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런 2년차 교사입니다.

소속된 업소(?)는 경기도의 모 중학교구요. 이곳 성적은 중하위권? 정도 됩니다.

 

이 주제에 대한 제 머릿속을 정리할 겸 그냥 두서없이 적어볼랍니다. 

좀 지루하실 겁니다..

 

 

0.

교사되기 전에는 꽤나 진보적입네 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했구요. 교사되기 위한 교양(?)교재로 '월간 우리교육'을 즐겨 읽었습니다. 그 책에는 정말 '죽은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 같은 분들이 즐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 철학? 당근 체벌 반대, 복장규제 반대였습니다.

 

3월에 부임을 하니, 3학년 생활지도 담당으로 배치를 하더군요. 젊은 남자니까 그냥 당연히(?) 그 쪽으로 배정을 한 것이겠죠.

한 3-4일째였던가?  모 선배교사가 제게 매를 들라고 하시더군요. 선생님도 나름의 교육철학이 있겠지만, 그래도 매는 들어야한다면서요. 또 다른 선배 선생님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첫 한달간 애들을 잡아야 한다구요. 그래야 1년이 편하다....  애들 앞에서 웃지도 말라더군요.

 

개학 후부터 제가 맡은 반의 아이들이 지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35명중 15-20명이 등교시간을 어겼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열심히 말로 했죠. 지각하지 마라.. 지각하지 말자..

변함이 없었습니다. 부임후 일주일째였나요? 매를 들었습니다. 엎드려 뻗쳐시키고 매를 들었습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습니다. 20명에 아까운 지각생들이 5-6명으로 줄더군요.

 

제 기분은 어땠을까요? 더러웠습니다.

 

 

1.

교사로서 제가 지금까지 본 학교 현장은  '교육'의 장이 아녔습니다. 그보다는 '관리'의 장에 가까웠습니다.(물론 저도 그 관리시스템중 일부구요)

교사들의 대부분 아이들 관계 업무는 출결,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산만하게 하면 벌주기, 복장단속, 각종 학교행사관련 전달, 각종 평가 등입니다.

아이들 한명 한명의 내면적 성장엔 큰 관심없습니다. 물론 그런 것에 헌신하는 선생님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 교직의 인센티브제도에서 이런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분들은 그냥 고군분투하시는거죠.

 

아이들은 그냥 컨베이어 벨트위를 흘러가는 물건처럼 조용히 정해진 과정들을 받아내고 얌전히 나가면 장땡인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체벌'은 필연적이 됩니다.

'교육적 체벌'이란 말은 모순입니다. 체벌 반대하시는 분들의 말씀이 맞습니다.  체벌로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긴 힘들죠.

그러나 내면의 변화가 아닌, 당장 가시적인 외적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에는 체벌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피상적인 변화만을 일으킬 걸 왜 하는가? 학교시스템이 그걸 요구하는데요.

 

 

세분화시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

아니, 그전에 잠깐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이 게시판에서도 그렇고 체벌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면, 대개 많은 분들이 각종 말도 안되는 감정적 폭력의 기억을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밝히건대, 그건 체'벌'이 아닙니다.  그냥 '구타'죠.

얼마전에 무슨 장풍교사였나요?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때리는 걸 지지하는 교사는 적어도 요즘 학교현장에는 거의 없단 걸 말씀드립니다. 대부분의 상식적인 교사들은 그런 짓을 절대 옹호하지 않습니다.

 

체벌찬반 논쟁에서 체벌 반대론은 그런 구타까지 체벌의 범주에 넣고(혹은 그걸 주로 염두하고), 찬성론자들은 그걸 배제한체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죠.

만약 감정없이 손바닥 2-3대 정도 때리는 것을 체벌의 구체적 예로 한정짓는다면 논의가 사뭇 달라졌을 거라 믿습니다.

 

물론 지금의 체벌 반대 논의는 그런 '구타'와도 관련이 분명 있습니다.

비감정적이고 비교적 약소한 체벌도 금지된다면, 그런 감정적 구타는 확실히 근절되겠죠.

 

그리고 또하나, 전교조 등의 단체에서 그런 교사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때 공식적인 사과논평 같은 게 지금까지 왜 없었는지도 답답합니다. 같은 교사로서 죄송하다란 말이라도 했으면 인식이 좀 달라졌을텐데요.

 

 

암튼

 

 

3.

체벌이 없어지려면 일단 무의미한 자잘한 규제부터 없어져야 합니다.

저희 학교에서 학생들은 중앙현관을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날씨가 영하건 말건 실내에서는 잠바를 입지 말아야 합니다. 교복바지는 줄여입으면 안됩니다. 치마는 무릎까지 와야 되구요.. 등등.

아무런 교육적 정당성없는 자잘한 규제들을 제대로 관철시키려면 상담과 설득으로는 안됩니다. 일단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잖아요.-_-

그러면 둘중 하나입니다. 걍 때려서 지키게 하거나, 포기하거나.

학생부교사로서 후자는 직무유기(에라이...)입니다. 그러면 전자를 취할 수 밖에 없죠.

여기에 대드는 애들이 있습니다.

그럼 더 때려야죠. 개패듯.(제가 그랬단건 아닙니다.)

 

현재 저희 학교의 모습은, 대부분 교사들은 아이들 방임.

학년부 및  학생부교사들은 자잘하게 잔소리. 물론 대개의 아이들은 콧방귀. 그래서 스트레스 극한...

이런 상황입니다.-_-

 

 

 

4.

비교적 정당성이 있는 규제들은? 그러니까 수업시간에는 조용히 있는 것.. 종치면 자리에 앉아있는 것, 교사들에게 대들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요.

이런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다 틀을 깨는 인식변화가 선행되어야죠. 조용한 교실,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많은 교사들에게 이건 말도 안되는 겁니다. 현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학생들은 교사가 시키는 걸 조용히 집중해서 받아들여야 하거든요. 또 학벌사회에서 '좋은'대학 가야 합니다. 그래야 어느정도 먹고 삽니다. 그럼 어떻게 공부시켜? 안하면 벌줘야죠!  

 

강압적 교육관에서 벌이나 제제는 필연적입니다. 체벌도 자연스레 연결됩니다. 비폭력인 제제가 안먹히면 체벌을 가해야죠.  

적당히 산만하고 시끌벅적한 교실, 성적떨어져도 신경안쓰는 학생들을 교사들 특히 윗대가리, 혹은 학부모들이 앞으로 인정할까요?

 

안할꺼야. 아마.

 

 

 

 

5.

이 게시판에서의 체벌관련 주 논점 중 하나가 '비폭력적 수단으로도 지도가 안되는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였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수단적인 '폭력'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된다고 봅니다.

여기서 갈리는거죠.

 

절대적 체벌반대론자 분들은. "폭력은 절대 안된다. 일단 폭력을 금지시키고, 다른 대체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란 입장인 것 같습니다.

이 입장에서 말로 지도안되는 학생들은? 정학시키고 퇴학시키고 해야죠.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없죠. 그래도 때리는 것보단 100배 낫단 견해..

 

제한적 허용론자, 혹은 대체수단의 미비점을 지적하시는 분들은 "일단 확실한 대체방안이 준비되고,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선행된 다음에 체벌반대를 추진해야 한다"란 입장인 것 같습니다. 말로 안되는 애들?그래도 최소한 뭔가 해볼 만큼 해봐야 되지 않나..

 

5-1

제 입장? 얼마전까지 제한적 허용론자 쪽이었습니다.

학교다닐 때 맞고 컸습니다. 당연 유쾌한 기억은 아니죠. 그런데, 그게 제 인성을 심각하게 파괴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이건 케바케인지라 일반화시킬 순 없겠죠. 부작용이 완전 100%는 아니란 소리입니다.

 

'때리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때려도 '어떻게 때리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때려도 확실하게 이유를 주지 시키고, 비감정적으로 때린다면 그것이 그렇게 인성을 파괴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때리진 않으면서 말 함부로 하는 선생들을 봤는데, 그것보단 훨씬 낫다고 봅니다.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한 투로 매를 들었는데, 그 이후 절 대하는게 긍정적으로 달라진 경우도 있었구요.

 

(개인적으로 올해부터 원칙을 정해서 체벌하고 있었습니다. 인격모독 삼갈 것(전부터도 안했지만). 이유를 설명할 것, 부위는 온리 엉덩이. 대수는 절대 3대 이하.

나름 충실히 지켜왔습니다...만....)

 

 

그런데 이런 입장도 반론의 여지는 있습니다.

그렇게 매를 들어 지도될 아이는, 사실 꾸준히 말로하면 될 아이 아닌가?

음. 조례안 통과이후 부턴 매를 거의 안 들었는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1학년들 지도엔 별 차이 없더군요. -_-

 

그럼 체벌 완전반대가 맞는건가?

문제는 머리굵은 고학년 아이들입니다.

선생들이 말해도 그냥 콧방귀뀌는 아이들입니다.  제한적 체벌도 소용없습니다. 일단 엉덩이를 대야 때리든가 말든가..-_-

맞습니다. 말로 해야죠. 그럼에도 규칙은 지키게 해야하고.. 그러면 앞서 3,4번의 문제로 돌아가게 됩니다.

 

 

현재 제 결론은 원칙적으로는 체벌반대. '한시적으로 체벌이 허용되어야 하는가?' 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란 입장입니다.-_-

 

 

5-2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은 과도기라고 봅니다. 시간이 얼마지나면 애들은 절대 때려선 안된다는 인식이 퍼지고, 대신 학교현장은 일정부분 무질서(혹은 자유로워)지겠죠.

 

 

6.

또 하나 논점인 대체지도 방법의 문제.

 

많은 교사들은 체벌이 '선' 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필요악'정도죠.

 

체벌이 번창하는 이유는 쉬워서입니다.  몇대 때리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면서 효과는 빠르죠.

 

남기는 것? 그거 교사들도 같이 남아야 합니다. 교사들이 아이들 바라보는 일만 합니까.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훈계? 그냥 따분해하는걸요.

봉사? 한두명이어야죠. 문제학생들을 학생부에서 봉사를 시킵니다. 지도보단 거의 노가다꾼 개념으로 다룹니다. 인성지도? 글쎄요. 

상담? 저희 학교에 인턴상담교사가 와 있습니다. 그 한분이 한반에 2-3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매시간 한시간씩 봐주고 계십니다. 인력이 부족하단 이야깁니다.

교장실로 불려가기? 결재맡으려 찾아도 맨날 어디론가 사라져있는 분을 수업시간 난리칠때마다 그분께 데려다놓는 다구요?

 

개별면담? 비교적 전 학생상담에 대해 관심도 있고, 책도 약간 읽어서,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해야하는지를 머릿속에서나마 압니다. 그런 방법으로 문제(?)학생들과 한번 대화하면.. 온몸에 힘이 빠집니다. 진짜 말 그대로 볼펜 한자루 들 힘조차 없어집니다. 아이 하나에 온 신경과 기를 다 쏟아야 합니다.

 물론 효과는 분명 있습니다. 아이가 저를 대하는 눈빛이 달라집니다. 당장 행동의 변화는 없지만요.

 

그런데 대개의 다른 교사들은 이런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에게 '지도'란 잘못하면 벌, 더 잘못하면 더 쎈 벌, 잘하면 칭찬..  그냥 이정도의 개념입니다.

그리고 한반에 40명 육박하는 아이들을 이렇게 하는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5분지각, 수업시간에 좀 산만한 것 정도의 잘못(사실 학교에서 접하는 7할에서 8할의 문제들)을 이렇게 지도하긴 힘들죠. 

 

체벌옹호가 절대 아닙니다. 대체 지도방법이 당장 현 학교시스템에선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체벌을 없애야 한다면, 없애야겠죠.

 

 

 

7. 

글 마무리 짓겠습니다. 더 할말이 있지만, 졸려서요.... -_-

 

 

 

오늘 방과후 시간에 체벌주제로 즉석 토론을 해봤습니다. 듀게 껀도 있고, 일부 3학년 아이들 땜에 혈압올랐기도 해서요.

체벌 허용이 4, 부분허용이 15 반대가 5 정도로 나오더군요. 생각보다 아이들이 체벌허용 주장을 많이해서 놀랐습니다.

 

저도 역시 아이를 때리는 교사지만, 교사로서 가장 씁슬할 때가 아이들 스스로 "선생님, 애들이 잘못하면 차라리 때려요"란 말을 할 때입니다.

교사 못잖게, 아이들도 폭력에 길들여져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수십년간 교사-학생의 관계는 일방적인 강압-순응의 관계였습니다.

사실 서로 편했습니다.  교사는 고민이 없어도 되었고, 학생은 그냥 몸으로 때우면 되었습니다. 또, 그냥 수동적으로 시키는대로 하면 되었습니다.

 

인권조례안 통과후, 이게 변화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교권상이 나와야 됩니다. 민주적이고 비폭력적인.

 

그런데 교사,학생,학부모, 들의 인식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스트레스받으며 무기력에 빠지고, 아이들은 제도의 빈 곳을 노리려 하죠.

 

교육청에 아쉬운 것은.. 이런 새로운 교사-학생 관계에 대해 고민이나 켐페인 없이 체벌금지부터 밀어붙인 점입니다.

물론 당장의 폭력이 근절되어야 한다는 점엔 동의하지만,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었나란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진통은 겪겠지만 차차 변화되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과도기죠. 그 과도기의 어수선함과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교사의 몫이겠죠.

감수해야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00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097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1292
115412 '성균관 스캔들' 보시겠죠? [58] 산호초2010 2010.11.01 2579
115411 들어도 들어도 충분하지가 않아요 [1] 심마 2010.11.01 1288
115410 기륭전자 1895일 투쟁 종지부, 10명 조합원 직접고용 [13] 난데없이낙타를 2010.11.01 1958
115409 이영진의 웨딩드레스 화보 [8] 행인1 2010.11.01 3165
115408 아래 남자가 여자에게 반하는 순간 리플들을 보다가 보니 [9] 우잘라 2010.11.01 2582
115407 여자가 여자한테 반하는 순간은요? [34] 사람 2010.11.01 4110
115406 방금 냉장실에 처박아둔 8일 지난 피자 2조각을 먹었습니다... [2] 풀빛 2010.11.01 1908
115405 제목이 매력적인 영화 [28] 산중호걸 2010.11.01 2687
115404 [번역] 이 땅의 모든 커플들에게 [3] 불별 2010.11.01 2012
115403 종말 예언 모음.jpg [4] carcass 2010.11.01 2753
115402 최영미 - 선운사에서[시] [2] catgotmy 2010.11.01 2123
115401 재주소년 해체 소식 [14] 슈크림 2010.11.01 4429
115400 남자가 못생긴 (또는 예쁘지 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소설/영화/기타등등? [61] DJUNA 2010.11.01 4036
115399 며칠 전에 김성모 만화 보다가 빵 터졌습니다. [5] Wolverine 2010.11.02 4028
115398 (펌) 대학별 대표미녀 [25] 불별 2010.11.02 5383
115397 미모가 연애에 끼치는 영향 [20] One in a million 2010.11.02 5200
115396 퉤니원 일본진출 하나요? [4] 스웨터 2010.11.02 1895
115395 벨벳골드마인 [5] pingpong 2010.11.02 2494
115394 예전에 이런 게시판이 있었습니다. [8] GO 2010.11.02 1950
» 체벌 뒷북, 교사입장에서 주절주절 [15] 이런저런 2010.11.02 305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