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 보고 왔습니다

2010.10.28 12:59

oldies 조회 수:3201

 응당 회원 리뷰 게시판에 글을 올려야 할 영화입니다만, 시간이 날지 모르겠어서 이렇게라도 일단.

 

 류승완 감독 열혈팬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는 기대 만큼이나 걱정도 좀 컸던 게 사실인데 다행히 시사회 평대로 아주 잘 뽑혀 나왔습니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여기저기서 많이 보게 되는 경찰 부패 스릴러 비스무레한 영화 아닌감? 싶습니다만 별로 그렇지 않고요, 제 짧은 영화 경험 안에서는 유사한 영화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네요. '굳이' 비슷한 영화를 꼽으라면 저는 프리츠 랑의 범죄 영화, 〈L.A. 컨피덴셜〉, 혹은 〈다크 나이트〉를 꼽겠습니다. 모두 일견 장르적인 표피를 취하고 있지만 의외로 장르적 전형성보다도 그 저변에 깔린 인간 관계, "소셜 네트워크" 자체를 다루는 작품들이죠. 이 좁아 터지고 서로가 서로를 어떤 식으로든 먹고 살 수 밖에 없는 세계에서 한 놈이 무슨 짓을 하면 다른 쪽에는 어떤 영향이 미치고 그럼 또 그 놈은 어디다 그걸 해소하고… 이런 관계의 망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계속 그 망이 얽히고 얽히고 얽히고 얽혀서 죽지 않는 이상 더 이상 풀 수 없을 지점까지 이르는 게 핵심인 이야기죠. 저는 류승완 감독의 덜 언급되는 재능 중 하나가 장면과 장면을 매끈하고 밀도 높게 이어나가는 솜씨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의 차이라면 〈부당거래〉는 특히 그 관계망이 망의 구성원 개개인에게 가하는 스트레스 자체를 집요하게 파고 든다는 거. 류승완 감독이 "특정 기관 공격 의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만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 해봐야 이 영화는 정말 요즘 대한민국 경·검찰 조직 돌아가는 꼴을 대차게 내지르는 영화 맞습니다만) 정말 보고 있노라면 경·검찰 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온갖 조직 사회에서 깔려 죽는 사람들의 피곤함이 절절하게 묻어나요. 다만 〈부당거래〉는 그렇게 만들어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데에까지 가보려고 애쓰는데, 아마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으로 간주되기도 할 것이고, 또 거꾸로 보면 류승완의 작가적 서명 내지 윤리적 결단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배우들은 뭐 류승완 영화가 항상 그렇듯 다들 훌륭한데, 저는 이번 영화에서도 다시금, 류승범은 중요무형문화재 내지 국보로 지정을 해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걸출한 데뷔작과 그 외양 때문에 아직도! 류승범을 양아치 연기 정도 맛깔나게 잘 하는 캐릭터 배우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이 배우의 대사를 던지고 얼굴과 몸을 이용하는 방식을 보면 너무나도 효과적이면서도 본능적이어서 '저런 게 과연 각본 내지 연기 지도 과정에 있기나 했을까' 싶습니다. 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송강호와 맞먹거나 송강호를 넘어설 괴력을 가진 배우가 있다면 류승범이라고 봐요.

 

 저는 몇 번 더 보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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