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윤리로 대적할 수 있을까

2021.03.18 13:34

Sonny 조회 수:730

http://m.hani.co.kr/arti/society/women/987112.html#cb


아직까지 피해사실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께서 이제는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방어권을 포기한 것은 상대방입니다. 고인이 살아서 사법절차를 밟고, 스스로 방어권을 행사했다면 조금 더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졌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인의 방어권 포기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제 몫이 되었습니다.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까지 험난했던 과정과 피해사실 전부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 그리고 이 상황을 악용하여 저를 비난하는 공격들. 상실과 고통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 화살을 저에게 돌리는 행위는 이제 멈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요새들어 정치는 윤리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듭니다. 정치는 늘 윤리의 최후방에서 질질 끌려나오다가 항복하고 마는, 비윤리가 가장 고도화된 수단같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에게 불리한 사실은 일단 무엇이든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논쟁으로 발달시키면서 사실관계를 가볍게 도약해버립니다. 이 때 목적은 사실관계를 다투고 최대한의 진실을 도출해내는 게 아닙니다. 비교적 간단하고 충분히 설명가능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한 도피의 수단입니다.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내 거기에 스스로 속고자 하는 것입니다. 박원순 성추행 이슈는 피해자의 증언을 고려해보면 간단하게 결론이 나옵니다. 박원순은 정말로 성추행을 했고, 성추행 피해자가 그걸 고소를 했으며, 그 고소사실이 자신의 귀에 들어가자, 그 비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죽은 겁니다. 박원순의 성추행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 모든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왜 죽었는지부터 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게 왜 저렇게 집요하게 구는 것인지 왜 하필 지금 기자회견을 하는지 등등 전부다 혼란스럽죠. 


아집이란 단어로 축약하기에는 이 상황들의 비합리성이 너무 지독한 것 같습니다. 박원순을 훌륭한 사람으로 남겨두고, 민주당을 깨끗한 집단으로 지키고 싶은 욕망이 아주 선명한 현실도 보지 못하게 만드니까요. 애초에 민주주의 선거정치라는 게 추종자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기에 최소한의 합리도 기대하긴 어려운 게 맞습니다만 이것을 계기로 삼아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려고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래저래 더민주의 대중정치가 실망스럽습니다. 더민주는 지금 국힘당과 검찰을 비롯한 극우보수에 맞선다는 기존의 판타지를 고수하려고 애쓰는데, 본인들이 선전하는만큼 아주 대단한 정의의 대표세력이 아니라는 건 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합리가 불가능하다면 조직적인 권력으로라도 이런 사태는 방지했어야하지 않았을까요. 문재인은 선왕이고 그런 문재인을 비호하는 더민주는 악독한 검찰과 재벌에 맞서싸우는 최후의 기사단이라는 이 최면은 오로지 그들 사이에서만 작동하고 있는데 이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아주 복잡한 논쟁을 하는 게 아니고 성추행범의 범죄를 인정하고 피해자한테 온당한 사과를 하면서 2차 가해를 막으라고만 하고 있는데도요.


신도들을 탓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애초에 소통이 아니라 신앙의 선언을 하려고 작정한 사람들이니까요. 더민주가 극우보수에 맞서는 포지션이라면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 사고방식의 구태의연함을 지적하는 쪽으로 나갔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자신의 지지자들을 잃어버릴 것이 두려워 인지부조화의 비즈니스만을 하는 것이 정치의 숙명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정당과 선거정치 자체를 혐오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더민주가 저멀리 앞서나간 윤리의 끝자락을 잡고 열심히 추격했으면 좋겠군요. 다수의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만을 세일즈 기점으로 삼는 정치는 반드시 퇴보하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저런 2차 가해는 당 자체의 공식입장으로 반박하고, 고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을 당 내에서 직접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바로 피해자를 향한 사과와 2차 가해에 대한 엄중한 처단입니다. 대중의 평균적 윤리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더민주라는 당은 아직도 그 속도를 쫓아가질 못하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34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39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1713
115348 2021 Screen Actors Guild Awards Winners [2] 조성용 2021.04.05 34434
115347 왓칭 (2019) catgotmy 2021.04.05 275
115346 듀나타로카드 [6] 그날은달 2021.04.05 540
115345 제임스 콘, 흑인, 문재인 대통령과 금리 [21] 겨자 2021.04.04 1446
115344 어느 End가 아닌 And [6] 예상수 2021.04.04 506
115343 서재에 헌책 몇권을 더하며 [16] 어디로갈까 2021.04.04 954
115342 [영화바낭] 오랜만에 두기봉, '피의 복수'를 봤습니다 [6] 로이배티 2021.04.03 565
115341 일본영화 원더풀라이프1998 [5] 가끔영화 2021.04.03 618
115340 재보궐선거 막판 쟁점 & 정치권, 사전투표 독려 총력 [1] 왜냐하면 2021.04.03 562
115339 오스카 강력 후보 노매드랜드를 보고(스포없음) [2] 예상수 2021.04.03 642
115338 내시경 받았습니다 [2] 메피스토 2021.04.03 475
115337 비 오는 날 [4] daviddain 2021.04.03 331
115336 '피해호소인' 3인방 하차 보름만에..박영선, '2차가해' 유튜버와 합동 방송 [3] 먼산 2021.04.03 898
115335 나무위키에 듀나게시판 업데이트 하시는 분 자수하세요 ㅋㅋㅋ [7] 도야지 2021.04.03 1655
115334 고死 두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2010) [2] catgotmy 2021.04.03 315
115333 무상급식, 친환경/유기농 농산물 [37] 겨자 2021.04.03 1275
115332 이런저런 일상 잡담들 [2] 메피스토 2021.04.02 389
115331 [jtbc] 싱어게인 후속(?) 유명가수전 [3] 쏘맥 2021.04.02 662
115330 에픽스토어에서 "테일즈 오브 네온 씨"를 무료배포합니다. [4] Lunagazer 2021.04.02 345
115329 [EBS1 영화] 타인의 취향 [네이버 무료영화] 페르소나, 스타드 업 [1] underground 2021.04.02 405
XE Login