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남자친구 모두 겨울 왕국에 무척 감동했고요.

겨울 왕국 흥행에 대한 남자친구의 의견과 제 의견이 비슷했는데, 저의 시각으로 더 녹여내어 글을 써봅니다.

 

일단 이 영화는 상당히 여성주의적인데도 불구하고 일반적 남성의 감수성 또한 해치지 않고 만족할 수 있게, 가족적으로,

남녀 캐릭터의 성향을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맛으로 깊이 있게 배합하는데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나와 엘사가 보통의 인간들이 근본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처하는 자아의 극단적인 두 단면을 상징하고,

이 자아를  자기분열시켜  안나와 엘사라는 두 인격으로 탄생시켰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안나는 외로움이라는 인생의 커다란 벽을 사랑, 관계, 소통 등의 긍정적 믿음을 통해 해소하고 싶어하며,

또 해소할 수 있다는 굳은 믿음과 희망을 가진 밝고 쾌활한 인간의 양지바른 자아를 상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엘사는 자신이 가진 약점, 컴플렉스, 타인과 다름이라는 이유로 인해 외로움이라는 인생의 벽을 더욱 더 구축하고,

자신과 타인을 분리시키며, 숨기고 차단하며 억압하는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인간의 음울한 자아를 상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우며,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희망에 차서 안나와 같이 인간관계를 통해 소통하고 싶어하며 또 사랑을 얻으려 노력합니다.

우리가 지쳐 노력할 힘이 나지 않는다면, 안나와 같은 캐릭터를 통해서라고 그 힘을 얻고 싶어하죠. 우리는 그러한 캐릭터를 보며 나 자신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긍정의 힘을 가슴 한 켠에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안나와 같은 캐릭터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엘사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자아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남 모르게 감추어둔 나만의 비밀이 있고, 그것은 남들이 욕하고 싫어하는 그 어떤 성질의 것일 가능성도 큽니다.

감추고 싶고, 또 감추어야만 하는 나의 고통스러운 비밀일 겁니다. 들통나는 순간 멸시받고 무시받으며 사람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그러한 성질의 비밀이죠.

하지만, 누구나 무서워하고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엘사의 능력은 사실 왕국을 모두 얼려버릴 만큼 강력하고, 순식간에 얼음성을 탄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인 힘이죠. 그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선택받은 자의 능력이죠. 그래서 모두가 그렇게 싫어하는 것일테고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해방감, 도취감,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아직 드러내지 못한 나의 능력, 인정받지 못하는 나의 성질,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 나의 힘, 사람들에게 비밀로 해왔던 나의 무엇인가가 사실은 아주 강력하고 대단한 능력이라는 사실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잠시 스스로가 엘사처럼 강력한 존재이며, 나 자신도 사실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우수한 유전자라는 믿음과 희망에 들뜨게 되는 겁니다. "Let it go"라는 노래의 가사가 이러한 생각을 아주 절절하게 뿜어내죠.

내가 가진 이 능력은 사실 감출 필요가 없는 것이었어. 이건 사실 이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내 능력과 내 성향을 숨길 필요는 없어.라는 이 어마어마한 위로가 너무나 큰 감동과 전율로 다가오는 겁니다.

 

 

하지만 역시 엘사는 뒤틀려 있으며 그 힘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의도치 않게 타인을 괴롭히기도 하고 상처입히죠. 결국 인간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천재성, 혹은 능력 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러한 어두운 자아를 구제해 주는 것이 바로 인간과의 관계를 믿는 안나라는 양지의 자아인거죠. 상처받고 뒤틀린 자아는 사랑의 힘을 믿는 자아에 의해 결국 자신을 제어하고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자아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상처받은 자아의 성장 즉, 상처를 넘어선 성숙한 자아는 사실 우리 스스로가 꿈꾸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이미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안나와 엘사의 관계에 새삼 커다란 감화를 받게 됩니다. 이 영화는 이해받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하고 선량해지고 싶은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을 크게 흔들어주며 아주 촉촉하고 말랑한 정신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안나가 엘사를 위로하듯, 상처받은 나를 긍정적인 내가 위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상처받은 나를 이 겨울왕국이 위로해줍니다. 결국 이 영화는 상처받아 닫아버린 나의 마음을 달래주는 치유의 역할을 해주는거죠.

 

 

또한 안나와 엘사는 남성의 힘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구원받는 관계를 정립시키는 페미니즘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안나가 걸린 저주를 풀어주는 것은 왕자 한스도 아니며, 진정한 사랑 크리스토프도 아닌 안나 자신, 혹은 엘사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남친과 제 해석이 좀 엇갈렸는데, 제가 보기에 저주에 걸린 것은 안나이며 안나의 저주는 "진정한 사랑의 행동"에 의해서 풀릴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안나의 저주가 풀린 것은 "안나 자신이 스스로 엘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랑의 행동"에 의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야말로 진정으로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내주는 기념비적인 행동이다,라고 흥분했습니다. 또한 저주라는 것이 수동적으로 누군가가 베풀어주는 사랑의 행동에 의해 풀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 나의 저주를 푸는 적극성에 의해 풀릴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을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또 저는 흥분했습니다. 구원은 타인으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에서요. 이게 아주 좋았거든요. 하지만 남친은 안나의 저주는 "엘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후회하며 동생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행동" 때문에 풀린 것이라고 생각하더군요. 듣고보니 갸우뚱하였는데 저희는 그냥 중의적 의미인가보다, 하고 얼렁뚱땅 넘어갔습니다.-_-;어쨌건 여성 스스로의 사랑에 의한 힘이긴 하니까요. 하지만 굳이 페미니즘을 붙이지 않아도 이 부분은 "자신이 자신을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겨주어 좋았다고 결론을 낼 수 있겠습니다.

 

 

남주인공인 한스는 머리가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사기꾼이기 때문에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남성상 때문에 남자들이 결코 기분이 상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남성은 결코 왕자가 아니며, 공주만 꼬시면 왕이 될 수 있는 순위 낮은 왕자도 더더군다나 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인 듯 합니다. 있다고 해도, 오히려 이러한 남성상은 다수의 남성이 괴리감을 느끼는 상위 1%의 아니꼬운 남성에 속하는 계급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여자들도 공주는 아니기에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엘사와 안나가 괴리감이 느껴지는 존재일 수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건 수학 공식은 아니니까 어쨌든 나오는 캐릭터들만 놓고 말했을 때 여자는 둘 다 괜찮으니 할 말 없고, 남자쪽은 사기꾼 왕자와 정의롭고 잘생긴 서민을 비교하자면 서민 쪽이 꽤 괜찮으니 특별히 큰 불만은 없지 않았겠는가.. 하는 측면에서 볼 때 말입니다.^^;)어쨌건 현실의 일반적인 남성에게 크리스토프는 아주 감정이입이 잘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근근히 얼음을 팔며 살아가기에 물건도 자신이 원하는 가격까지 꼭 깎아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외롭고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으며, 아직 솔로입니다(-_-;). 그런데 그런 그와 우연히 마주친 여성은 공주고, 게다가 이 여성은 된장녀처럼 도도하거나 까탈스럽지 않고 소탈하고 솔직하며 밝고 쾌활합니다. 이런 안나같은 타입은 사실 많은 남성의 이상적인 여성상이 아닐까요. 결국 썰매도 좋은 걸로 바꿔주고 말이죠. 뭐, 그리고 굳이 남자에 감정이입하지 않더라도 안나와 엘사만으로도 남성층 또한 충분히 감정이입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나와 엘사의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음일테니까요.  

 

 

이 이야기는 가족의 소중함까지 덩달아 일깨워주고 있기도 하네요. 올라프는 개인적으로 토이스토리의 분리되는 장난감 부부의 연장선인 것 같아서 별 감흥이 없었고, 예측가능한 코믹 감초 역할이었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온도가 높아지면 녹아버리는 올라프가 여름을 그리워한다던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름을 즐기려고 한다던가, 자신의 목숨과 관계없이 벽난로를 지핀다던가 하는 행동이 짠하기는 했지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이 겨울이고, 3D로 보여주는 얼음의 이미지들은 아주 아름답고 황홀하지요.

 

 

 

아무튼 제 감상평에 공감을 하지 못하시더라도, 어쨌든 겨울 왕국이 왜 좋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많은 답변 중의 하나는 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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