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날이군요. 또 한번 착잡하게 5월을 보냅니다. 한국사에서 5월은 묘하고 독특한 의미를 지니죠. 감각적으로는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예쁜 달인데 한국사에서는 특별한 달입니다. 제게는 생기/감정을 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달이기도 합니다.
해외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온 열네살 때,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집에 얹혀 살았습니다. 큰 주택이었던만큼 지하실에 어마무시한 자료실이 있었어요. 어느날 집 구경하느라 둘러보러 내려갔다가 80년 5,18의 자료들을 보게됐습니다. 한국 언론들이 다루지 않은 온갖 자료들이 다 있었는데, 제가 세상에 나와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날이었습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몇 시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울었으니까요. 충격적인 현실의 기록을 처음 접했던 거였죠.
오월은 제게 "후후,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건조한 고기압의 땅에서" (이성복) 죽음에 대한 의미를 불러 일으킵니다. 오월은 꽃들이 만개한 화려함을 자랑하지 못한 채 "꽃 속에 묻혀 자꾸 죽고 싶다"는 식으로 죽음에 대한 소망은 간접적인 은유를 통해 아무도 밟지 않은 땅을 가고 싶다는 욕망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이성복의 시 [성모성월1]에 보면 "미사를 볼 때 버드나무 꽃가루가 창을 넘어 들어왔고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창'이 세속을 막아내는 담과 벽이 되지 못한 채 세속에서 불어오는 죽음의 욕망을 교회 안에 불어넣는는 의미겠죠. 막지 못하는 창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이성복의 시를 읽다보면 봄이라는 계절의 부재를 느낍니다. 봄은 오지 않은 채 겨울에서 곧바로 여름으로 이행해버리는 것 같은 것.
봄이 되면 살 것 같다고 해빙의 기쁨과 따뜻한 열기에 행복하다는 선입견을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성모성월1]에는 그런 봄의 풍경은 찾기 힘들고 죽음의 소망이 깃든 계절로 바뀌어 있어요.
뻘덧: 오후에 회사 로비에서 맥락없이 털썩 쓰러졌답니다. 지나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와서 저를 일으키고 걱정했는데, 팀의 막내가 퇴근 때까지 제 목을 안고 한없이 울지 뭐예요. 속상합니다. 민폐끼치며 사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요. 그냥그냥 낙서질해봤습니다.
다 안나 쓰러졌지만 금방 좋아지겠죠 가슴을 쭉 펴고 심호흡도 하고 그러세요.
이제 완전 반팔이 계절이 되는군요 난 차라리 겨울이 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