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5 00:12
정통파 정치인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야심, 그러니까 다수의 지지를 받고 공직을 차지해서 자신의 능력이 닿는 데까지 사회의 부조리를 뜯어고치겠다는 목표 의식을 가지고 정치인에 도전한다는 거겠죠. 이런 정치인은 고전적이다 못해 고루합니다. 운동권 인사들이 투쟁현장에서의 공을 인정받고 직을 차지하게 되는 유행은 끝났습니다. 현대의 정치는 오로지 이미지가 전부입니다. 뭔가 보여줄 것 같고, 뭔가 새로운 것 같고, 딱히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고 기성 정치에 맞서는 대안이 될 것 같은 느낌 자체가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미 미국 대통령을 뽑아냈고 그 결과를 혹독하게 맛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는 현대정치가 고도화된 산물입니다. 안철수가 무슨 정치를 하려고 하는지 혹시 아는 사람이 있나요? 이렇게 말하면 문재인이나 이명박과 비교하면서 그들은 얼마나 내실이 있는 정치인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릅니다. 안철수는 이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허합니다. 기본적으로 (구) 새누리 출신의 정치인들에게는 능력주의라 쓰고 계급주의라 읽는 계층과 경제자산의 순환이 거의 고정된 사회를 추구합니다. 심화경쟁의 장에서 피라미드에 올라온 자만이 결과물을 누릴 수 있으며 그게 안되는 자들은 알아서 개천의 용이 되라는 식입니다. 문재인 혹은 더민주의 정치인들은 "그래도 그건 심하다"는 부분적으로만 인간적인, 정치적 포지션이 있습니다. (물론 이게 더민주의 한계입니다) 심지어 그렇게 텅텅 빈 박근혜씨도 박정희의 유산을 계승하며 수구보수주의를 추구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맞든 틀리든 정치적 기조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가 정치적 대안으로 떠올랐던 계기는 뭔가요. 무슨 정치적 활동이 아닙니다. 무릎팍도사라는 예능에 나갔던 게 가장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이는 청문회 때 당시 새누리 의원이었던 강용석의 발언으로도 확인 가능합니다. 안랩 주식을 두고 이야기하면서 무슨 예능에 나가서 유명해진 기업가를 뭘 이렇게 띄워주냐면서 격분했죠. 그는 이후 썰전의 게스트로 활동할 때도 죽자사자 안철수를 공격했습니다. (자주성가의 대표격인 그가 안철수에 이렇게 반응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김종인도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죠. 당연합니다. 정치적 지향점이 어떨 지언정 어쨌든 정치의 프로들이 보기에는 안철수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짜스러움이 있습니다. 이건 정치적 세계관의 충돌, 여야 보수 이런 대결이 아닙니다. 무슨 어중이떠중이가 자꾸 물을 흐리냐는 프로로서의 고까움이죠. 안철수의 새정치? 그게 뭔가요. 이 사람 지난번 총선 때 그 쥐꼬리만한 당의 후보들이 국민의당으로 나갔을 때 혼자 마라톤 하고 있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한 간판스타가요. 선거가 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당을 이루고 세력화시켜서 자신만의 정치적 차별점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냥 마라톤 합니다. 아마츄어리즘이 너무 심해서 광인 수준에 도달합니다. '제가 엠비 아바타입니까?' 그 희대의 개소리를 하던 것도 안철수의 정치적 역략을 고스란히 증명합니다.
안철수가 하는 유일한 정치가 있습니다. 기업들이 합병하듯, 자기 자신을 자신만큼 유력하고 혹은 역사가 더 오래된 정치인들과 손을 잡거나 연을 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력 노나먹기입니다. 자신의 지명도와 호감(?)형 이미지를 활용해 자신의 지지세력을 세일즈합니다. 안철수의 유일한 정치적 성취는 뭔가요? 보수(라 쓰고 극우라 읽는) 새누리도 아니고 진보(라 쓰고 보수이면서 흉내도 못내는) 더민주도 아닌 3지대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이 성취가 안철수를 보여줍니다. 이 사람은 새로운 무엇을 제시하거나 지금 사회에 아주 필요하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제시하질 못합니다. 내 편 하든가 아니면 표싸움 해서 너가 지든가. 오로지 세력 갈라치기 뿐입니다. 이건 선거정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안철수는 이것만 합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안철수의 유일한 정치적 자산은 단일화입니다. 나랑 단일화하든가 안하든가. 박원순이 서울 시장 할 때부터 안철수는 단일화 카드를 들고 흔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문재인과 단일화를 두고 협상했습니다. 그리고 들어간 민주당에서 생각만큼 지지를 못받자 그 민주당에 나가서 국민의당을 만들었습니다. 단일화를 파기하고 힘을 약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별 힘을 못쓰다가 이번 서울 시장선거에 나와서 뭘 하고 있나요. 또 단일화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안철수는 죽을 때까지 단일화밖에 안합니다. 그게 자신의 원앤온리 자산이니까요.
물론 단일화에도 최소한의 원칙은 있습니다. 개빻은 극우만화가 이케가미 료이치가 그린 정치만화 생츄어리에서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리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는 여당으로서의 위치가 간절해도 정치적 기조가 다르면 절대 협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철수에게 그런 게 있습니까. 문재인한테 붙었다가, 이번에는 오세훈한테 붙습니다. 아무리 서울시장이 좋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양극단을 오갈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진보진영(쓰면서도 황당한데 일단 이렇게들 구분하니까)의 단일화로 떠오르고 더민주 소속으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인데, 지금은 그 반대편인 (구)새누리에 가서 정치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건 철새도 뭣도 아닙니다. 애초에 진영이 무의미할 정도로 정치적 색이 없으니까 펼칠 수 있는 행보입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이 없다는 건 이렇게 무섭습니다. 누가 됐든 팔릴 것 같으면 자기를 판다는 마인드입니다.
어쩌면 아이티업계 세일즈맨다운 가치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성공했다고 취급받는 스티브 잡스는 어땠습니까. 이 사람은 팔아야 할 컴퓨터 기능이 완성도 안됐는데 프레젠테이션부터 하면서 사기를 쳤던 사람입니다.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의 기본적인 문제 의식과 가치관 같은 게 전무합니다. 그냥 세일즈맨답게 자기가 팔릴 것 같으면 어디든지 가서 자기를 팝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창당하다시피한 정당이 다 깨져나가도 저렇게 무책임한 채로 자신의 세일즈만 합니다. 문제는 이 사람이 트럼프처럼 대단한 쇼맨십이나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나르시시즘도 없다는 점입니다. 대선토론때의 실패를 만회하지 못하고 계속 구설수만 일으키는 것도 당연합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소프트웨어가 없으니 하드웨어가 잘 돌아가겠습니까? 안철수의 공허함을 증명하려고 비유를 들었던 인물들이 너무 대단한 엔터테이너들이 괜히 송구해지는군요. 그 정도로 안철수는 풍선 같은 인간입니다.
2021.03.25 05:26
2021.03.25 09:46
오오 그렇게 보시는군요.
2021.03.25 08:01
그래도 재난 위로금 10만원 지급, 어르신에게 점심 무상 제공 그래도 재난 위로금 10만원 지급, 어르신에게 점심 무상 제공 공약을 제시하는 정치인들 보다는 낫습니다. 22
게다가 반값아파트라니 ㅋㅋ
2021.03.25 09:47
저는 안철수가 누군가와의 비교우위를 차지할만한 정치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말 바꾸는 것도 순식간에 할 사람이라 평가하기 때문에...
2021.03.25 08:54
안철수 같은 혜성같이 나타난 정치신인은 늘 있어왔습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자산으로요.
안철수 전에는 문국현이 있었고, 그 전에는 정주영이 있었고...
다만, 안철수가 이전과 다른건 10년을 버티고 있다는 거죠. 10년을 버티니 구설수가 나올 수 밖에 없고요.
저는 이분의 갈팡질팡 행보가 사회생활을 해본 경험이 적어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군의관 시절을 제외하면 늘 오너였죠. 그래서 자기가 당의 오너로서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본인이 생각한건지 주변에서 불어넣은건지 모르겠는데 자신의 회화화된 이미지는 민주당과 문통이 드루킹 등을 이용해서 망가트린거고, 그것만 아니었으면 지금 청와대에는 자기가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극중을 부르짖던 사람이 반문으로 갈아타서 죽어도 손 안잡는다는 새누리당이랑 손잡게 된거죠. 아마 내년에 정권이 바뀌고 국힘에서 팽당하면 반국힘을 부르짖으며 민주당이랑 다시 손잡거나 극중으로 돌아가겠죠.
2021.03.25 09:49
네 안철수에게는 뭐랄까, 자기가 이 판의 주인공이라는 순진한 자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툭하면 단일화를 외치면서 자길 팔아먹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2021.03.25 10:40
그 환상이 깨지는 날이 올까요 나는 별 것 아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나는 정치할 그릇이 못된다는 것
2021.03.25 18:17
못깨겠죠 그러면 죽을테니... 안철수의 전부일텐데
2021.03.25 13:57
2011년 쯤에는 문재인씨나 안철수씨나 둘 다 선출직으로서의 정치 경험 없는 불안불안한 신인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2012년 단일화 때는 정치인 개인으로서의 두 사람 중 누가 더 낫다고 판단하기가 참 힘들기도 했었어요. 지나온 10년 사이에 이 두사람에 대한 제 평가가 이렇게 달라져버린 것도, 10년 전을 돌이켜 보면 좀 신기합니다.
2021.03.25 18:22
그 당시 문재인은 선출직 경험은 없어도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으로서의 경험은 있었죠. 여의도 짬밥은 있었습니다. 불안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안철수과 비교할 깜은 안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때도 안철수가 왜때문에 저렇게 뜨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2021.03.25 14:14
2021.03.25 18:22
감사합니다 이 이하로 댓글 안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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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5 18:16
글쓴 분 의견에 매우 동의합니다. 신랄하시네요. 마음에 들어요. 10만원 재난지원금보다 낫다는 건 지금 여당 후보가 그만큼 어마어마한 삽질 중이라는 거고 안철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제로니까요. 정부 여당은 마이너스고 ㅋㅋㅋㅋ 비교하면 비교 우위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게 말이 됩니까.
안철수에 대한 저의 의견은 이거에요. 개인 안철수에 대한 관심은 어차피 없고 다만 어떤 사람이 안철수를 긍적적으로 평가하고 대안으로 생각하는가. 그러니까 국민의힘 계열은 여러 명분상 지지하기 힘들고, 민주당 하는 꼴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소수 진보정당은 힘도 없는 한줌 어린애 장난 같아서 선택지에서 아예 제거해버린 사람들이죠. 제3지대라는 게 노상 그 정도 어디쯤 아닐까 싶어요. 이게 정치사상적 지향점 아니고 정치공학적인 프레임으로 말하자면 해방 직후 중도파들인 건데, 그 사람들도 각자의 명분은 있었거든요. 지금 사후적으로 보자면 현실 인식이 가장 합리적인 집단이었고요. 근데 그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대중적 지지기반이 없었다는 거죠. 제3지대도 지지율 규모 이런 것 봤을 때 적진 않지만, 그렇다고 골수 국힘이나 골수 민주당만큼은 안 되니까요. 아무래도 선명성이 적은 만큼 성향이 가장 약한 집단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대표 정치인들인 유승민이나 안철수나 김종인이나 뭘 제대로 해보 전에 지리멸렬해질 수밖에 없고, 결국은 기존 양자 구도를 깨트릴만큼은 안 되는 거지요.
안철수가 하도 투명한 인물이다보니 옆에서 구경 하기에는 그저 웃음만 나옵니다. 안철수가 그 지지자들이 기대하는 만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가, 하다 못해 민주당은 민주당 골수 지지층의 요구를 알아요. 국힘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죠. 제3지대란 사람들만 가장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양당구조가 좀 깨지길 바라고 있어요. 당분간은 무망할 것 같습니다.
2021.03.25 18:26
그쵸 안타깝습니다. 옆에서 보면 세상 저런 빈깡통이 없는데... 사실 저도 안철수 본인보다는 안철수 지지자들이 궁금하긴 합니다
2021.03.25 19:20
저는 이 분에 대한 판단을 조금 달리하게 됐어요. 정치에 입문해서 보여준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자세 이후에 '무탈의 정치, 무악류의 정치'를 기대해봐도 좋은 사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게까지 됐달까요. (에취!) 암튼 처음의 짐작보다는 놀라운 멘탈과 내공의 소유자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뭐 서산마루에 걸린 해이긴 하죠. - -
그래도 재난 위로금 10만원 지급, 어르신에게 점심 무상 제공 공약을 제시하는 정치인들 보다는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