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인이 나오는 영화(2)

2021.04.02 14:38

비네트 조회 수:520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내셨는지...

세 여인이 나오는 영화들 1편을 쓴 지 꽤 오래됐는데 여태 미루다가 2편을 쓸 마음이 드디어 들었습니다.

기다리셨던 분은 아마 없었을 거라고 감히 예상해 봅니다. 


온 김에 아무도 궁금해하시지 않을 간단한 근황까지 전하면 제가 최근에 복사뼈 끝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었어요.

딱히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겪을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진 않았습니다. 다만 제 다리 한 짝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닫게 됐죠. 

제 몸뚱이를 끌고 다니느라 그동안 고생이 많았을 거예요.

다들 다리를 소중히...



아무튼 세 여인이 출연하는 영화의 두 번째 작품은 바로 ‘투 웡 푸’라는 영화입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저는 이렇게 작고 작은 영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흥행이나 영화의 작품성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사람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그런 영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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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웡 푸’는 패트릭 스웨이지와 웨슬리 스나입스, 존 레귀자모가 세 명의 드랙퀸으로 나오는 영화예요.

이 세 명의 여인(?)으로부터 느껴지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었어요. 

영웅담을 다룬 액션 영화에서 무척 남성적인 역할로 자주 출연하던 배우라는 이미지 말이에요.

특히 웨슬리 스나입스는 드랙 복장을 하고 나오는 걸 처음 봤을 때 적잖이 놀랐답니다. 

엄청난 근육질을 감추지도 않고 한껏 여성스럽게 꾸민 그 모습이라니!

하지만 패트릭 스웨이지의 우아한 드랙은 무척 멋지고 감쪽 같았어요. 말투나 몸짓도 흠잡을 데가 없었답니다.

존 레귀자모도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또 놀랐죠. (역할이 뉴비라서 자연스러울 필요가 없었어요)


영화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뉴욕의 유명한 드랙퀸 비다와 녹시마는 뉴욕 드랙퀸 컨테스트에서 공동 우승을 하게 돼요. 그래서 뉴비 드랙퀸인 치치까지 주워다가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전국적인 드랙퀸 컨테스트에 나가기 위해 길을 떠나죠. 그러다가 중간에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한 시골 마을에 가게 되는데요. 드랙퀸이 시골 마을에 가게 됐다니, 분명 어떤 소동이 있을 거라는 걸 쉽게 예상할 수 있죠? 역시나 마을에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데 그 소동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랍니다. 


투 웡 푸라는 제목을 한글로 써 놓으니 영 이상하게 들려요. 사실 진짜 제목은 ‘웡푸 씨에게, 모든 것에 감사드려요, 줄리 뉴마가’ 입니다. 비다가 정말 존경하는 여배우인 줄리 뉴마가 본인의 사진 위에 이렇게 싸인을 했는데 그걸 영화 제목으로 차용한 것이에요. 근데 한글 제목은 이런 늬앙스를 전혀 싣지 못하고 있어요. 제목만 들으면 무슨 홍콩 무술 영화 같지 않나요?


1995년도 영화답지 않게 드랙퀸이라는 독특한 존재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따스하고 다정합니다.

오히려 이들을 괴롭히는 마초적인 남성들을 찌질하게 그리고 있죠.

사실 누구보다도 남성적인 배우들을 데려다가 곱게 여장을 시켜놓고 평소라면 함께 협력하거나 두들겨팼을법한 경찰관들에게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게 만들다니 꽤나 영리한 장치라고 느껴지지 않나요?

소수자라는 존재는 어떤 특별한 경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며 우리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피력하고 싶었던 걸까 싶더군요. 


영화에선 삶에 짓눌리고 있는 여인과 노인들, 아직 길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을 돕는 역할로 이 드랙퀸들을 내보냅니다. 확실히 척박해 보이는 시골 마을에 나타난 드랙퀸들은 알록달록하고 생기가 넘쳐 보였어요.

애니매이션의 반짝반짝 이펙트를 현실에 달고 나온 느낌이랄까요.

세 명의 드랙퀸들은 각자 마을에서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그래서 이 반짝반짝 이펙트들이 점점 마을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하죠. 주로 여성들이에요. 


주눅들지 않고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걸 뽐내는 행동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이 영화에서 이런 모습을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배우는 비다 역을 맡은 패트릭 스웨이지예요.

연기를 무척이나 잘했거든요. 드랙퀸으로서의 소수자성을 지닌 남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했답니다. 

저는 이 영화속의 패트릭 스웨이지가 정말 좋아요. 의지가 넘치고 때론 다정하고 자신의 연약한 면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거든요. 이런 모습이 아마 제가 닮고 싶은 부분일 거예요. 

패트릭 스웨이지의 이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답니다. 


로드 무비 답게 마지막에 삼인조는 이 마을을 떠납니다. 하지만 내 삶에 잊을 수 없는 한 획을 긋고 지나간 누군가로 인해 삶이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걸 믿는 저는 분명 마을 사람들이 삼인조가 주고 간 용기 덕분에 잘 살아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도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건방지고도 희망찬 생각을 품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만약 될 수 없다면, 그런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작은 기대 정도는 품어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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