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죠

2021.04.02 12:46

어디로갈까 조회 수:892

오전에 어느 갤러리 전시장에 갔다가 잊고 있던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한참 동안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만큼 다른 관심/공간적 거리가 있었던 거겠죠. 그와 커피 한 잔 나누는 중에도 이 마주침은 착란이 아닐까 싶었으니까요.

그가 물었습니다. "나를 그리워한 적이 있어요?"
제가 답했습니다. - 그런 질문은 어떤 거짓말보다 나쁜 거에요. 
그가 물었습니다. "왜요?"
제가 답했습니다. - 뻐꾸기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는 기적을 인생에서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착란이라고 해도 혼자서 느끼는 거니까 설명할 수는 없죠. 
그가 한숨쉬었습니다. "넌 하나도 안 변하고 고대로구나."
제가 맞받았습니다. - 그렇게 서로 이해 못한 채 다르게 살다가는 게 인생인 겁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은하철도의 밤>에 나오는 조반니가 연상되는 분위기를 느꼈어요. 우주에서 자청룡빛 별들을 보면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스탠스가 느껴졌달까요. 아니면 지상에 붙은 땅강아지처럼 코를 박고 사는 것에는 영 흥미를 못 느끼는 성향이 느껴졌달까요. 대학 졸업 무렵, 은사님이 저와 잘 맞을 거라며 강력 추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레브로프의 <우주와 지구와 인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주정거장에서 하루이틀은 자신이 속한 고향과 자기 나라만 찾아본다. 사흘나흘이 되면 자신의 나라가 속한 대륙만 보인다. 닷새엿새가 되면 지구가 하나라는 사실에 문득 눈뜨게 된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코스모노트라고 하죠.  그는  그런 사람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제 느낌/판단입니다. 지구가 하나라는 사실,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본다는 코스모노트의 관점을 존중하지만 그가 술은 예전보다 좀 줄였기를.... 그야말로 우주예술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덧: 보스가 맛있는 밥 사주겠다는데 토기가 일어서 응할 수가 없습니다. 뜻밖의 조우에서 받은 감정적 영향이 제법 큰가봅니다.  -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504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440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839
115679 표가 2 페이지로 넘어가버리는 현상, 한글에서 편집할 때 질문드려요. [4] 산호초2010 2021.05.05 966
115678 엣지 오브 투모로우 (2013) [5] catgotmy 2021.05.05 510
115677 요즘은 볼수 없는 버스커들 [3] 가끔영화 2021.05.05 384
115676 남혐은 존재한다 사팍 2021.05.05 547
115675 유튜브에 저작권이 있는 영상을 올릴때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4] 한동안익명 2021.05.05 557
115674 한달만에 온 김에 새 마블영상 공유해봅니다 [2] 예상수 2021.05.05 360
115673 영화사 최고의 로드 무비인 <자유의 이차선>을 만든 몬테 헬만을 추모하며 [4] crumley 2021.05.05 469
115672 왜 과거 공포 영화는 다 우주로 가는 걸까요? [21] 부기우기 2021.05.04 596
115671 어거지로 상징을 찾아내는 한남들과 점쟎게 논문쓰는 페미니스트 [2] 도야지 2021.05.04 782
115670 제발 한국인이면 인빈시블 좀 봅시다. [14] Lunagazer 2021.05.04 2441
115669 무리뉴, AS 로마 감독 부임 [3] daviddain 2021.05.04 303
115668 [바낭] 맥락 없는 탑골 팝음악 몇 곡 [8] 로이배티 2021.05.04 335
115667 GS편의점 포스터 때문에 생각나 괴담 [11] McGuffin 2021.05.04 690
115666 할아버지와 거의 백살 차이나는 드루 베리모어 [7] 가끔영화 2021.05.04 502
115665 공포영화 유튜브 요약본을 보고 나서 [13] Sonny 2021.05.04 477
115664 gs25비하논란 - 이것은 왜 비하가 아니라는 말인가(여성은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가) [21] 예상수 2021.05.04 1085
115663 사무라이(수정) [6] daviddain 2021.05.04 254
115662 몰라요? 모르나요! 모르면 맞아야죠!!! [1] ND 2021.05.04 444
115661 성별로 퉁치는 논쟁은 끝났으면 좋겠지만.. 팔정도 2021.05.04 286
115660 [영화바낭] 살짝 좀 미친 듯한 호러 영화 '세인트 모드'를 봤습니다 [27] 로이배티 2021.05.04 111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