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

2021.05.19 19:18

어디로갈까 조회 수:881

일주일 째 사경을 헤매는 느낌으로 끙끙 앓았습니다. 어디가 고장난 건지 알 수 없는 녹다운이었어요. 보스에게만 출근불가를 알렸을 뿐 차마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침대에 파묻혀 제 목소리로 신음소리만  제 귀에 전하며 견뎠어요.
어제부터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돌아왔는데, 오늘도 출근하지 못한 것에 죄의식을 갖고 있었더니 아니, '부처님 오신날' 공휴일이군요. - -:

서양에는 부활절, 성령강림절, 예수승천일, 성체축일, 크리스마스 같은 종교적 기념일이 많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면 학생들은 2주 간 방학하고, 예수승천일이나 성체축일은 학교에 가지 않아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3주 간  방학이고요. 그렇게 사회 전체가 종교적 기념일들과 맞물려 돌아갑니다. 비록 현대 사회가 종교적인 과거를 벗어난지 오래이지만, 사회의 시간 감각과 종교적 기념일들은 여전히 일치합니다.
저 같은 이교도의 시간 감각으로도 종교적 기념일들에 적응하면서 역사 속에서 어떤 일치가 발휘하는 힘을 느낄 정도이니까요. 

이러한 삶의 습관은 Feiertag이라는 단어에 담겨 있는데, 휴일을 뜻하는 독일어 명사입니다. 이 말은 기념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Feier와 날을 뜻하는 Tag로 구성돼 있어요. 영어의 holiday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의미이고, 우리가 흔히 쓰는 기념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석가탄신일은 불교계가 크리스마스에 항의하여 생겨난 휴일이죠. 다르게 해석하자면 불교의 역사는 그토록 장대한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교 사회가 길게 유지되었던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 공휴일에 대한 의식은 발전해 본 적이 없지 않나요? 한국의 전통적인 절기란 모두 농업사회의 시간 감각을 따르고 있는데, 그런 시간 감각에 종교적 공휴일이 파고들어가지 못했다는 건 직시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은 기독교의 종교적 이념이 당시 이교도의 시간감각에 따른 절기들에 적응한 결과이고, 유럽 사회의 종교적 기념일들은 기독교적인 기념일이면서도 동시에 이면에는 그들의 시간감각에 맞는 절기들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느 종교이든 이런 식으로 토착화하여 한국인의 본래적인 시간 감각과 일치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제가 잘 모르고 있는 건지요?

덧: 저는 한낱 물질이 아닌 생명체이니까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보고자 또 이런 낙서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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