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탐정 김전일

2021.06.01 01:48

Sonny 조회 수: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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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소년탐정 김전일을 다시 읽었습니다. 한 2n권까지 읽었는데, 이 역시도 잠은 안오고 기력이 딸리는 가운데 미스테리하고 괜히 목의 솜털 돋는 이야기를 찾아 헤매다 선택한 컨텐츠입니다. 어른이 되서 다시 읽으니 여러가지로 감회가 새롭네요. 


읽다보니 가장 크게 와닿는게 사건의 막장성입니다. 꼭 잔인하다거나 비인간적이라는 게 아니라, 하나같이 몇십년전의 누구랑 누가 사귀었네 애를 낳았네 가족이나 연인이 살해당했네 하는 임성한 뺨치는 스토리들이 숨겨져있습니다. 한 많은 민족 니혼진...!!! 그 정도의 원한을 가지고 있으면 차라리 외국인 킬러를 고용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은데요. 이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기어코 보내줘야겠다는 의지의 일본인들인지 아주 복잡한 트릭을 준비해서 현실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데도 직접 계획대로 사람들을 죽입니다. 용의자를 다 죽이고 나면 눈물의 고백타임 ㅠㅠ 이 때부터 김전일은 인간극장 나레이터로 변신해 생면부지의 이들의 사연을 혼자 줄줄 읊어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내 추측이 맞다면... 당신은 15년 전 그 사람의 딸이겠죠!!' 사건 트릭을 추리하는 것보다 사연을 짚어내는 능력이 더 놀랍습니다. 차라리 점집을 여는 게 어떨까 싶어요. 


범인들은 하나같이 자기 억울함을 알아줬으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본인들이 진범으로 지목을 받으면 그 때는 가슴 속 응어리를 다 풀어내놓기 시작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사람들은 안걸리기보다는 용의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게 목적이라서 딱히 아쉬울 건 없습니다. 그 복수를 성공한다고 해봐야 뭔가 후련하거나 시원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인이 걸린 걸 대단히 안타까워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헥 될 줄 알았어 하는 식으로 김전일의 추리와 진행(?)을 덤덤히 받아들이죠. 어차피 죽일 놈들 다 죽였겠다, 트릭도 원없이 썼겠다, 안걸렸으면 좋았겠지만 저 놈이 추리를 잘했고 나는 미스가 있었으니 이쯤에서 GG... 이런 느낌? 무너가 좀 작위적이지만 에피소드들이 연속되어서 그렇지 저 정도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자기 이야기를 다 하고 싶을 거에요. 마냥 나쁜 놈으로 오해받고 싶진 않을테니까. 이 사람들의 살인은 꼭 복수나 처단이라기보다는 진상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과격시위 같은 느낌이 있어요.


아무리 패턴이라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좀 짜증나는게... 한 7,8권쯤 넘어가면 김전일이 사건을 꽤나 해결했단 말이죠. 다른 지역의 경찰들도 다 아는 수준이니 당연히 민간인들도 김전일이 누군진 몰라도 김전일이란 명탐정이 진범 계획 다 꿰뚫고 감옥으로 범죄자들을 특급배송했다는 사실쯤은 알겠죠. 그러니까 일평생의 한으로 준비를 한 디데이가 왔는데 그 현장에 김전일이 있다, 이러면 좀 계획을 미뤄야하지 않겠습니까? 아 망했다 하필 김전일이 와있어~~ 이러면서 어차피 몇년 기다렸던 거 한 1,2년만 더 기다렸다가 따로따로 찾아가서 죽이든가 아니면 다시 계획을 짜든가 해야죠. 김전일이 와있는데 왜 바보같이 사건을 저지를까요. 자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김전일을 사건 실행의 깃발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김전일이 와있다고? 그럼 일단 죽이는 건 대충 다 죽이겠구나 아싸!! 다시 말하지만 외국인 킬러를 고용하는 게 여러모로 안전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 범죄자들한테는 굉장히 미학적인 욕심이 있어서 그걸 남한테 맡길 순 없나봅니다. 본인이 디렉팅 및 연기까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찰리 채플린 같은 사람들인가봐요.


거기다 정말 이해가 안가는 것! 김전일은 에필로그를 들을 때마다 진범이 자살하는 데 가만~~히 자빠져있다가 뒤늦게 호들갑을 떱니다. 이건 이사무 경감이 더 욕을 먹어야 하는데, 진범이 진범으로 들통이 났어요. 그러면 일단 뒤로 팔을 돌려서 수갑부터 채워야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현장에 있으면서도 "아니!!" 하면서 진범이 자기 목이나 가슴을 칼로 찌를 거란 걸 상상도 못했다는 듯이 가만히 냅둬요. 수갑만 채우면 아무 일도 안일어나는데!! 김전일도 김전일인게, 어차피 경찰은 자기 도구 같은 거고 현장 통제는 본인이 다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럼 자기가 먼저 나서서 이사무 아저씨, 수갑채워주세요 하고 안전문제를 단도리를 쳐야죠...? 혼자 해설하는데 신나서 매번 삿대질로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 하다가 범인인 반쯤 눈을 감고 해탈미소를 띄우면 가만히 있어요... 뛰쳐나가서 자살 못하게 뭐라도 해야죠? 자살방조 너무 심각합니다. 이건 사건을 해결하고 사람을 살리려는 게 아니라 자기 퍼즐 놀이에 사람들 목숨을 쓰는 것 같아요. 한 10권때부터는 읽는데 짜증이 나더라구요. 이 자식은 뭔데 이렇게 안일하지?? 범인이 빅규모로 자폭을 준비하는 건 어쩔 수 없다치는데 칼로 자해를 하는 거면 좀 막아줘야죠...(사실 자폭같은 것도 땅에 눌러놓고 수갑 채우면 다 막을 수 있을텐데)


진범들이 안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김전일 이 자식이 하는 짓이 그 진범들한테 면회를 가서 "너가 범죄 안저질렀으면 둘 다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음" 같은 사람 속 후비는 소리나 하는 겁니다... 뭐하러 그걸 알려줍니까... 감옥안에서 얼마나 회한이 많겠어요. 김전일의 경솔한 인성... 읽는 제가 다 인성이 부도날 지경입니다. 죽게 놔두든가 살아서 잔인하고 모진 소리 듣게 하든가... 물론 그래도 꼭 위로는 해주죠. 살아서 행복해지는 게 당신 할 일이라고.


어떻게 보면 현실 반영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다 기구한 사연 한 둘 쯤은 있고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어쩌면 김전일의 허구성은 그 기구한 사연들이 아니라 그 사연들을 토대로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퍼즐로 밀실살인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그 실행성일지도 모르죠. 김전일을 계속 읽다보니 이제 추리극이 아니라 서프라이즈를 보는 느낌마저 듭니다. 자꾸 그 성우분의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 역시 최고 에피소드는 육각촌 살인사건인 것 같아요. 스토리가 너무 처절한데다가 시체를 이리저리 꾸미는 그 트릭 자체가 엄청 엽기적입니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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