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근무 1년

2021.03.19 00:51

Kaffesaurus 조회 수:761

코로나 때문에 이유가 없는 이상 자가 근무 하라고 한지 1년이 넘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출근 자채가 금지된건 아니에요. 지난 여름 지나고 가을 학기 초에는 반반씩 나눠서 출근도 했습니다. 저는 이유가 있어서 주 2일 정도는 출근하지만 대부분의 동료들은 일주일에 한번도 출근하지 않는 자가 근무 모드 입니다. 다들 너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학은 자가 근무할 수 있는, 하기 쉬운 쪽에 속하는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자가 근무 기간이 늘어날 수록 함께 일할때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던가가 느껴집니다. 


제가 처음으로 자가 근무하면서 부족하다고 느낀건 (아무래도 일이 일이다보니) 동료들과 함께 일구어 가는 지적 생활이었습니다. 꼭 세미나 같이 따로 시간을 정한 미팅이야 줌으로도 계속 되었지만 점심시간, 피카시간 (커피타임) 때 자연스럽게 대화속에 있던 지식을 생산에 도움이 되는 것들. 한 문장을 가지고 열심히 씨름하다가 그것과 상관없는 대화에서 그 문장이 풀리는 것을 느낄 때의 그 기쁨. 혼자 일하다 보니 아 내가 똑똑한게 아니라, 내가 이들과 있어서 똑똑하구나 란걸 깨닫게 되더군요. 


함께 기억하는 것들. 사람들이 저보고 체계적으로 일한다, 뭐 하나 잊어버리지 않는 다 하는 데 원걸, 자가 근무하다보니 다행히 데드라인을 지나치지는 않았어도 뭔가 자꾸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거에요.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함께 일하면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아 맞아 나도 이거 보내야지, 아 이일 데드라인이 다음주지 이런 걸 상기하는 데 이런 보이지 않는 알람시계가 생활에서 다 사라져 버린거죠. 


그리고 생활안에 있던 피드백들. 논문이나 연구 뿐 아니라 학생들과 관련해서 꼭 동료 누구와 상의를 하는 게 아니라해도 그냥 대화 속에서, 아 이렇게 말한게 맞다, 특히 힘든 케이스 같은 경우 이런 걸 기반으로 이렇게 결정했다 할때 동료들이 동의 하면 결정은 제것이지만 또한 함께 한 것이 되는 거죠. 제 등뒤에 늘 동료들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이 사라진 기분. 


오늘 아침 줌 피가시간에 소피아와 카로 뿐이었습니다. 소피아는 올해로 부서장을 카로한테 넘겼어요. 소피아가 지난 해 내내 있던 줌 미팅들이 없어지고 나자 요즘에 정말 느낀건 아 만나는 사람이 없구나 라고.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은 다 짜증내는 사람들 뿐이다 (즉 10대의 반항을 시작하는 쌍동이 딸들과 스트레스에 엄청 시달리는 남편). 우리는 크게 웃으면서 정말 정말 나도 그래. 제가 웃다가 "생각해보니까 동료들과의 만남도 그러네, 나만해도 문제가 있어서 전화하지 뭐 좋은 일이 있다고는 전화 안하거든. 문제가 좀 심각해야 이정도 문제이니 당신을 좀 방해할만한 이유가 있는 거죠 란 식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다들 일할때는 작은 좋은 소식들, 뭐 힘들어 했던 학생이 패스했다거나, 논문을 보냈다거나 아니면 애들이 예쁜 말을 했다거나 그런 것도 다 함께 나누는데, 없네."


우리는 빨리 우리기 미치기전에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라고 말하며 줌을 끊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지난 가을학기 초반만큼만 되어도 일하는 게 즐거워 질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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