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전직 살인병기물'이죠. 장르안에서 관계를 뒤집어 두었어요. 일반적인 공식은 맘잡고 착하게 살던 전직 살인병기를 악당들이 잘못 건드리고, 전직 살인병기는 어쩔 수 없는 운명과 업보의 수레바퀴에 절망하며 처절한 복수를 떠나는 거죠. 노바디는 평범을 동경하던 살인병기가 일반인으로 살다 욕구불만이 쌓인 나머지 본성을 억누르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르는데, 그게 하필이면 러시아 마피아 두목의 동생이어서 러시아 마피아가 살인병기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내용이에요. 말할 것도 없이 마피아들이 살인병기에게 속절없이 살인을 당하고, 이 와중 아드레날린에 절여진 살인병기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는 내용이에요.


  은퇴한 운동선수가 치킨을 튀기며 왕년을 그리워하다 조기축구를 주름 잡는 내용으로 바꿔도 비슷한 전개가 될 것 같네요. 왕년의 일진 아저씨가 담배피는 고등학생을 훈계할 때도 비슷한 심정이겠죠. 


  피치 못할 사정이나 슬픈 과거 따윈 없어요. 주인공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거나 죽을 고비를 넘길 때의 아드레날린 분출의 쾌감이 각인되어 버린 사이코패스에요. 작중에 나오는 주인공의 과거 회상에 비추어 보건데 이 아저씨의 전직은 파괴적인 본능을 합법적으로 해소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러시아 마피아들은 그런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재물이자 도구에 불과하고요. 영화에서 나오는 마피아들의 행적이야 죽어 마땅하긴 한데 그렇다고 재미로 죽임을 당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죠. 그러다보니 주인공 아저씨의 화끈한 액션에 즐거워 하면서도 씁쓸하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황홀감에 영혼을 사로잡혀 평생을 그리워하며 바람빠진 풍선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일행을 보면서는 뭔가 생각하게 되는 게 있더라구요. 그렇게 한탕 일을 벌이고 떠나는 그들은 자신의 생을 빛나게 하기 위해 또다른 현장을 찾아야 할까요. 아니면 순간의 황홀경에 도취되어 삶의 균형을 망가뜨리기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까요. 그게 하필 살인이어서 더 애매함이 부각되는 것 같네요.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고민하진 않았을 거 같긴한데 철학적인 멋을 잔뜩 부린 영화 '소울'은 그런 황홀에 도취된 사람들을 비꼬는 내용이었잖아요. 마음챙김이나 행복, 삶의 의미 같은 걸 강조하는 철학적 삶의 방법론들이 말하는 것들이기도 하구요. 그런점에서 지루한 일상을 마침내 벗어나는 주인공 일행의 상기된 표정이 조금은 허무해 보이기도 하더라구요. 


  로맨틱한 연애에 중독된 사람이나 어느 하나의 취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그런 걸 거에요. 그러는 동안 현실에서는 멀어지겠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현실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긴 한가 싶기도 해요. 한편으로 나는 어쩌면 순간을 맞기 위해 일상을 견디는구나. 그래서 그렇게 요즘 재미가 없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되구요. 소중한 일상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순간들이 어느 정도 있어 줘야 살만하긴 하겠죠.


  개인적인 쓸데없는 감상과는 별개로 영화는 깔끔하게 잘만들어진 편입니다. 본능이냐 일상이냐보다는 매일매일이 반복이고 가족에게는 찬밥신세인 중년남자 판타지고요. 이런 걸 꼭 중년남자 판타지라고만은 할 수 없긴 한 거 같은데 헤리포터나 신데렐라 같은 것도 어떻게 보면 이 '알고 보니 내가 특별한 사람' 이야기 범주니까요. 맨 처음부터 빠른 편집으로 지루할 틈 없이 지나가고 액션은 덕후들을 만족시킬만한 수준으로 사실적이에요. 주인공이 옛날 감을 되찾는 부분의 디테일도 짧지만 설득력이 있는 센스있는 묘사였습니다. 이 장르를 새롭게 만든 점은 작가의 장인정신이라고 할만 한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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