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9 23:52
- 원제는 The Warriors 니까 '워리어스' 라고 적어야할 것 같지만 넷플릭스 등록된 제목이 저래요. 1979년작이고 스포일러 없이 적겠습니다.
(실제 영화 속 인물들과 별로 안 닮게 그린 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나름 재밌는 포스터)
- 연도나 배경 같은 건 안 나옵니다. 79년 영화이니 그 즈음이겠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풍경은 뭔가 의도적으로 시대를 모호하게 만들어 놓은 느낌. 암튼 확실한 건 배경이 뉴욕이라는 거.
뉴욕 전역의 갱단들이 제일 짱 잘 나가는 갱단 두목의 제안으로 휴전 협정 하에 한 자리에 모입니다. 두목 한 명씩만 와도 될 것 같은데 구태여 갱단별로 9명씩이나 부르다 보니 운동장 같은 데서 부흥 성회 내지는 락페스티벌 분위기로 진행을 하네요. 주차난을 감안해서 대중 교통을 이용해달라는 주최측의 공지가 있었는지 우리의 '워리어스'갱은 전철을 타고 이동합니다.
도착해서 주최측의 연설을 들어보니 뭐 대략 '우리 다 합하면 6만명 이상! 뉴욕 경찰은 다 해봐야 2만명!!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걍 경찰과 전쟁을 벌이고 경찰한테서 삥 뜯자!!!' 라는 초현실적 제안인데, 다들 그게 참 맘에 들었는지 우뢰 같은 환호를 하는 가운데... 맨 앞줄 앉아 있던 갱단원들이 몰래 숨겨온 권총으로 연설 중인 거물을 쏴 죽여 버리네요.
근데 너무 장소가 시끄러워서 총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고. 총을 쏜 놈들은 적반하장으로 눈에 띄는 다른 갱단을 지목하며 '쟤들이 죽였다!!!'라고 누명을 씌운 후 사라지는데 그렇게 억울해진 사람들이 바로 워리어스. 바로 그 순간 원래 리더는 군중들에게 두들겨 맞아 사라졌고, 남은 여덟명은 참으로 눈에 잘 띄는 유니폼을 입은 채로 자신을 쫓는 갱단들과 경찰들을 모두 피해 브롱크스에서 코니 아일랜드까지 돌아가야 합니다... 전 뉴욕 지리는 전혀 모르지만 당시 기준 기차 타고 한 시간이래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얘들이 기차를 타도록 사람들이 가만 두지를 않거든요.
-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파이널 파이트'의 사실상 원작 같은 존재로 대략 그 이름은 알고 있는 영화입니다. 정말 그 게임 캐릭터들 중에 이 영화 속 갱단 차림새들의 리파인 버전이 아닌 캐릭터를 찾기 힘들 정도구요. 또 게임 속에서 주인공들이 싸움을 벌이는 장소들이나 그 장소들의 생김새 역시 영화에 나온 것들의 변형 내지는 그대로 인용이에요. 영화 개봉과 게임의 발매 연도를 따져보면 10년의 차이가 있으니 유행을 따라한 건 아니고 그냥 게임 제작자가 이 영화를 엄청 좋아했던 거겠죠. 또 그만큼 이 영화가 '미국 불량배 액션'을 그리는 작품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겠구요.
- 그러니까 애초에 '대부' 같은 영화가 될 생각은 전혀 없는 작품입니다. 미국 갱단의 생태나 역사, 사회적 관점에서의 의미 등등 그딴 거 전혀 없구요, 그냥 뉴욕 코스플레이어 갱들 나오는 액션&모험 영화에요. 도입부 스토리를 길게 적어 놨는데 사실상 설명할만한 스토리는 저게 전부이고 이후로는 그냥 싸우고 도망치고 이동해서 다른 장소에서 또 싸우고 도망치고 이동해서 또 싸우고 이동해서... 의 반복입니다. 그 사이에 주인공 캐릭터들의 소소한 드라마가 들어가긴 하지만 그냥 이야기 지루해지지 말라는 양념 정도에 그치구요. 머리를 비우고 가볍게 보기 좋은 액션 영화. 그 정도 되겠습니다.
근데 그렇게 킬링 타임용 액션 영화... 로서는 꽤 잘 만들었어요. 1979년이라는 제작 연도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구요.
일단 위에서 말했던 게임 느낌나는 스테이지식 구성이 꽤 다채롭게 잘 되어 있구요. 주인공들의 쌈박질 장면도 (총질 안 나옵니다. 그냥 다 육박전) 막 신선하고 강렬할 정도는 아니어도 정말 딱 적절하게 보기 즐겁게 연출이 되어 있구요. (2021년 기준이니 당시 관객들에겐 매우 흥분되는 액션이었을지도) 또한 생각 외로 꽤 괜찮은 미술과 장면 연출들을 보여줘서 볼거리 측면에서도 준수합니다. 이야기 기승전결도 딱딱 깔끔하고, 런닝 타임이 90여분 밖에 안 되니 딱히 지루해질 틈도 없구요.
- 덧붙여서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 하나를 꼽자면... 아닌 척 하면서 은근히 현실성 따윈 저 멀리 치워버리고 재미와 비주얼에 집착하는 태도입니다.
아니 상식적으로 갱단들이 모두 유니폼을 맞춰 입고 드레스 코드 엄격하게 유지하면서 활동할 리가 없잖아요. 뭐 그런 갱단이 있다고 쳐도 이 영화 속 갱들처럼 무슨 코스프레 팀들처럼 하고 다니진 않겠죠.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이 놈들아 니네 갱단이잖아?? 집이라도 하나 털어서 옷만 갈아입으면 아무도 너희가 누군지 몰라... ㅋㅋㅋㅋ 근데 나름 핑계는 있어요. 이 양반들에게 자기들 의상은 아주 중요한 '가오' 거든요. 멍청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애초에 얘들이 머리를 잘 굴리는 애들로 설정되어 있지를 않으니 큰 문제는 아닙니다.
(이게 어디가 갱... ㅋㅋㅋㅋㅋㅋㅋ)
그 외에도 뭐... 갱단들의 워리어스 추격 상황을 중계하는 라디오 방송이 등장하질 않나,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뉴욕을 시민 하나 없는 유령 도시처럼 그리질 않나. 야구 배트를 들고 무슨 소림사 봉술 같은 짓을 하는 갱단도 나오구요. 꾸질꾸질 현실적으로 생긴 주인공놈들이 액션씬들에선 갑자기 전투력이 폭발해서 만화 같은 맨손 파괴 액션이 연출되구요. 또 그러던 애들이 정말 중요한 순간에 자꾸 바보 같은 선택을 하게 해서 코믹한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정직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이고 그 재미가 꽤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진지한 뭔가는 기대하지 마세요. 그런 거 전혀... ㅋㅋㅋㅋ
- 단점을 꼽아보자면 뭐가 있을까요.
뭐 일단 가장 큰 건 주인공들의 정체성이겠죠. 얘들을 주인공 삼다 보니 자연스럽게 굉장히 순화되어 그려지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갱단이고 불량배들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장면들만으론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낄만한 선을 넘지 않도록 많이 신경쓰고 있지만 평소엔 성추행에 죄 없는 시민들 폭행하고 삥 뜯고 다닐 놈들이라는 거. 보는 분에 따라선 그런 게 좀 불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엔 살짝 변명 비슷한 걸 넣어주긴 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딱 한 명 나오는 여성 캐릭터의 기능 때문에 싫은 분들도 있을 거에요. 말 그대로 완벽하게 '기능'적 캐릭터거든요. 뭐 그래도 그렇게 험한 꼴 당하게 하거나 한심하고 구리게 표현하진 않습니다만. 솔직히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를 생각하면 뭐 이 정도면 크게 나쁜 편은 아니지 않나... 싶었습니다.
(주인공들 인성... ㄷㄷㄷ)
- 종합하자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스토리상, 시대상의 한계를 제외하고 본다면 가볍게 즐기기 좋은 잘 만든 액션 영화였습니다.
액션이 막 홍콩 영화급으로 화려한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연출은 잘 되어 있고, 또 은근히 잘 짜여진 이야기 흐름 덕에 '이 정도면!'이라는 마음으로 볼 수 있었어요.
또한 굉장히 희한한 볼거리이기도 합니다. 계속 말하지만 스테이지별로 교체 등장하는 갱단들 스타일링들만 보고 있어도 참 웃기고 즐거워요. ㅋㅋㅋ
그래서 결론적으로 잘 봤습니다. 갑자기 월터 힐의 옛날 액션 영화들이 다시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일단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 근데 사실 전 그 유일한 여성 캐릭터가 맘에 들었습니다 왜냐면...
예쁘니까요. (쿨럭;)
올리비아 쿡 엄마쯤 되시는 게 아닌가 의심했지만 아무 혈연 관계 없는 분이더군요. 이젠 칠순 할머니가 되셨지만 imdb를 보면 지금까지도 비중 작은 역할로 여기저기 열심히 출연하며 잘 살고 계십니다.
++ 아까 위에서 불편한 사진을 하나 올려 놓은 관계로 중화를 시도합니다.
위 사진과 이어서 보면 좀 웃겨요. ㅋㅋㅋ 연기는 연기일 뿐 혼동하지 맙시다! 라는 의도로 찍은 것 같잖아요.
+++ 아직까지도 이 영화 인기가 소리소문 없이 상당한가 보더라구요.
그러니까 이런 제품들이 요즘까지 나오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 제작진에 조엘 실버, 프랭크 마샬 이름도 보이고 그래요. 좀 흘러간 이름들이지만 어쨌든 반가웠구요.
월터 힐이 감독으로 한 물 간 후로 활동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후로도 감독으로나 제작자로나 꾸준히 활동해왔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네요.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 코버넌트 모두 이 분 제작이었고 감독 작품도 2016작이 마지막이더라구요.
+++++ '데스 위시'에서 중요한 장면이 연출되는 계단이 이 영화에도 나온 듯 한데 자신은 없습니다. 제가 뭐 뉴욕을 알아아죠. ㅋㅋㅋ
2021.03.09 23:58
2021.03.10 10:55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는 추억의 80년대 영화로 그래도 언급이 자주 되는 편인데 그 전신이자 오리지널인 이 '워리어'는 상대적으로 언급이 잘 안 되더라구요. 전 어렸을 때부터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는 알고 자랐는데 '워리어'는 인터넷 세상 열린 후에나 처음 들어봤습니다. ㅋㅋ
2021.03.10 12:42
2021.03.10 16:57
프로메테우스, 커버넌트에 이름 올린 건 에일리언 1편의 제작자라 그래요. 에일리언 시리즈엔 다 올라가있죠.
1편의 경우, 원래 월터 힐이 제작 초기부터 참여했고 감독까지 하려 했는데, 사정 상 물러나고 리들리 스콧에게 감독 오퍼가 들어갔죠.
에일리언의 주인공 리플리를 여성 캐릭터로 바꾼 것도 월터 힐이었고요.
2021.03.10 21:05
2021.03.10 21:38
시고니 위버와 근래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많은 건 최근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했기 때문일 거예요.
저도 본문글 보고 궁금해서 월터 힐 최근작이 뭔가 검색했는데, 2016년 작 주연이 시고니 위버 + 미셸 로드리게즈더군요.
2021.03.11 11:53
네 저도 그 영화 정보 보고 한 번 찾아볼까... 했는데. 사실은 미셸 로드리게즈 원탑 영화이고 시고니 위버는 출연진 순서 한참 뒤에 나오는 조연이더라구요. 게다가 평도 매우매우.... ㅋㅋㅋㅋ 그래도 아직 볼 마음은 있습니다!
2021.03.11 12:17
2021.03.10 19:01
저 한쪽 눈 아이라인한거는 무슨 개 따라한것 같은데 개품종이 생각안나네요
2021.03.10 21:06
2021.03.10 23:37
월터 힐 감독님 영화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오래전에 불법(?) 비디오로 봤었고, 재작년인가 다시 한 번 봤지요^^
근데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 있군요!! 류승완 감독의 '짝패'를 피카디리(맞는지 가물가물)에서 봤는데, 다운타운 패거리들 싸움 씬에서
저 '베이스볼 퓨리스' 차용한 야구부원들 나올 때, 무릎을 탁 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아 역시 류감독님, B급 영화 매니아였구나' 하면서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3.11 11:55
지금 시점 기준으론 사실상 워리어스는 뒷전이고 베이스볼 퓨리스가 승리자더라구요. 인기도 제일 많고 관련 제품도 제일 많이 나오고 후대에 미친 영향도 제일 크구요. ㅋㅋ 짝패를 보긴 했는데 워낙 옛날,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봐서 저는 볼 당시엔 아무 생각이 없었지요. 역시 사람은 뭘 많이 보고 알고 봐야... ㅠㅜ
재밌게 보셨다는 분을 보니 제가 반갑고 좋습니다. 댓글 감사해요!
2021.03.11 18:48
2021.03.12 00:37
제가 감사합니다 ^^ 사진 멋지네요~
2021.03.12 02:48
아 이 장면이군요. ㅋㅋㅋㅋㅋ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근데 진짜 대놓고 오마주해서 좀 웃음이.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갑자기 이 영화도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