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양이가 집에 처음 오던 날이 생각납니다.


무려 6년 전이었는데, 그때까지 고양이라고는 키티하고 디즈니에 목에 핑크색 리본 단 마리캣? 밖엔 몰랐어요.

동물은 -아, 예쁘다! 하고 쳐다보면 그만이던 저에게 온 첫번째 애완?동물이었어요.


남자친구랑 대판 싸우고 헤어지자고 난리를 떨면서 집에 돌아가던 야밤이었는데, 

억울해서 집에도 못가고 그 동네 정자에 앉아서 씩씩 거리면서 울고 있었거든요. 근데 밑에서 가느다랗게 우는 소리가 

들리는거에요.  아래를 봤더니 동그란 눈에 장화신은 고양이를 닮은 고양이가 겁먹은 얼굴로 울고 있었어요.

행색이 길고양이 같진 않고, 뭘 모르지만 외래종 처럼 생겼는데 집을 잃었나? 했죠. 

지금은 고양이를 아니까 손을 그렇게 덥썩 내밀진 않았을텐데, 그땐 뭣도 모르니까 손을 뻗어서 잡아 당겼어요. 근데 얘가 끌려오더라고요. 질질.


하얀색 털이 긴 고양이였고 눈은 연두색. 아기는 아니고 다 컸어요. 안아도 별 저항없이 구슬피 울기만하는데, 몸은 굉장히 보드랍고 따뜻했어요.

얘가 자꾸 우니까 나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막 혼자말을 했어요.

-아가 집을 잃어버렸어? 왜 울어? 배가 고파?


어쨌든 너무 늦은 밤이라서, 어디다가 맡길데도 없고 해서 집에를 데려왔는데 지금에서 생각하면 참 웃긴게 이동장도 없이 그냥 어깨에 얹고 데려왔거든요.

근데 발톱을 어깨게 꼭 박고 안떨어지더라고요. 아팠는데, 그래도 따뜻한 게 좋아서 참고 있었어요.

집에와서 밝은데서 보니까 배랑 꼬리랑 다리 뒷부분이 숯검댕? 같은 게 많이 묻어있었어요. 먼지에 굴렀나보다했는데, 나중에야 그게 곰팡이 피부병이란 걸 알았어요. 

뭘 줘도 잘 안먹고 울기만 하길래 다음날 병원에 데려가니까, 할아버지 의사말이 이렇게 신부전이 심한 고양이는 처음본다고 하더군요. 검댕이도 합병증으로 생긴 피부병이라고 해서 

안고온 나도 약먹고. 

의사 샘은 주인이 치료하기 싫어서 내버린걸거라고, 그리고 상태가 너무 심각하니 미안한 말이지만 아가씨가 키울거 아니면 포기하라고 하셨어요. 

실은 나도 통장 잔고가 바닥이었는데그 순간 살고 싶어서 내 어깨에 발톱을 꾹 박던 아픈 느낌이 쑥 올라오더라고요. 

그 따뜻하고 부드럽던 몸이 차갑게 굳는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어서 그냥 제가 키우겠다고 했어요. 수술비랑 입원비랑 이것저것 2백만 원 나왔고 그 덕분에 알바를 해야했지만.


여튼. 그렇게 얼렁뚱땅 고양이랑 살게 되었어요. 아픈 애 수발 드느라  정신이 없어서 남친이랑 헤어지는 충격은 좀 덜했어요.

다행스럽게도 고양이는 수술 후 건강해졌고, 아파서인지 원래 이 종류의 특색이 그런건지 순하고 말썽 한번 피운 적이 없어요. 처음 만났을때는 많이 아팠을 때니 할 수 없이 얼굴에 좀 무섭고 숭악한 느낌도 있었는데,

치료 다해주고 몸이 좋아지니까 그냥 천사더라고요. 어쩜 이래 예쁘게 생겼나 싶어 하루종일  넋놓고 쳐다보게 만들만큼. 아니 뭐 제 고양이는 다 이쁜 법이겠으나

우리 애는 확실히 미묘였어요. 집 식구들 모두가 깔끔 떠는 대마왕들이라 동물하면 치를 떠는데, 그럼에도 얘는 보겠다고 다들 우리집 방문을 예약할 정도였으니...

한 번 안아보겠다고 애를 닳는데 얘도 고양인지라 오래는 못 안으니 다들 개 얼르듯 일루와 일루와 하고있고 (그런다고 안오죠...)

얘가 베란다에 나가면 지 놀다가  들어오겠다고 옹알거리거든요. 그 우는 소리가 귀엽다고 그거 듣겠다고 일부러 베란다에 내놓고-_- 

핸드폰 화면도 모두 얘로 바꿔놓고, 틈만 나면 사진찍어 보내라 야단 법석이었죠.


그렇게 고양이와 나는  6년을 함께 보냈어요. 처음 왔을때 몇살인지 몰랐는데 의사샘말로 고양이가 신장이 이렇게 심하게 망가지는 건 서너살은 더먹었단 얘기랬으니,

이제 확실히 10년 넘은 늙은 고양이가 된거겠죠. 지금도 여전히 예뻐죽겠지만, 확실히 예전 사진을 보면 눈이 또랑또랑 한 게 총기가 있고 뭔가

맑은 느낌이 나요. 리즈시절이랄까. 

우리 애는 참 동안이야 늙은 티가 안나. 이러고 마구 자랑하고 다녔는데, 동물도 늙기는 늙더라고요. 

하기사 나도 아가씨의 나이를 넘어 아줌마가 되어가는데, 우리는 같이 늙어버렸구나. 

직업도 없고 미래도 없고 연애도 맘대로 안되던 최악의 시절의 나와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니가 만나서 이래 세월을 견뎠구나.


얘가 가면 더 이상의 동물은 못 키울 것 같아요. 인생에 우연히 왔다 간 동물 딱 한 마리가 있었는데, 걔가 얘인거죠.

지금도 고양이에 대해서 잘 모르고, 막 굉장히 성의있게 키우는 건 아니에요. 좋다는 걸 특별히 챙기거나 하지도 않고 그냥 병원에서 하라는 것 정도만 

하는 정도죠. 그저 내 옆에 자리를 내주고, 먹이를 주고, 여행을 가면 얘 선물도 하나 사와야 될 것 같고, 뭐 그런 느낌...  

느릿느릿 그루밍을 하는 녀석은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요청이 있으셔서 팔불출 고양이 주인은 이렇게 사진을 올립니다 ㅠ 좀 지나면 펑할게요. 죄송합니다!

     


*다들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혹시나 싶어서 지웠으니 양해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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