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짧은 생각임을 전제하고 말씀드립니다. 아래 CGV의 마스킹에 관한 글에 달린 댓글과 듀나님의 칼럼에 달린 덧글을 보며 드는 생각인데요. 이 모든 게 영화가 아직 권위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영화는 아직 권위를 확보하지 못했어요.

 

제도교육에선 아직 영화를 가르치고 있지 않아요. 학교에서 문학, 미술, 음악을 배워요. 하지만 영화는 배우지 않아요. 가장 마지막으로 예술의 영역에 포함된 영화가 아직 100여년의 역사 밖에 되질 않아요. 다른 장르는 수 천년에 걸쳐서 존재했던 것들인걸요. 역사가 짧기 때문에 일종의 검증의 과정(?)기간에 있고, 이를 제도교육에서 받아들이기엔 아직 숙성의 시간이 부족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로 음악과목만 하더라도 대중음악에 대해선 (거의 혹은 아예) 배우지 않잖아요. 베토벤, 바하, 브람스에 대해 비중 있게 배우지 비틀즈나 빌리홀리데이에 대해서 배우진 않죠. (요즘 교과서를 보니까 언급은 되어 있긴 합니다만..)

 

영화는 특히나 오묘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바로 엔터테인먼트적인 기능이에요. 영화는 예술로서의 작품이자 한편으론 오락적인 상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화에 관해서 조금만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면 욕이 튀어나옵니다. 이는 다른 예술 장르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못하는 태도예요.

 

우리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욕하진 않아요. 별 감흥을 못 느껴 외면할지언정...

차이코스프키의 음악이 따분하다고 욕하진 않죠. 지루해서 잠을 자버릴지언정..

(만약에 욕하면 무식한 놈 인증을 하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근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면서는 화를 냅니다.

 

조금만 진지해지기 시작하면 화가 나는 거죠. 진지해지더라도 재밌게 진지해져야 하구요(예를 들자면 <인셉션> 같은 영화들?). 내가 돈을 내고 보는 거니까 재미있어야 하는데, 몰입을 방해하고 자꾸만 생각하게 만드니까 짜증나죠.

 

아직은 만만한 게 영화입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엔 영화는 나를 만족시켜줘야 되는 오락거리에 불과한 거죠. 그래서 영화와 관련해 요만큼이라도 전문용어가 나오면 거부감을 갖고, 어려운 문장을 써가며 영화에 대해서 설명하려 하면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질 못합니다.

 

(관객들의 이런 반응을 어느 정도 이해해요. 우리네 삶이 고단하고 힘든데 영화까지 생각을 요구하고 진지하게 굴면 피곤하죠. 재밌으려고 내 돈 내고 보는 영화 보는 건데 재미없으니 얼마나 짜증나겠어요. 영화가 한없이 예술적 가치를 향해서만 지향해 나가는 걸 저도 원치는 않아요. 저 역시 재밌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즐깁니다. 오로지 상업적 가치로만 점철된 영화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재밌고, 때론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부모님이 영화 관람 재밌게 하고 왔다는 얘기 들으면 저도 기뻐요. 삶의 낙이 별로 없는, 이제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분들인데 영화보면서 행복하다고 하면 저도 좋거든요.)

 

 

사실 마스킹이니 레터박스나 하는 것은 영화와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상영조건에 관련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마저도 영화와 관련된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고 욕이나 한마디 던지는 거라고 생각이 드네요.

 

난 영화 잘 보고 왔는데 마스킹이니 레터박스니 하는 용어를 등장시키면서 현 CGV의 상영방식을 비판하니까 난 잘보고 왔는데? 왜 뭐가 문제 있어?’ 근데 이게 뭔 말이래?’ 하다가

아 이런 문제가 있나보구나.” 하고 넘어가질 못하고 뭐야! 알아듣는 말로 설명해라!” 이런 식으로 반응이 이어지는 거라고 봐요. 영화니까요!

 

아래글에서 kct100님의 댓글을 지지하고 싶어요. 경제면, 스포츠면에서 쓰인 전문용어를 예로 드신 부분에 아주 공감해요. 사실 우리는 많은 전문용어를 접하면서 살지 않나요? 보통 그냥 넘어가거나 하죠. “용어설명해라”, “각주 달아라하지 않아요. 왜 거기엔 이해하기 어렵다고 징징대지 않는 건가요? 엔터테인먼트 섹션에선 자신이 모르는 것이 없는 게 당연할까요? 모르면 찾아보고, 이해가 안 되면 질문해서라도 먼저 개념을 숙지해야 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무턱대고 모르겠다’, ‘이해 안 간다’, ‘아는 말로 써봐라라고 하는 건 이게 다 영화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겠죠.

 

 

 

 

비트겐슈타인이 한 말을 제 멋대로 끌어다 쓰고 싶어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이 말을 모르면 닥쳐!”로 받아들이는 분이 계실까봐 또 무섭군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40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369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143
116115 라 보엠 보고 왔습니다... 졸속 운영에 혀를 내둘렀네요. [18] menaceT 2012.09.03 4328
116114 택시승차거부 [42] kiwiphobic 2010.12.10 4328
116113 2개국어 이상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사용하시는 분들께 궁금한게 있어요 [8] 둥가둥가 2010.10.10 4328
116112 요즘 학생들.. [16] Serena 2010.10.07 4328
116111 [듀나리뷰랄라랄라] 나잇 & 데이 [20] DJUNA 2010.06.16 4328
116110 혐오함을 혐오하는 문화. - 한국 인디 [13] Hopper 2013.06.06 4327
116109 딴지일보가 많이 어려운듯 하네요.. [10] windlike 2011.08.21 4327
116108 (반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읽다가... [34] 유우쨔응 2012.07.24 4327
116107 아프리카브이제이 해킹사건 [12] run 2010.08.12 4327
116106 라쎄 린드가 한국에 기거하고 있었네요 [10] dl 2010.06.28 4327
116105 반려동물을 대중교통 등 실내 공공시설에 안거나 끌고 태울 수 없거나 눈총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84] 말보로블루 2016.07.24 4326
116104 하OO양 청부 살인 사건에서 만약 자신이 아내나 자식입장이어도 이혼을 바라시나요? [76] 세멜레 2013.07.29 4326
116103 비단 섹스가 아니더라도... [20] 파리마리 2013.04.19 4326
116102 개인적인 베스트 가전제품 or 가구들 말 해보아요! + 공인 베스트셀러 제품도 완전 사랑! [47] elief 2013.02.04 4326
116101 [듀숲] 남도 들어줄 부탁을 거절하는 동생 [16] 라디오스타☆ 2013.04.04 4326
116100 명색이 장르가 첩보인데,,,, [15] 텔레만 2013.02.14 4326
116099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연애 세미나--> 이것 듣고 웃다가 펑펑 울었어요 / 김전일 님 감사해요^^ [11] 라곱순 2012.08.30 4326
116098 의자놀이와 법, 그리고 감정싸움. [75] 알베르토 2012.11.06 4326
116097 『치즈 인 더 트랩』실사판! (이미지 링크 수정) [5] funky 2012.05.02 4326
» 영화는 아직 권위를 얻지 못했어요. [69] 보람이 2013.03.28 432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