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심하네요. 연휴가 또다시 시작되었으니까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고 고민하곤 해요. 결국 정답은 10년 뒤에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는 거예요. 나는 오늘 내가 뭘하고 싶은지 잘 모르거든요. 오늘 뭘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10년 뒤에 후회하지 않을만한 일을 해두는 게 나으니까요.


 어제는 건대입구역에 갔다왔어요. 거리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만끽하니 건대입구역에 좀 자주 갈 걸 그랬다고 후회가 들었어요. 좀더 젊었을 때 건대입구에서 많이 놀아 둘걸...하고 말이죠. 막상 건대입구역에서 놀 나이 때에는 갈 때마다 '여기 열라 후졌잖아. 다신 안 와.'라고 투덜대곤 했거든요. 하지만 가성비 좋은 나름 힙한 맛집...가성비 좋은 보드카페...가성비 좋은 노래방 같은 곳에 이제 와서 가보니, 젊었을 때 많이 가볼걸 하고 후회돼요. 그런 곳에서 사람들이랑 잘 어울렸으면 좋았을 텐데.



 2.그럼 이제 나이에 맞게 뭐 고급 술집같은 곳을 가면 되지 않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젠 재미가 없어요. 왜냐면 이제 고급 술집에 다녀도 안 이상할 나이가 됐거든요. 비싼 술집에 가지 않을 나이에 비싼 술집을 가는 게 재밌는거지, 비싼 술집에 갈 나이가 되어서 가는 건 재미가 없으니까요.


 이제 건대입구역 같은 곳에 가서 놀기엔 어색하고...고급 술집에 가서 놀기엔 너무 뻔한 나이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갈 데가 없어요.



 3.요즘은 어떤 곳에 가면, 꼭 어딜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 거리 자체를 만끽하는 게 좋아요. 예전에는 신논현에 가든 광화문에 가든, 그곳에만 있는 가게를 가기 위해 가는거였는데 요즘은 그냥 거리를 슬슬 걸으며 거리의 분위기를 느끼거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한 말을 또한번 해보자면...인생을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소비하는 거 말고요. 남들이 차려놓은 음식...남들이 만들어놓은 객실이나 풀장...남들이 구성해놓은 관광 코스...남들이 만든 이야기, 영화, 소설...이런 것들을 돈주고 사는 거를 빼면요.



 4.휴.



 5.한데 일상의 주변이 온통 소비라는 선택지로 꽉 채워져 있단 말이죠. 밖에 나가서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돈 쓸 곳만 계속 보여요. 돈이라는 개념을 교환하기 위한 교환소들 말이죠. 재화를 구매하거나...용역을 구매하거나...아니면 용역을 제공하는 사람의 관심이나 환심을 구매하거나...셋 중 하나예요. 


 재화나 용역을 구매하는 것은 가성비의 영역,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사람의 환심을 구매하는 것은 허세의 영역에 속하겠죠. 하지만 문제는 너무 오래 살았단 말이죠. 그런 것들을 구매하는 행위를 너무 오래 반복해와서 이젠 소비하는 게 재미가 없어진 거예요.



 6.문제는, 소비하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는 건 사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랑 똑같거든요. 이 도시에서는 말이죠. 그래서 이제는 재미있게 살려면 남들을 도우면서 살아야 해요. 내가 안 해본 것중에 그나마 남은 재미있는 건 남들을 돕는 거니까요.


 

 7.어쨌든 요즘은 혼자 밖에 나가면 어딘가 들어가서 앉아있기보다는 계속 걷곤 해요. 주택가도 괜찮고 좀 번잡한 거리도 괜찮아요. 아니면 오피스 단지가 좀 섞여있어서 드문드문 직장인들이 보이는 거리도 좋고요. 건대입구처럼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거리도 좋고, 마포구 거리처럼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자영업자, 케이팝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섞여 있는 거리도 좋죠. 너무 일원화되어 있지 않고 적절히 섞여 있는 거리가 좋더라고요.


 또 그렇게 걷다 보면 호기심이 드는 맛집이나 술집이 눈에 띄곤 해요. 그러면 한번씩 들어가보곤 하죠.



 8.한데 맛집의 경우는, 한번 들어가버리면 당분간...한 세시간 정도는 다시 맛집에 갈 수 없게 돼요. 한 끼 먹어버리면 배가 부르니까요. 그러니까 호기심이 드는 맛집을 발견해도, 한 번의 산책에서 맛집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1곳...많아봐야 2곳 뿐이예요.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는 체크만 해두고 또다시 걷곤 하죠. 걷다 보면 더욱 괜찮아 보이는 맛집이 또 눈에 띌 수도 있으니까요.


 그 점에서 술집은 부담없이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아요. 들어가서 칵테일이나 잔술 한잔 하고 20분만에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일어나서 또 걷다가 호기심이 드는 술집이 나오면 또 들어가볼 수 있고요. 한 번의 산책에서 3~5곳 정도의 술집을 만끽할 수 있죠.


 그렇게 계속 걷다가 호기심에 들어갔는데 눌러앉고 싶어지는 술집을 발견하는 것이 일상의 재미겠죠. 물론 어떤 술집에 들어가든 다 괜찮긴 해요. 하지만 이쯤해서 눌러앉아 볼까...라는 마음보다는 한번 더 주사위를 굴려보고 싶은 마음이 대개는 더 강하거든요. 술을 한잔-말그대로 물리적으로 한잔-하면 또다시 일어나서 다른 괜찮은 곳이 없나 계속 걷곤 해요. 왜냐면 한번 더 주사위를 던지면 더 좋은 숫자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요. 그런 기분. 다음 번 주사위 눈이 어떻게 나올까...라는 호기심을 없애 버리는 술집이 정말 좋은 술집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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