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근무 1년

2021.03.19 00:51

Kaffesaurus 조회 수:754

코로나 때문에 이유가 없는 이상 자가 근무 하라고 한지 1년이 넘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출근 자채가 금지된건 아니에요. 지난 여름 지나고 가을 학기 초에는 반반씩 나눠서 출근도 했습니다. 저는 이유가 있어서 주 2일 정도는 출근하지만 대부분의 동료들은 일주일에 한번도 출근하지 않는 자가 근무 모드 입니다. 다들 너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학은 자가 근무할 수 있는, 하기 쉬운 쪽에 속하는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자가 근무 기간이 늘어날 수록 함께 일할때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던가가 느껴집니다. 


제가 처음으로 자가 근무하면서 부족하다고 느낀건 (아무래도 일이 일이다보니) 동료들과 함께 일구어 가는 지적 생활이었습니다. 꼭 세미나 같이 따로 시간을 정한 미팅이야 줌으로도 계속 되었지만 점심시간, 피카시간 (커피타임) 때 자연스럽게 대화속에 있던 지식을 생산에 도움이 되는 것들. 한 문장을 가지고 열심히 씨름하다가 그것과 상관없는 대화에서 그 문장이 풀리는 것을 느낄 때의 그 기쁨. 혼자 일하다 보니 아 내가 똑똑한게 아니라, 내가 이들과 있어서 똑똑하구나 란걸 깨닫게 되더군요. 


함께 기억하는 것들. 사람들이 저보고 체계적으로 일한다, 뭐 하나 잊어버리지 않는 다 하는 데 원걸, 자가 근무하다보니 다행히 데드라인을 지나치지는 않았어도 뭔가 자꾸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거에요.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함께 일하면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아 맞아 나도 이거 보내야지, 아 이일 데드라인이 다음주지 이런 걸 상기하는 데 이런 보이지 않는 알람시계가 생활에서 다 사라져 버린거죠. 


그리고 생활안에 있던 피드백들. 논문이나 연구 뿐 아니라 학생들과 관련해서 꼭 동료 누구와 상의를 하는 게 아니라해도 그냥 대화 속에서, 아 이렇게 말한게 맞다, 특히 힘든 케이스 같은 경우 이런 걸 기반으로 이렇게 결정했다 할때 동료들이 동의 하면 결정은 제것이지만 또한 함께 한 것이 되는 거죠. 제 등뒤에 늘 동료들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이 사라진 기분. 


오늘 아침 줌 피가시간에 소피아와 카로 뿐이었습니다. 소피아는 올해로 부서장을 카로한테 넘겼어요. 소피아가 지난 해 내내 있던 줌 미팅들이 없어지고 나자 요즘에 정말 느낀건 아 만나는 사람이 없구나 라고.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은 다 짜증내는 사람들 뿐이다 (즉 10대의 반항을 시작하는 쌍동이 딸들과 스트레스에 엄청 시달리는 남편). 우리는 크게 웃으면서 정말 정말 나도 그래. 제가 웃다가 "생각해보니까 동료들과의 만남도 그러네, 나만해도 문제가 있어서 전화하지 뭐 좋은 일이 있다고는 전화 안하거든. 문제가 좀 심각해야 이정도 문제이니 당신을 좀 방해할만한 이유가 있는 거죠 란 식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다들 일할때는 작은 좋은 소식들, 뭐 힘들어 했던 학생이 패스했다거나, 논문을 보냈다거나 아니면 애들이 예쁜 말을 했다거나 그런 것도 다 함께 나누는데, 없네."


우리는 빨리 우리기 미치기전에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라고 말하며 줌을 끊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지난 가을학기 초반만큼만 되어도 일하는 게 즐거워 질것 같은데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11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81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989
115180 미래에는 누구나 15분간 유명해진다 [2] 예상수 2021.03.19 637
115179 어벤져스(2012) catgotmy 2021.03.19 299
115178 코로나 백신과 항체에 대한 이런 저런 잡생각들 [6] 왜냐하면 2021.03.19 622
115177 브레이브걸스와 혐오 [40] 사팍 2021.03.19 1442
115176 Oscar 후보작 국내 OTT/VOD [6] McGuffin 2021.03.19 473
115175 한인 총격사건 [8] 사팍 2021.03.19 629
115174 여동생이 혐오범죄 대상이 됐었던 다니엘 대 킴 / Black은 써도되는말 Yellow는 쓰면안되는말 [21] tom_of 2021.03.19 1088
115173 [정치] 안철수, 국민의힘 요구 전격 수용.."22일까지 단일화 [2] 가라 2021.03.19 472
» 자가 근무 1년 [8] Kaffesaurus 2021.03.19 754
115171 검은 함정 [4] daviddain 2021.03.18 540
115170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4900원에 보는 법(네이버 한정) [3] 예상수 2021.03.18 514
115169 이런저런 요리잡담 [6] 메피스토 2021.03.18 432
115168 [넷플릭스바낭] 괜찮은 스페인 호러 영화 '베로니카'를 봤습니다 [9] 로이배티 2021.03.18 951
115167 솔직한 충고가 필요없는 경우 [15] 예상수 2021.03.18 795
115166 글루탐산=감칠맛 성분, L-글루탐산나트륨과는 다른 것 [4] tom_of 2021.03.18 973
115165 정치에 윤리로 대적할 수 있을까 [11] Sonny 2021.03.18 728
115164 한사랑 산악회 아시나요. [20] Lunagazer 2021.03.18 2943
115163 뒤늦은 안철수-오세훈 토론회 후기 [13] 가라 2021.03.18 908
115162 [게임바낭] 게임패스 소식 : M$가 맘 먹고 현질 승부를 하면 어떤 일이... [21] 로이배티 2021.03.18 523
115161 비극의 탄생 [15] 사팍 2021.03.18 86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