥함에 보내봤기 때문에 이제는 몸이 시키는 대로 영화를 보려 합니다. 이러다 점점 극장에 안가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어제 날을 새다시피 해서 잤던 일시적인 후유증일까요. 저는 후자일 거라고 강하게 믿고 싶지만!! 극장 가는 게 귀찮아진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제 또 극장에서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욕망이 엄청 강해져서 택시 타고 영자원을 갈까말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이 작은 열정이 제 안에 계속 남아있어주길 바랄 뿐이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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