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찌질한 글인데요. 일단 글을 시작하기 전에 제가 말하고자 하는 소재의 성격을 명확하게 구분하자면, 전 '엄청나게 불행한 삶을 사는 천재' 이야기가 효과적인 드라마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재로 만든 좋은 영화는 관객의 영감을 자극하고 정신을 번쩍 깨우죠.

제가 맘에 안드는건 '한평 남짓되는 허름한 방에서 꿈을 키우고 사랑에 빠지다가 결국엔 명문대에 입학하는'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 클리셰지요.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본 영화에 이런 인물이 나오면 정말 감정이입하기 힘들어집니다. 

인물의 인생이 뭔가 너무 짜맞춰진 것 같아요. 근데 실제로 제 주변에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이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물리학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였는데, 집 형편이 썩 좋지 않았고 어쩌다 일이 풀려 후원자분을 만났죠. 그러니 이런 가난한 영재들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인물을 영화로 담는게 그렇게 쉽지 않아요. 사람 잘 만나자마자 일이 술술 잘풀리는 얄미운 신데렐라 동화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겁니다. 영화는 고작해야 2시간 남짓이잖아요.


대리만족의 환상이 깃든 해피앤딩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가 해결될 때 가능합니다. 하지만 제가 주인공이 사는 세상에 살지 않고, 주인공이 가진만큼의 재능이 없는 이상, 1시간여만에 장래가 활짝 필 정도로 대단한 재능과 환경을 가진 주인공을 위해 기뻐해주기는 힘듭니다. 전 저만의 (재능이라 부르기 차마 뭐한)장기와 환경이 있고 이것들이 연루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은 충분히 피곤하며, 영화처럼 우연한 변수로 기적이 생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제가 영화속 잘난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정말 힘이 빠져요. 게다가 가난이 어쩌구하는 투정을 듣고있으면 '나는 너보다 잘났지만 너보다 가난해. 이건 불공평해'라는 투정으로 들려요. 그러다가 결국 나보다 잘 풀릴거면서. 후반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전에 미리 기가 죽어버리는거죠.


이건 제가 그냥 배배 꼬인 사람이라 그런걸까요?  

아, 참고로 제가 방금 보고 온 영화는 2007년작 셀터(Shelter)입니다. 청소년 퀴어영화요. 장르를 고려해서 관대하게 봐줬어야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라 순간 욱하더군요. 부잣집 남친만 안나왔어도.... (그리고 이건 스포일러가 아닙니다. 결말의 다른 이야기가 더 비중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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