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에서 보여준 잠깐의 영상과 음악 만으로도 '이 영화는 내 취향이다'라는 판단이 섰기에

개봉 첫 날 영화관으로 달려갔어요. 


영화를 보기 전 여러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씨네 21에서 올린 스티븐 연과 유아인의 화상인터뷰 

(유아인 왈 : 이 영화를 본 누구라도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가 기억에 남고

윤여정의 인터뷰도 생각이 나네요. 

실제로 이민2세대인 그녀의 큰 아들은 예고편을 보고 나서 '나는 이 영화를 절대 못 볼 것 같다'며 울었다고 해요.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한 이민자의 가족의 이야기라고는 하나, 이 영화는 보편적인 가족 탄생의 설화를 담고 있는 듯 보였어요.

에덴을 떠나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모든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라고 할까.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과 꿈을 버리지 않은 남편,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희생되는 오늘이 서운한 아내, 

그리고 이 둘의 대립이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는 걸 잘 아는 명랑한 할머니.

그들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고, 어느 정도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어요.  


특히 예고편에 나온게 전부라고 할만큼 인물 사이의 큰 갈등이나 껄끄러운 장면이 거의 없는데,

덕분에 마치 삶을 바라보듯, 관조적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장점.

영상과 음악도 한 몫했고, 이것이 이 영화를 한국 가정을 다뤘음에도 미국 영화처럼 보이게 한 마법이 아닐까 싶네요.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 도입부와 후반부에 대칭을 이루는 우물씬이었는데,

결코 해피엔딩이라고만 하기 힘든 이 영화에 희망이 엿보인 순간이었어요. 

앞으로 이 가족은 미나리처럼 잘 자라나리라는.


또한 사람들의 멸시에도 마치 시지프스 마냥 십자가를 짊어지고 걷는 남자의 장면 또한 울컥하게 만드는 요소였고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떠오른 건 밀레의 '이삭줍기' 였어요.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지만 가족을 위해 굽은 허리를 펼 수 없는 여인, 그리고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는 가난한 농부를 주인공으로 그린 화가.

어쩌면 '미나리' 또한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일궈야 했던 한 세대의 진실하고도 아름다운 기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66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859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8880
115071 [넷플릭스] 블링블링 엠파이어 [2] S.S.S. 2021.03.09 447
115070 [구인]엑셀로 자료 정리 [2] 탱고 2021.03.09 495
115069 미나리_척박한 맨땅에 끊임없이 우물을 파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스포&사족 다수) [10] Koudelka 2021.03.09 786
115068 라이언 존슨 감독님의 새 스타워즈 3부작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소식 [13] 나인 2021.03.09 588
115067 고생이 많은 AI 왜냐하면 2021.03.09 270
115066 헬조선이라고 하는 한국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국내 외국인을 이해할 수 있는지 [8] tom_of 2021.03.09 859
115065 시간여행자의 초콜릿상자(권진아의 여행가) [2] 예상수 2021.03.09 309
115064 커피가 없으면 삶을 시작 할 수 없는것같아요 [6] 미미마우스 2021.03.09 513
115063 행복은 어려운 것이죠. [3] 분홍돼지 2021.03.09 375
115062 소수자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이유 [8] Sonny 2021.03.09 522
115061 스타워즈 시퀄 보지마세요 [47] 사팍 2021.03.09 918
115060 자니 기타 [7] daviddain 2021.03.08 408
115059 변희수 하사 추모 행사 다녀왔습니다 [28] Sonny 2021.03.08 833
115058 미나리 이야기에 끼고 싶지만 아직 못 본 저는 [13] Lunagazer 2021.03.08 495
115057 스타 워즈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 (1983) [11] catgotmy 2021.03.08 298
115056 불가능한 선택지를 선택한다면(듀게라는 타임캡슐) [6] 예상수 2021.03.08 370
115055 약속의 때가 왔다(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스포) [4] 예상수 2021.03.08 466
115054 엔시블에 의해 수정되었습니다. [16] jamy 2021.03.08 731
115053 '더 굿 플레이스', '미나리' [12] 겨자 2021.03.08 803
115052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의 글 [6] Sonny 2021.03.08 96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