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응원하려다 망신;;

2011.03.23 00:24

Mk-2 조회 수:4261

아까 저녁 무렵에 단골 손님 부부가 헤어스타일이나 옷 차림이나 우리나라 사람이 그런 차림이었다면 딱 양아치 소리 듣기 좋을 스타일의, 어딘가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청년 둘을 데리고 가게 들어왔습니다.
스타일이 양아치스럽긴 했지만 둘 다 잘 생겼더군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듯 하여 누구냐 물었더니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잠시 우리나라로 피난 온 일본인들이라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하면서 멀리 하고픈 마음이 들었는데, 다행히 일본 청년들은 그런 제 기색을 눈치채지는 않은 듯 했습니다만 저는 순간적으로나마 그렇게 움찔했던 게 속으로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죠 ㅎㅎ;;
아무튼 일본의 대재앙은 뉴스로만 접했을 뿐이었던지라 안타까워 할지언정 그 심각성을 크게 실감하지는 못했는데, 우리 동네같은 시골구석에서 까지 피난민(?)을 보게 되니 그 심각성이 피부에 확 와 닿는 느낌이었죠.
건장하고 잘 생긴 청년들이 타국의 시골 식당에 와 앉아서 기가 팍 죽어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고, 또 아까 움찔했던 게 미안하기도 했던 저는 뭔가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따 계산하고 나갈 때 말해줘야지...
그리고는 속으로 힘내라는 일본말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하는데 이게 당최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습니다;;
간... 이던가 감... 이던가 암튼 그렇게 시작하는데... 아 뭐지;;;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저는 간신히 간바레 구다사이!를 생각해 냈지요(근데 간바레 구다사이가 정확한 건지 아닌 건지도 모름;;)
그리하여 속으로 계속 간바레 구다사이를 되뇌이다가 마침내 그들이 일어났을 때... 카드결제를 마친 후 저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습니다.

"아노... 간..."
"...?"
"간..."
"...?"
아 씨, 왜 간바레 그 간단한 말이 안 나오는 거냐;;;;
"가, 간...;;;;;"

말을 꺼내놓고는 계속 간... 만 하고 있는 저를 일본 청년들이 의아로운 눈으로 빤히 쳐다보자 민망함이 극에 달한 저는 그만...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피곤한 간 때문이야..."
라는 노래를 읊조리며 시선을 천천히 다른데로 돌린 후 나는 니들에게 말을 걸고자 한게 아니라 원래 이 CM송이 생각나서 부르려고 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이 때 니들이 계산하러 내 앞에 선 거야! 라는 듯 주방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보이려 노력할수록 부자연스럽게;;) 주방으로 도망가는 자폭을;;;;;;;
악 쪽팔려!!!;;;;;;
암튼 그렇게 일본 청년들을 보내놓고는 상을 빼려 하는데 마침 그들이 실수로 놓고 간 소지품이 눈에 띄더군요.
그걸 들고 부리나케 밖으로 튀어나간 저는 그들을 불러 세운 후 전해주면서 간신히, 아주 간신히

"간바레 구다사이!"

했다죠;;
그러자 그쪽에서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하더군요.
그제서야 민망함이 가시면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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