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9 19:34
- 글 제목에 적었듯이 원제가 달라요. 2003년작이고 딱 봐도 제작비 거의 안 들였을 소품 영화구요. 상영 시간은 85분. 스포일러는 없을 거에요.
(상도 많이 탔다구요!!!)
-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 해가 진 저녁 시간에 인적 없는 외딴 산길을 차 한 대가 달리고 있습니다. 아빠, 엄마, 딸, 아들, 그리고 사위. 이렇게 다섯이 타고 있네요.
사이가 좋은 듯 나쁜 듯 투닥거리는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다가...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그만 졸아버려요. 그러다 마주오던 차랑 부딪힐랑 말랑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원래 다니던 길이 아닌 낯선 길에 들어서 있네요.
하지만 어쨌거나 모두 다 무사하고. 대충 이쪽 길로도 열심히 달리면 도착할 거야... 라면서 가족은 열심히 도로를 달리지만 그게 뜻대로 되진 않겠죠. 가도가도 끝없는 괴이한 길을 달리다 지쳐가던 이 사람들은 문득 아기를 안고 있는 하얀 옷의 여자를 발견하고 멈춰서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 한 명이 죽어나가고 여자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인생 꼬이신 분들)
- 저엉말 하나도 안 궁금한 스토리죠. ㅋㅋㅋ 사건의 진상이 무엇일지, 이 가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정말 1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태어나서 이런 장르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시작부터 결말이 다 정해져 있는 이야기잖아요. 게다가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 정해진 결말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어요. 아무리 20년전 영화라지만 그 시절에도 역시 흔해 빠진 설정이었으니 영화의 제작 연도가 핑계가 되지도 못하겠구요.
제가 이 영화를 한 번 볼까... 했던 건 일단 넷플릭스에 있고, 장르가 호러라서. 그리고 거의 주인공급인 아빠 역할을 '트윈픽스'의 로라 파머 아빠 레이 와이즈가 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면 결국 안 보고 있었던 건 넷플릭스의 영화 소개글로 봤을 때 정말 어이 없을 정도로 식상한 스토리일 게 뻔했기 때문이었구요.
그런데 어젯밤에 제가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 iptv에도, 넷플릭스에도, 네이버에도 유튜브에도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이럴 거면 넷플릭스에서 그냥 아무 거나 하나 보자. 라고 맘 먹었고, 그러다 이 영화의 런닝 타임이 90분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얼른 뭐라도 하나 보고 자기 위해 골랐습니다.
- 아 그런데 이게 재밌습니다? 허허. 보다가 당황해서(?) 검색을 좀 해보니 애초에 평가를 좋게 받은 영화였더군요.
이 영화가 재밌는 이유는 뭐 간단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뻔한 설정 속에서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와 관계를 심플하면서도 단단하게 설정해 놓고 그 안에서 드라마를 알차게 잘 짜냈어요. 말로는 참 쉽고 당연하지만 정작 제대로 해낸 영화는 보기 힘들기로 유명한 비법(?)이죠.
그 드라마란 것들도 별로 신선한 건 없습니다. 하지만 캐릭터들에 어울리게 잘 짜여져 전개되고 거기에 슬쩍슬쩍 적절하게 비틀린 유머와 깜짝 호러들을 버무려 놓은 솜씨가 괜찮아서 보는 동안엔 꽤 긴장하면서 집중하게 만들어요.
덧붙여서 배우들도 좋습니다. 대략 아빠랑 엄마 두 배우가 연륜 파워로 적절하게 극을 이끌면서 비교적 서툰 젊은 배우들이 따라가는 모양새인데. 리더들이 워낙 잘 해주고 조화도 괜찮더라구요. 특히 엄마 배우는. ㅋㅋㅋㅋㅋㅋ 후반에 진짜 맹활약해주십니다. 영화 재미의 절반은 이 분이 뽑아내신 듯.
(시종일관 하드캐리해주시는 어머님. 출연작을 찾아보니 대표작으로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2, 그리고 인시디어스 3과 4가 있습니...)
- 단점이야 뭐. 처음에 얘기했던 그 한계가 가장 눈에 띄는 단점이겠죠. 끝이 너무 뻔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결말에서 벗어나거나 좀 비틀어보려는 시도 조차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얌전히 예상 그대로 마무리된다는 것... 이겁니다. 그 과정을 상당히 재치있게 잘 만들어 놓긴 했지만 결국 그 끝은 맨날 먹던 그 맛이고 그 맛이 그리 흡족하진 않은 거죠.
-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좋게 말하면 뻔한 설정 안에서 나름 디테일로 최선을 다 해서 괜찮은 재미를 주는 영화구요.
나쁘게 말하면 나름 애를 쓴 부분이 있지만 결국 뻔할 뻔자로 흘러가는 B급 영화겠구요.
좀 찾아보니 제작비가 100만 달러도 안 들었다는 것 같은데 (충분히 그럴만 합니다 ㅋㅋ) 그 덕에 좀 긴 환상특급 에피소드 하나 본 기분이기도 해요.
은근히 유머가 강하고 잘 먹히는 영화이니 좀 기분 나쁘게 웃기는 코믹 호러 좋아하는 분들에게 잘 맞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지인짜 가볍게, 아무 기대 없이 편하게 낄낄거리며 80분 정도 죽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해요. 재밌게 봤지만 그냥 그 정도가 딱 맞는 것 같습니다.
+ 끝까지 보고 나면 좀 뒷맛이 쓴 부분도 있긴 합니다. 그러게 진작에... 음...
++ 본 이야기가 다 끝난 뒤 마무리격으로 뒤에 붙는 이야기는 좀 많이 사족이더군요. '장르적 특성'으로 봐 줄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족 느낌이.
+++ imdb로 확인해보니 여기 나온 젊은 배우들은 지금 다 경력이 끝났더라구요. 반면에 이미 나이가 많았던 부모역 배우들은 여전히 쌩쌩한 현역...
++++ 글 다 적고 확인해보니 제작비가 90만 달러에 수익이 7700만 달러라고... 허허허허.
하지만 감독의 다음 작품은 대략 폭망이었고. 이후로 하안참 후에 만든 영화도 폭망. 그러고 소식이 없군요. 인생이란.
2021.04.29 19:45
2021.04.30 01:35
아, 뭐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해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나 보죠. 솔직히 별 의미 없는 것 같지만 뭐 그것도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니... ㅋㅋ 재밌죠. 역시 가끔영화님은 안 보신 영화가 없는 것 같아요.
2021.04.29 22:10
dvd만 7700만 달러 어치를 팔았다는게 믿기지 않네요
2021.04.30 01:36
그게 위키 같은 데 보면 좀 애매하게 적혀 있던데. 설마 극장 수익과 합한 것이지 않을까요. 영화 수익을 검색해보면 7700만 달러 얘기만 나오더라구요.
2021.04.29 22:11
유머는 딱히 기억에 안남아 있지만 이거 본 게 일년 안 쪽인데도 로이배티님 소개글을 보니 한 번 더 보고 싶어집니다?! 레이 와이즈는 기대(?)만큼 안 무서워 살짝 실망키도 했지만요. 제 호러 감상 히스토리에서 가장 무서운 캐릭터가 트윈픽스의 밥이었던지라 ㅎ 말씀처럼 초장에 뻔히 결말이 예상되는데다 보고나서는 음 심심하네.. 라고 느꼈지만 '그 영화 참 분위기 제대로였지'라는 게 환기되네요. 뻔한 얘기를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는 건 연출이 좋았단 거겠죠. 그런 점에선 B급보다 더 윗급에 둬도 될 것 같기도요ㅋ 예전, 좋아하는 영화 베스트10 이런 거 꼽으라면 꽤 고심이 됐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저도 모르게 계속 반복해서 보는 영화들이 바로 '그거'인 것 같더라구요. 영화가 분명 막 재밌다! 까지는 아니었는데 스스로 의식하는 것 이상으로 제 취향에 맞았구나 싶습니다. 역시 한 번 더 봐야겠어요.
2021.04.30 01:39
레이 와이즈 아저씨는 놀래키는 역할이 아니라 공포를 느끼는 역할이었으니... ㅋㅋㅋ
맞아요 분위기가 참 괜찮았죠.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차 안에서 흘러가고 밖으로 나왔을 때도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보여주거나 그러지를 않는데 이상하게 그 분위기가 근사하더라구요. 어쩜 그 보이는 게 없도록 찍어 놓은 것이 분위기를 살린 비결이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말씀대로 그렇게까지 재밌게 보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한 번 더 보고 싶어지는 영화들이 있죠. 저같은 경우엔 결국 참고 아직 안 본 새 영화를 찾아가긴 합니다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할 것 같습니다.
2021.04.30 04:13
조금전 다시 봤더니 두번째 볼 때가 더 재밌네요. 중간 중간의 경미한 고어도 효과적으로 활용됐고, 부부 간 합(?)도 좋고요. 전반과 후반 대비되는 부인 캐릭터가 아주 좋네요. 다만 엔딩은 많이 아쉽습니다. 그동안 쌓아놓은 걸 까먹는 B급 결말. 감독 딴에는 재치라고 생각해 이렇게 마무리지은 듯 한데 영화 속 아들래미의 형편없는 농담같군요. 분위기는 좋지만 현실과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초현실은 아니어서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지 감독이 잘 몰라했던 것도 같습니다.
2021.04.30 09:11
길 위를 헤맬 때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이 결국 결말과 거의 아무 상관이 없는 식으로 끝나 버리니 더 허탈, 황망한 느낌이 있었죠. 나름 엔딩 쿠키로 슬쩍 뭘 넣어주긴 했지만 그래도 많이 약했던... 마지막의 '그 차' 타고 가는 장면은 쌩뚱맞기 그지 없었구요. 그래도 한 시간 이십분 중 한 시간 십오분 정도는 재밌었으니 그냥 용서합니다. ㅋㅋ
2021.04.30 00:25
2021.04.30 01:41
스크림이나 블레어위치는 봤는데 이런 장르의 영화를 처음 본... 신비로운 케이스 같지만 '기존 공포 영화의 틀을 박살냈다'고 평한 걸 보면 확실히 이런 장르 그렇게 많이 안 본 분 같긴 합니다. ㅋㅋㅋ
맞아요. 자꾸 망한 영화들 골라서 시간 낭비하고 나면 차라리 예전에 재밌게 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지죠. 그리고 이 영화가 뭔가 심심한 듯 매력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상영 시간이든 내용이든 여러모로 부담도 없구요.
2021.04.30 00:39
2000년대 초반 한창 반전, 공포/스릴러 영화들이 대세일 때 국내 영화관련 게시판에서 추천 받으면 꼭 리스트에 들어있던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저도 당시에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최근 넷플로 다시 봤는데 처음보다 허접한 부분들이 더 눈에 띄지만 그래도 몰입감 있게 잘 만들었던 작품이 맞다는 결론입니다 ㅎㅎㅎ
딸 역할로 나온 배우는 프렌즈에서 로스가 잠깐 사귀던 여학생으로 나왔던게 기억이 나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 레이 와이즈보다 이 배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ㅎㅎ 엄마 역할로 나오신 분의 막판에 멘탈 나간 모습과 파이 먹방이 일품이죠. 다시 보니까 여전히 역겹네요 ㅋㅋㅋ 검색해보니까 최근에도 인시디어스 같은 공포영화 많이 나오셨네요?
2021.04.30 01:43
음. 역시 저만 빼고 다 아는 영화였군요. ㅋㅋㅋ 근데 개봉 연도를 보면 제가 몰랐을만 합니다. 제가 먹고사니즘의 문제로 상당히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전 딸 역할 배우는 '앨리 맥빌'로 익숙합니다. 프렌즈도 다 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에 앨리 맥빌에 꽂혀 있어서 그걸 서너번씩 봤거든요. ㅋㅋ
엄마 캐릭터 정말 막판에 끝내주죠. 어디로 튈지 모르겠고 소름끼치는데 또 하는 짓은 웃기고... 인시디어스 시리즈에선 사실상 주인공급인가 봅니다. 전 시리즈 하나도 안 봤지만 관련 글들 찾아보니 1편에선 주연'급' 조연이고 나머지 시리즈에선 사실상 주인공이네요. 알고보면 호러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