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게시판에서 알게된 에세이 사일런트 마이너리티를 입원하여 누워있는참에 구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45살에 엮어 낸 역사 에세이집 '사일런트 마이너리티'에는 환갑을 넘어서 계속될 그녀가 바라는 사내의 격과 조건이 이미 형성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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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후,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파도가 밀어닥쳤다. 그러나 전체주의의 파도에도 휩싸인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이 사상 또한 조금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저 인류가 지금까지 생각해낸 여러 사상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파시스트였다가 뒤에 공산주의자가 된 이탈리아의 어느 작가가 쓴 자전적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을 읽은 나의 감상은 절대주의 사고를 주입받은 자는 그러한 사고에서 자유로워져도 자유를 누릴 수가 없어, 결국 다른 절대적인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마르크스가 살았다"고 새각했던 사람뿐이다. 나처럼 마르크스가 선량한 사람들의 꿈에서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죽었다'는 말 뒤에  '살았다'고 말할 때와도 같은 감상적인 것이 느껴져, 이 사람들은 어차피 변하지 않았구나 하고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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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가 공개적으로 할복자살했을 때, 나는 어느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할복자살이 아니라 단순한 공개 자살일 뿐입니다. 할복자살은 자기 집 깊숙한 방에서 다다미라도 뒤집어놓고 천황 폐하에게 러브 레터라도 쓴 다음. 조용히 자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나를 맹렬히 비난한 사람들은 그런식으로 자살을 시도한 작가와 같은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이거나, 나보다 훨씬 아래 세대 사람들이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내가 볼 때 공적(公的)인 사람이다. 공적인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느낀 거부감을 정직하게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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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에 태어났습니다. 그 해 중일 전쟁이 일어났으며, 태평양 전쟁이 끝난 해에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그녀가 청년의 나이일때 일본의 대학가는 전공투의 계절이엇고요. 패전 후에도 딸에게 피아노레슨을 시켰던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본 장면들은 이념의 후진 잔영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데올로기의 함몰된 남자는 멋대가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삶은 개인의 철학으로 이루어지는 것, 단독자가 내뿜을 수 있는 멋을 그녀는 잡아꺼내 보여줍니다. 그녀가 보기에 그의 최후는 그의 화제성과 드라마틱한 인생에 비하면 오히려 품격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공개 할복으로 이목을 끌고 계속해서 역사에 회자되겠지만, 결국 그는 그가 주구장창 말했던 가치관과는 누렸던 위치와는 주파수가 좀 다른 방법을 택했죠. 동의합니다.

그녀는 역사를 바라볼땐 일본인 같지만, 개인, 특히 남자를 바라볼 땐 유럽인 아니 이탈리아인처럼 바라봅니다. 그래서 에세이와 소설로썬 재기발랄하며 멋있고, 역사로 바라볼땐 맹랑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봐줄만합니다. 그녀가 적은 이야기중 눈길을 끄는 것중 하나는 바로 공공성에 대한 높은 가치입니다.

카를로 젠이라는 사내가 있습니다. 그는 25년전 베네치아 해군의 사령관으로써 제노바와의 전투에서 승리했고, 신나게 이긴 후에 총사령관 직책과 참모장까지 역임하였고 영국과 프랑스의 대사까지 맡았습니다. 베네치아 권력의 원 탑인 원수자리 만을 남겨놓은 그는 일전에 점령지의 영주로부터 400두카토 (저택 한채를 살 수 있는 돈정도 됩니다)를 받았다는 죄로 체포됩니다. 그의 변호인은 구국의 영웅이자 조국의 실력자이며, 여태껏 군대통솔자와 외교담당자로서 조국에 공헌한 그의 업적과 함께, 이 같은 인재를 단순한 스캔들로 매장시켜 버릴 경우에 따라서 올 공화국의 미래의 손실을 이야기 하며 변호합니다.

그러나 판결을 담당했던 한 위원의 답이 걸작입니다. "위원 여러분, 젠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를 재판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재란 이제 태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하는 나라에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반대로 그와 같은 걱정을 잊고 단호히 판결을 내리는 나라라면 언제고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카를로 젠은 2년 실형에 영구적으로 공직을 박탈당합니다. 그는 출옥후 그럭저럭 잘 살았으며, 10년 뒤 공국은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뤄주었습니다. 시체위에 덮이는 관뚜껑 재질과 비단색깔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도 볼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그는 명예로운 시민으로써 죽었고, 공동체는 그걸 알아준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네치아 공화국은 그 뒤로도 국가공동체의 황금기를 백여년 누리게 됩니다.

공화국은 결국 젠을 누락시킴으로써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단, 공동체의 정신을 바로세움으로써 얻는 국가적 편익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았고 판단에 따라서 실행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저는 미국이 유례없는 번영을 구가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공공성의 정신과 그것을 믿는 구성원들의 신념이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결국 지금 당장의 비용을 걱정하여서 공공성에 심각한 누를 끼치는건, 대한민국 공화정에 가져올 편익을 앗아간다는 사실. 그리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이득을 얻게 되는 사람은 극소수겠지만, 시스템에 돌아갈 편익이 없어짐으로써 손해입을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 미래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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